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을 샀어
조경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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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과학 실험을 하면서 알게 된 한 가지는 아이들은 참으로 풍선을 좋아한다는 것.
색색의 풍선마다 아이들은 환호하고 하나의 풍선이라도 더 불고 싶어 안달하고 공기를 불어넣은 풍선이 하늘을 날지 못함에 안타까워하며 풍선을 허공으로 높이 더 높이 쳐내려 팔을 휘두른다. 내게 풍선은 아이들의 꿈을 이뤄줄 수 있을 것 같은 하나의 마법으로 다가왔다.

 

 조경란 작가가 그리는 풍선이라면 어떨까? 도서관에서의 책 선택이 서점보다 난감한 점은 표지가 없어 책의 분위기를 제목만으로 추측해야한다는 것. 이것 또한 도서관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상상이지만 상상력을 동원하기에는 나이가 있는지라 알고 있는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띄면 마치 아는 친구를 만난 듯 기쁘다. 조경란의 책을 봤을 때 반가웠다. 그녀의 책에 이런 감미로운 제목이라니. 조경란의 풍선은 흑백이다, 내게는. 내가 아는 조경란의 작품이 바삭거리기에. 분명 언젠가는 수분이 촉촉했을 나뭇잎을 바삭거리게 하는 것이 조경란의 글이었다, 내게는.

 

 어떤 색의 만나 봤어요? 누가 묻는다면 빨주노초파남보 말고 무슨 색을 더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에 담긴 풍선들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풍선을 샀어>는 8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단편에서 바스락 소리가 난다. 건조함을 넘어선 건조함. 가습기 하나 틀어도 소용없는 건조한 방이 책 속에 살고 있어 단편 하나의 배경인 푹 젖는 장마조차 빗방울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신기한 것은 수분기 하나 없는 이 책 속에 달팽이가 산다. 물기가 없으면 어느새 막을 치고 들어가 스스로를 보호하는데는 천재적인 달팽이들이 책 속을, 책 위를 기어다니며 사랑스러보이는 더듬이를 쭉 뻗으며 종이를 파 먹는다. 그 자리마다 상상도 못했던 수분기 머금은 종이들이 젖어버리고 만다. 바삭거리는 낙엽이 종이이고 달팽이가 글자라고 말한다면 내가 받아들이는 조경란 작가의 책을 설명할 수 있을까? 달팽이가 배발로 지나갈 때마다 끈끈하게 묻어나는 진액이 종이를 촉촉하게 적셔버리고 부서질 것만 같은 종이를 너무나 가벼이 지나가며 수분을 넣어준다. 건조한 그녀의 책 속에 촉촉히 젖어가는 내가 서있게 된다.

 

 특별할리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닐까? 그러기에 건조해보이고 변화없어 보이지만 조금씩 주의를 기울여 바라보면 무언가 변화하고 있다. 조경란의 소설에서 등장인물에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참을 보고 있던 달팽이에게서 눈을 떼었다 다시 보았을 때 달팽이가 자신의 집 밖으로 나와 배발을 길게 내뺐을 때 놀라고 마는 것처럼 책 속의 주인공들은 어느새 성장하여 있다. 짧은 단편 하나에서 어색하리만큼 긴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데 그들은 성장하여 있다,  어색함없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삶이란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님에도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거나 받는다. 차가운 손을 가지고도 뜨거운 심장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이라기에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나 하나만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고. 내가 남긴 흔적이 누군가에게도 남아있을 것이라고, 나만이 외로움을 집으로 짊어진 이는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풍선을 불며 불안을 견디더라도 괜찮은 것이다, 혼자가 아니니.  

 

 8개의 단편들 중 어느 하나 읽는 동안 가슴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없었던 소설집이었다.  제목과 같은 <풍선을 샀어> 를 읽고는 풍선이 슬퍼보여 애를 먹었으며, 달팽이를 기르고 있어서 더 애틋했던 <달팽이에게> 그리고  애달펐고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형란의 첫번째 책> 제목만으로 마음에 들었던 <버지니아 울프를 만나다>는 할머니가 생각나 눈물이 글썽할 뻔 했다.

 

#도서관이라는 데는 단순히 책이 쌓여 있는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공간이라는 것을요. 책을 읽고 싶다는 의지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공간 말이에요. -형란의 첫번째 책

 

 -마음을 울리는 문장이 참으로 많았는데 이 문장만을 여러번 입으로 되뇌인 것은 이 책을 도서관에서 만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책을 읽고 싶다는 의지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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