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무슨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을까.

 

요즘 들어 남들 사는 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나를 본다. 친구가 어디에 취직을 했다는 소식에, 엄마의 친구는 공무원이 되었다는 소식에, 친구의 친구가 결혼을 하는데 남자가 참 잘났다는 소식에 귀를 쫑긋거린다. 칭찬을 하기 위해 몰래 입에 침을 한껏 바르고는 축하한다고 한다.

 

남이 잘되는 것은 원래 이리 배가 아픈 것인지, 예전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칭찬 할일이 생기면 다른 감정없이 칭찬만 했었다. 아니 솔직히 부러움은 있었지만 그런 일로 배가 아플지경까지는 가지 않았다. 내 삶에 방향을, 가치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되는 갈대가 되고 부터는 잘 살아가고 있는 지인들을 보면 괜시리 배가 아파지고 울적해진다. 이런 내가 싫어지는게 사실이다. 그러지 않을려고 하면서도 남들과 비교하는 내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마음으로 가득한 날, 서점에 들어가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제목이 맘에 들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답변이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냐고, 못 살고 있는 나도 좀 챙기라고 내가 아닌 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책을 들고 나와 그늘이 진 곳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읽으며 코를 킁킁거린다. 이 흙 냄새는 내가 앉은 자리에서 나는 것인가, 아니면 책에서 나는 것인가, 설마 하는 마음에 책을 다시 읽는다. 흙 냄새가 난다. 책 속에서 나는 흙 냄새가 책 밖에서도 느껴진다.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전우익 선생님의 편지에는 흙 냄새가 난다. 이 분은 천상 농부시다. 그래서 아마 이분은 내가 선생님이라고 칭하는 것도 손사레 치며 싫어하실 것이다. 그저 자신은 농부라고, 자신의 글이 왜 책이 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자신이 누구를 가르치길래 선생님이냐고 말하시며 그리 부르지 말라고 하실 것이다.

 

전우익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 분은 흙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흙은 제 안에 있는 것들을 나눠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퍼주고 다 퍼주고 싶은 마음으로 나무를 길러내고 농작물들을 길러낸다. 필요한 거 이상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전우익 선생님이 그렇다. 밭에서 자란 것들, 과일들, 손수 나무를 깍아 만든 조각들을 들고 지인이 사시는 곳을 찾아가 별거 아니라며 주고 오신다. 흙을 만지며 사시는 것을 좋아하시고, 나무를 보면 가서 안아주고 싶으시다는 전우익 선생님의 얼굴과 손에는 주름이 깊게  파여있다.

 

주름이 잘 어울려 더욱 인자해 보이고 강인해 보이기도 하는 전우익선생님이지만 이 분의 글을 읽어보면 그 주름들 하나마다 걱정과 고민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점점 더 사회와 고립되어 가는 농촌 현실을 걱정하시고, 더 많이 원하는 현대인들을 안타까워하시고 삶이라는 것에 대한 자아성찰를 하시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 하고 계시는 전우익선생님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땅을 일구며, 도라지와 산수유를 키우며 삶의 이치를 깨달아 가시는 모습은 내게 인상적이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그것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스스로 고민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구나

 

전우익선생님의 편지에는 신영복님과 노신이 자주 등장한다. 신영복님의 사색을 얘기하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고, 노신의 <아Q장전>을 이야기 할 때는 머리를 망치로 한대 맞은 느낌이었다. 노신의 생애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그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가을 했다. 노신에 대한 것도, 신영복님의 대한 것도 거의 모르지만 이 두 분을 존경하는 전우익선생님의 맘을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으로 전우익선생님이 좋아진것은 두말할 나위없다.

 

책을 읽으면서 스승이라 여기는 사람을 만날 때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하나라도 놓칠세라 손길이 분주해진다. 전우익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그랬다. 분주해지는 손을 잡고 숨을 크게 들이시며 한번에 너무 많은 양을 담지 말자고 스스로를 토닥인다. 이리 좋은 글을 보고 또 보며 되새김질하면 된다고 그러다 보면 삶에 대해 나도 '덜'이란 단어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덜 먹고, 덜 입고, 덜 바라고, 넘치는 세상에서 내 한몸이라도 부족함이 남는 삶을 사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이런 마음이라면 앞서 나간다고 생각하며 부러워하고, 시기했던 친구에게 마음 다해 축하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책을 선물로 주며 그들의 삶도 물질적인 풍요가 아닌 마음의 풍요도 함께 하길 바란다고 편지를 담아 선물 할 수 있을 것이다.

 

풍요로운 삶보다는 부족함이 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제대로 산다는 것, 잘 사는 것의 기준은 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기준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깍고, 갈고, 다듬고, 매만지는 것을 게을리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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