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달리는 순간, 우리는 바람을 가르게 된다.  달릴 때 쾌감이 드는 건 내 뺨을 스치는 공기를 이겼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가끔 울고 싶을 때나 마음이 무거울 때 혹은 목적이란 것이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을 때면 나는 달리고 싶어진다. 마치 달리는 순간은 그것만이 목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어쩌면 달리는 순간만이라도 내가 무언가를 이겼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일까?  
 

  머리 속에서 누군가가 달린다. 그는 매일 달린다. 일분 일초도 쉬지 않고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은은한 달빛 아래서도 내가 떠올리는 순간 언제라도 그는 달린다. 그가 달린 것은 커녕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그가 살아가면서 달렸다고 들어본 순간이 딱 한 순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한 여자의 머리 속에서 그는 숨을 헐떡이지도 않고 달린다. 분홍색 야광 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를 가지고서. 왜 그녀는 그를, 자신의 아비를 달리고 또 달리게 했을까?

 

 우리는 모두 잊지 못할 사람을 머리 속에서 달리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건 불행하게 해주었건 그사람은 나의 머리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한 가지 모습만으로만 떠올려지는 것이다. 분홍색 야광 반바지를 입고 달린다거나 늘 이부자리에 누워 가래를 토해내던 모습만으로 기억된다거나. 이러한 장면들은 내 감정을 다잡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더 깊이 생각하면 마음이 파도처럼 하얗게 부서질 수 있기에 그가 내 마음에 부서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를 바위로 만들어 버리거나 조금은 우스운 모습으로 슬픔을 물리친 것은 아닐까?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란 소설집을 읽으며 주인공들의 무뚝뚝한 말투가 내 마음을 자극함을 느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물방울 하나 느껴지지 않는 건조함이 흐르는데 읽는 나에게는 그녀의 머리 속에서 뛰는 아비의 땀이 흐르는 듯 수분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마치 작가가 일부러 자신의 감정을 담아 글자를 써넣은 것처럼 말이다. 하긴 어떠한 작가가 자신의 마음을 담지 않고 글을 쓰겠는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일부러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글들이 멀어지고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을 움직이며 나도 모르게 쌓아놓은 내 감정들의 상자를 꺼내 열어주는 작가들의 글이 좋아지고 있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김애란이란 작가처럼.

 

 김애란의 소설은 친근하면서도 낯설다. 그녀의 소설이 친근한 건 그녀의 나이가 나와 비슷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구나의 가슴 속에 담겨진 마음을 볼 수 있는 시선을 가졌기에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애써 어루만지며 치료를 해주기 보다는 누구나 불면의 밤을 보내 본 적이 있고, 누구나 스카이 콩콩을 타는 순간 상상의 나래에 빠지기도 하고, 누구나 편의점에 가서 필요하지만 필요없기도 한 물건을 사기도 함을 보여주며 우리는 모두 고독하지만 고립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을 전해준다.

 

 현대인은 고독함을 등에 지고 살고 있음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고독함을 벗어내기 위한 몸부림은 고립될 수도 있으리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서로가 있으며, 우리의 머리 속에는 누군가가 달리고 있으며, 우리의 발은 스카이 콩콩을 탈 수 있으며, 그걸 타는 순간 내게 윙크를 해 주는 가로등이 있다.

 

 김애란의 글은 소설 속 주인공의 좋아하던 가로등을 닮았다. 그녀의 책을 읽는 순간 무언가 설명하지 못할, 그러나 분명 변화가 있었다. 마치 가로등이 한 번 깜빡이는 순간 세상이 달라보이는 것처럼. 그녀의 윙크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웃음과 함께 마음의 일렁임도 주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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