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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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과 겨울의 고비, 그 순간을 닮은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계절과 계절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은 무엇이 하는 걸까? 제비가 돌아오는 것은 봄이고 제비가 떠나가는 것은 늦가을 이라고 하면 되는 것일까? 내 마음을 가져간 책 속의 세상은 따뜻하지 않았음에도 춥지 않았고 춥지 않았음에도 따뜻하지 않았다. 계절과 계절 사이의 틈새가 있다면 그 틈새에서 난 이 책을 읽었다고 말하려 한다. 풍성한 추수가 끝난 후의 쓸쓸한 가을의 끝과 소복소복 따뜻한 눈이 내리는 겨울의 시작 사이가 되는 계절의 바람 한 가운데서 책을 손에 들고 바람을 고스란히 느끼는 내가 보인다.

 

 <낮엔 가깝되 밤엔 먼 거리였다.  -p.17, 연>

 

 소설집인 이 책의 단편들을 읽으며 책 속의 구절이 떠올랐다. 낮에는 그토록 잘 보이던 길이 밤이면 흐릿하게 보이듯이  책은 낮에 읽었을 때와 밤에 읽었을 때의 감정의 물결이 치는 속도를 달리한다. 이런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하는 것일까? 물을 끌어당긴다는 달 때문일까? 밤에는 몸 속의 수분들이 감성을 자극하는 것을 찾아 이리저리 움직이며 이성적인 사고를 정지시키려 한다. 그런 수분들에게 윤대녕의 책은 파도를 치게 하고 깊은 바다로 끌어당긴다. 더 깊게, 더 고요하게, 그러나 분명 움직이면서.

 

<그래,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다보면 어느날 지쳐 쓰러지기도 하는 거지. 그런데 남들 눈에는 왜 그 모습이 이토 어여뻐 보이는 것인지. -p.25, 연>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누군가로 인해 아픔을 겪는 것이 아닐까. 누구나 아픔을 겪어봤기에 우리는 상처 입은 이를 알아본다. 어쩌면 상처를 간진한 이는 스스로 빛이 나는 건 아닐까. 상처를 이겨내기 위해 혹은 견뎌내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만큼 간절한 것이 어딨을까. 그건 사랑을 간절히 바라는 모습보다 더 애달프다. 이 책에는 그런 애달픈 이들이 많이 나온다. 그들을 보면서 작가도 말하지 않았을까. 잘 견뎌냈다고, 잘 살아줬다고. 우리는 상처를 가슴에 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며 살아가고 있음에.

 

<제비가 찾아올 때까지 어머니는 턱을 괴고 앉아 마루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어른들로부터 종종 지청구를 먹거나 걱정을 샀다. 계집아이가 벌써부터 무언가를 그리워한다고 말이다. 그런 계집아이는 나중에 커서 고독해지거나 또 남은 고독하게 할 팔자라고 했다. -p.43,  제비를 기르다>

 

 소설가라는 직업은 외로움이 깊을 거란 생각이 든다. 특히나 윤대녕이란 소설가는 가슴에 그리움의 호수가  있겠구나. 바이칼 호수만큼 투명하지만 들여다보면 들여다 볼 수록 자신이 보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게 될만큼의 겹겹의 외로움이 가득찬 호수를 간직한 채.  그는 글을 쓸 때마다 그 호수에 직면한 채 한참을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건 아닐지 읽는 내가 다 걱정이 될만큼 문장마다 물방울이 톡톡 새어나올 것 같다.

 

 <다음날 그는 창고에서 침대를 만들 때 쓰고 남은 목재를 꺼내와 외등外燈을 만들었다. 그 일은 아침부터 저녁 먹을 때까지 계속됐는데 마침내 어둠이 내렸을 때 가게 앞 처마밑에는 고래 모양의 외등이 황홀한 빛으로 떠 있는 것이었다. 푸른 고래 뱃속에서 터져나온 희미한 불빛 속으로 다시금 비가 뿌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고래등이라 불렀는데 어머니도 매우 마음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저녁 무렵에 외등이 켜지면 양철집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이 다들 바다처럼 그것을 올려다보곤 했다.

                                                                   p.170-171, 고래등>

 

 마음이 아픈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이 되어 떠다니는 등장인물이 많지만 작가는 그들에게 절망의 빛만을 주려 하지 않는다. 외로운 사람도 힘들겠지만 외로운 사람과 사는 사람도 힘이 든 것은 당연한 일. 외롭고 싶어 외로운 사람이 없음을, 외로운 사람도 외롭지 않기 위해, 가족을 위해 애를 쓰며 노력했다는 것을 작가는 알려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외로움을 감추지 못하고 외로움의 물결에 휩쓸려가기도 한다. 그 물결에 휩쓸려 가면서도 그들도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선물하고 싶었으며 별가루 같은 반짝임을 간직하게 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세상에는 사람을 일부러 외롭게 만드는 이는 없다고.

 

 아름답다라는 말이 나올만큼 윤대녕의 문체는 서정적이다. 풍경 하나가 눈 앞에 아스라이 나타나 사라지기를 여러 번, 마음 하나가 들어왔다가 나갔따를 여러 번 하는 사이 그의 책을 덮었다. 그리고 잃어버린 내 마음을 찾느라 홀로 헤매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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