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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사랑, 누군들 입에 올려보지 않았을 사람이 존재할리 없는 단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사랑이어도, 몇 번의 사랑이어도 빛나는 것은 변하지 않는 가슴에 품을수록 아리고 이성적 이해가 불가능한 간혹 기적이라 불린다고 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감정, 사랑. 인간이 존재한 1만년 전부터 얼만큼의 사랑이 쌓아올려졌을까? 쌓아올려진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일인가? 사랑, 그 하나마다 다른 빛을 내고 다른 무게를 지녔음에도 누군가의 사랑 아래 누군가의 사랑을 올려 놓을 수는 없을테니까.
궁금했다. 여 주인공의 이름이 분명한 제목을 책으로 하는 책이 백년이 지나서도 사랑 받고 있음을 귀동냥으로 들으면서도 읽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참으로 어여쁜 이름이구나- 라고 생각만하면서 그녀는 어떤 여인일까? 어떤 여인이길래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 읽기를 당연시하는 목록으로 꼽히고 영화로도 만들어지며 세계문학 전집에 꼭 들어가는 것일까? 읽지 못했기에 그녀는 내게 베일에 쌓인 여인이었으며 의문만으로도 감히라는 말을 넣어야 할 것 같은 여인이었다.
그녀를 읽기로 용기(?)를 낸 것은 겨울이어서일까? 어디선가 봤겠지, 영화의 한 장면이라도. 그렇기에 겨울과 <안나 카레니나>라는 책이 겨울과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책을 통해 안나를 만나면서 참으로 겨울과 닮은 여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춥고 차가운 계절인 겨울이 아니라 흰 눈이 소복이 내리는 겨울, 얼음으로 만든 집에서 따뜻하게 살 수 있는 겨울, 한참이나 눈이 내린 뒤 눈밭에 누워 올려다 본 하늘에 감탄이 쏟아져 나오는 겨울을 떠 올리게 하는 안나. 춥다고 말하면서도, 깨끗한 눈을 사랑함에도 순간이 지나면 더러워지는 눈에 실망하면서도 겨울을 기다리는 것은 안나가 보여 준 빛깔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감정의 빛남을 버리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기 위해 애쓴 안나. 겨울은 눈처럼 하얗고 눈이 내리고 난 뒤 말할 수 없을만큼 투명해진다. 스스로 쌓아올린 것을 부정하지 않는 눈처럼 안나가 내게는 겨울을 닮은 여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 때는 모든 것이라 말할 수 있어 행복했던 시간이 세월이란 기차를 타고 감정이라는 터널을 지나고 나니 변해가는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 시린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차가운 눈밭을 걸어야 하는 것일까.
책을 덮고 혹여나 내가 톨스토이라는 대문호가 적어내려간 글에 조금은 지쳐 휙휙 넘기지는 않았나라는 걱정과 후회가 드는 것이 책을 다 읽은 뒤의 내 감정이다. 주인공인 안나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기를 지쳐서야 등장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작가의 탁월한 묘사를 읽으며 '아하!' 하고 수긍하게 된다. 마치 작가 앞에서 책의 장면들이 하나씩 연출되는 것을 작가가 행동하나 말투하나 그들의 속마음까지 물어서 쓴 것처럼 책은 진행 되어 간다. 작가의 이런 섬세함을 그저 지나쳤을까 안타까워진다.
안나의 애달픔과 그녀에 대한 걱정하는 감정, 래빈의 생각에 빠져드느라 한동안 손에서 책을 내려놓아야 했으며, 수 많은 등장인물들을 연결하느라 책을 몇 십번이고 앞으로 넘기기를 반복하느라 바빠던 것이 사실이다. 놓친 것이 분명 많았다는 것을 해설을 읽고서야 아차하고 마는 것이다. 조금 더 느리게 호흡하며 읽어야 했음을 조금씩 조금씩 쌓이는 눈처럼 책을 읽어내려가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워 올해 새로이 오는 겨울에 이 책을 기약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