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즐겨 마시는 커피는 진한 아메리카노. 그 쓴 맛이 머리를 깨워주는 그 느낌이 좋아 마시는 커피. 이 책을 읽는 동안 커피가 맛있게 느껴짐을 넘어 쓰디쓴 커피가 감사하다. 책의 맛을 아무리 베어물어도 알 수가 없어 강한 커피맛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깨어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 책을 이야기 하기 위해 또 다시 커피를 내리고 주인공들을 찾는다.
 

 할 수만 있다면 책 속의 주인공들을 데리고 차가운 겨울 바람 앞에 서게 할 것이다, 나 역시 겨울 바람을 맞으며 소리를 질러보고 차갑고 단단한 눈 속에 누우며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울 것만 같은 눈이 이리도 단단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손에서 스르륵 녹아버리는 눈으로 인해 엉덩방아를 찧고 잘못하면 뼈가 부러지기도 하며 갈라진 얼음이 피부를 뚫어 피가 철철 나기도 한다. 어찌하여 연약하리만치 순순한 눈 앞에서 다치고 아프고 마는 것일까? 눈이 내린다고 좋아하던 이들이 눈 앞에서 주저 앉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마는 것일까? 스물여덟살의 여자인 나, 내 앞의 생이 눈길 같다. 포근하지 않을 눈길, 얼음으로 변한 길을 스케이트 타듯 미끄러지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그 길 앞에서 나는 분명 정지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걷는다고 한다. 난 가만히 있는데 어떤 이들이 내가 움직인다고 한다, 숨쉬면서.

 

 <태엽 감는 여자>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살아있다. 처음에는 그들이 살아있지 않다고 확신했다. 살아있지 않기에 나에게 어떠한 감흥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나 스스로를 속이기 위한 변명이었다. 나역시 그녀들처럼 삶을 살고 있기에. 죽은 듯이, 내가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마치 내 인생을 누군가의 스타트 버튼 하나에 돌아가도록 만든 것처럼 살아가고 있기에. 그런 삶을 살면서도 나는 무엇을 갈구하는 것일까?

 

 매일 사는게 재미없다고 말하며 눈이 떠지는 아침을 후회하면서도 발버둥조차 치지 않으며 소리조차 지르지 않는 내가 어떻게 연휘에게, 정화에게, 그녀에게, 너에게 뭐라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그네들은 나보다 낫다는 것을 눈 가리고 아웅할 수 있겠는가. 그네들은 살아있다.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하기도 하고, 죽지 않기 위해 살아갈 이유를 찾으려 하고, 숨쉬기 위해 소리라도 지르는 그네들은 살아있다.

 

 이제서야 커피보다 책이 쓰다. 책을 보며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음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 진정 살아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니 겁이 난 것이다. 사람이기에 고민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이기에 순간마다 행복해지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이기에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을 짊어지고 있음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한 순간이라도 나답게, 내 인생을 내가 사는 것처럼 살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나도 살아있으며 그네들도 살아있다. 앞으로 더욱 허우적대며 눈길을 헤쳐나갈 것이다. 분명 그 차가움과 딱딱함 속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눈의 포근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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