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하녀 마리사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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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의 책을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의 책으로 내가 받았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것? 책을 읽고 난 후 마음 속으로 응원했던 작가의 성장을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일까?
 

 천명관, 그의 신간이 나왔다는 기사를 봤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래>에서 보여줬던 몽롱한 안개가 나를 휘감는 기분과 함께 그의 글을 맛볼 수 있다는 기대감은 인터넷 서점의 배송기간도 견디지 못할만큼의 안달을 나게 만들었고, 달려간 책방에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말에 먹고 싶었던 과자가 팔려버린 가게 문을 나서던 어린이의 발걸음을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주문을 하고 말았다.

 

 '기다리고 아 기다리던' 이 말을 쓸 수 있는 책이 <유쾌한 하녀 마리사> 였다. 주문을 늦게 한 나를 원망하며 수도권에 살지 않기에 당일 배송이 되지 않는 우리집을 원망하며 기다린 책이 손에 온 날 분명 책을 다 읽어야 했을 갈망이었것만 책은 사흘이 지나서도 내 손에 있었고, 나흘이 되어서야 손에서 놓을 수 있었다.

 

 왜일까? 그의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책은 하나도 읽지 않았음에도 단편에서 다른 단편으로 넘어가는 휴식 시간은 매우 길었고, 그동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헤매였다. 글을 어렵지 않을뿐더러 유쾌하면서도 놀랍고, 놀라우면서도 섬뜩했다. 그렇다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작가? 아니면 나? 혹은 소설 속 주인공들?

 

 <고래>와 만나게 해 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투덜거린 것은 책을 반밖에 읽지 못했다는 느낌때문이었다. 다 읽었음에도 책에서 기린이 튀어나와 내 책을 먹어버려 나머지 절반을 읽지 못한 기분이 들었던 것은 나만이 아님을, 이 책은 원래 11 권의 책이었는데 그만 누군가의 실수로 바람에 원고가 날아가고 남은 원고르 추려 만든 것이 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내게 그 원고의 행방을 알려달라고 말도 안되는 투정을 부렸다. 지인과의 대화에 내가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11 개의 소설들이 구조를 만들며 하나의 집이 되어간다. 그 집에 무엇이 있는지, 구조물은 어떤 것인지는 순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것을, 혹은 이미 만들어진 현실적이지 않은 집을 집이라고 믿는 것도 나만의 몫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야 나는 책을 다 읽은 것 같다.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작가는 내게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생각대로 상상하고 열린 결말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는 독자가 되어야 함을, 현대는 어쩌면 능동적인 작가를 넘어 능동적인 독자의 시대가 열리는 시대가 아닐까?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함은 작가만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걷어낸 안개 속에 있는 것인 아름다운 성일지? 잔혹한 꿈일지는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님을 책을 덮고서야 알았던 것이다. 책 속 제목을 하나씩 살펴보며 드는 생각들은 맛있게 내 앞에 차려지고 후식까지 먹은 기분으로 책을 덮는다.

 

 이번 책의 제목들과 등장인물들을 보며 색다른 분위기를 느낀다. 등장인물 이름이 외국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책은 한국적인 정서를 굳이 의식하지 않게 되었고 그 덕분에 책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게는 이런 점이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섣불리 단정지을려고 하지 말것, 믿을까? 말까?로 고민하지 말 것, 책 속에 빠져들기도 하고 혹은 책 밖에서 책을 파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것. 그렇다면 이 책은 당신에게 기대 이상의 상상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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