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열하일기>를 읽지 못했습니다. 이 한마디를 스스로에게 고하는 길이 이토록 고개를 들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열하광인>을 읽으며 흥분했고, 열하를 고개 쳐들며 보게 되었으며, 감히 내 손으로 그 책을 만질 수 있는 현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느 한 시절에는 그 책을 읽는 것이 숨쉬는 것만큼이나 소중했음에도 마음대로 숨쉬며 읽을 수 없었음에도 읽는 이들이 있었는데 요즘 세상에 <열하일기>를 읽는 것은 숨쉬는 것보다 쉬움에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슴을 죄어오는 것은 책 속의, 아니 시간의 흐름 속 그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지는 까닭이다.
 

 시대를 되짚다 보면 특별한 책을 만나게 될 때가 있죠. 세상에 이런 책도 있구나! 라는 감탄도 부족할 것 같은, 그 책을 만나기 전의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믿어도 될 것처럼 새로운 세상을 열며 그 세상에서 벗어나면 죽을 것 같은 중독을 만드는 책이 한 권 있죠. 조선 후기 정조대왕 시절 그 책의 이름은 <열하일기>. 그 책 속에 담긴 사람들의 감탄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새로움을 향한 갈망은 무엇으로도 들지 못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그 책을 들 수 있다면 당신은 열하를 읽지 않은 사람일 거예요. 그 책은 그렇거든요. 그 책을 읽은 사람은 그 책을 절대 손으로 들 수 없어요. 가슴으로 마음으로 눈물로 한숨으로 열망으로 그리고 목숨으로 들 수 밖에 없죠.

 

 우물 속에 있는 개구리가 한 번 우연찮은 기회에 우물에 내려 온 두레박을 타고 세상을 나온 후에 세상으로 높이 뛰지 않고 다시 우물 속에 들어갔다. 왜? 우물 밖 세상에서 살고 싶기보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우물 안 개구리들에게 우물 밖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만을 위해 살기 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가기를 택하 것이었다. 그 개구리로부터 바깥 세상을 들은 개구리들은 다른 세상이 있었음을 그 세상에는 지금 그들의 세상을 바꿀만한 개혁의 요소를 가진 것이 많음을 알고 그 놀라움에 하루종일 개굴개굴 울어된다. 그들은 다른 세상에서 살기를 꿈꾸는 것이 아니다.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조금 더 잘 살게 모든 개구리가 잘 살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혼자가 살아남기 위함이 아님에도 언제부터인가 그 개구리들은 바깥 세상을 이야기 할 수 없다. 그 이야기는 금기시 되었기에. 하지만 그렇다해도 한 번 본 세상은, 누군가의 눈을 통해 유리창 밖을 보듯 그 세상은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한 번 본 이후로 그것은 삶을 다시 살게 해주었기에.

 

 이 책은 정조대왕이 금서로 정한 <열하일기>를 사랑하는 열하광들이 모인 백탑파를 둘러싼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정조대왕은 <열하일기>를 금서로 정했을까? 무엇보다 개혁을 주장했던 정조대왕이 두려워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금서임에도 열하광인이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만큼 열하에 빠진 사람들은 왜 열하에서 벗어나오려 하지 않은 걸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스스로 열하를 더럽히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내가 열하를 읽는다면 그 까닭을 알 수 있을까.

 

 내 짐작의 짐작을 뒤엎으면서 이야기는 진행되었고 내 짐작이 틀릴 때마다 나는 혀를 차기는 커녕 감탄하고 만다. 작가가 파놓은 함정에서 허우적 되면 어떤가. 그 함정마저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되어가는데. 사실과 허구, 어느만큼이 그 둘 사이의 선인지는 내 스스로 역사를 공부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읽는동안 세세한 주석에도 불구하고 낯선 단어들이 많아 고생하면서 참 역사를 모르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에 부끄러움마저 들었다. 이 부끄러움은 작가가 적어놓은 참고문헌의 방대함에서 더하였는데 작가가 한 편의 소설을 적기 위해 쌓는 지식의 양과 노력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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