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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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밖에 춥다고 옷 단단히 입고 다니라는 엄마의 말을 어릴 때나 커서나 잘 듣지 않는 건 자식들의 공통점일까? 부모님의 말씀 중 틀린 것은 겨우 한 개 뿐이었는데 -내 자식이 세상에서 제일 낫다는 말씀- 왜 부모님의 말씀을, 사랑을 자주 잊거나 귀찮게 생각하는 걸까? 그 보다 큰 사랑을 알지도 못하면서 왜 부모님의 사랑을 귀찮다고, 원래 부모는 그런거라고 말하게 되었을까? 내 부모님처럼 절대로 자식을 사랑하지도 못할거면서.

 

세상에는 갚아도 절대 다 갚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부모님의 사랑이다. 부모님의 사랑을 갚을 수 없는 까닭은 그 사랑은 보상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보상을 바라지 않고 베푼 사랑에는 우리를 살게하는 진리가 담겨있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사랑이기에 그 사랑을 잘도 받아쓰면서 갚을 생각은 커녕 나 하나 잘살기만 신경쓰느라 바쁘다.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된다, 내가 한 그루의 나무라는 것을. 또한 내 나무 옆에는 늙은 나무 두 그루가 서 있음을.

 

나라는 나무는 태어날 때도 나무였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마치 아기였을 때의 나, 부모의 손이 필요했을 때의 나는 없었던 것처럼 나뭇가지를 흔들며 푸르른 나뭇잎을 자랑하며 햇빛이 좋은 곳으로 이동하느라 바쁘다. 알고 있는가? 부모가 되기 전의 나무는 자유롭다. 내 뿌리는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뿌리와 얽혀 있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많은 것을 바라고, 더 많은 것을 즐길수록 땅 속에 곧게 박혀있던 부모의 뿌리는 땅으로 나와 말라간다. 내 뿌리를 감싼 채 자식을 위해 이곳 저곳으로 뿌리를 뻗어야 한다. 뿌리를 더 길게 하기 위해 부모는 피를 판다. 내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 가고 싶은 곳을 데려다 주기 위해 피를 판다. 그렇게 부모의 나무는 말라가고 자식의 나무는 행복하게 푸르른 젊음을 과시한다. 부모의 상처 입은 뿌리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뿌리에 난 얇은 상처에 호들갑을 떨며 아파하는 젊은 나무에게 딱딱구리 의사 선생님이 이 책을 놓고 간다. <허삼관 매혈기>라는 책을.

 

<허삼관 매혈기(許三觀 賣血記)>는 제목 그대로 허삼관이란 인물이 피를 파는 이야기이다. 1950년대의 중국,  생사(生絲)공장에서 누에고치를 대주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활달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청년 허삼관이 등장한다. 

 

 

#첫번째 매혈-가정을 이루다.

허삼관은 건강한 남자는 피를 팔아야 한다는 말에  물을 배가 터질만큼 마시고는 피를 판다. 그 돈으로 그는 공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허옥란과 결혼을 한다. 이렇게 그는 피를 팔는 삶을 시작한다. 피는 몸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을 판 돈이니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돈이겠는가! 그 돈으로 부모님들은 가정을 이룬다. 그 돈의 양은 중요치 않다. 그저 그 돈이, 혹은 그 마음이 피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두번째 매혈과 세번째 매혈-내 자식이 아닌가벼?!

알뜰한 허옥란과 행복하게 살며 허삼관은 세명의 아들 일락, 이락, 삼락이를 두게 된다. 하지만 일락이 아무리 봐도 자신과 닮지 않았다는 사람들의 말에 의심을 하게 되는 허삼관은 일락이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허옥란의 말에 허탈함을 느끼고 일락의 친 아버지 방철장의 아들의 때려 크게 다치게 만들고 만다. 방철장의 아들 치료비로 인해 집의 가구들이 모두 실려나가자 허삼관은 두번째 피를 팔러간다. 피를 팔아 치료비를 대고 가구를 찾아온 허삼관은 허옥란에게 화가 나고 일락이가 미워진다. 그렇지만 일락이를 온전히 미워할 수 없음에 더 마음이 아파진다. 허옥란에게 화가난 허삼관은 바람을 피고 그녀를 위해 피를 팔아 맛있는 음식을 그집으로 보내지만 남편에게 들키고 말아 망신을 당하고 만다.

 

 

#네번째 매혈-나는 못 먹어도 자식은 먹이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맘.

허삼관은 피를 팔아서 생활을 연명하는 그런 엉터리 가장이 아니었다. 가장 열심히 일을 했고 알뜰했다. 하지만 그는 가난한 노동자였기에 극심한 기근이 찾아오자 가족을 위해 허약한 몸을 이끌고 피를 판다. 가족들과 피를 판 돈으로 국수를 먹으러 가는 허삼관은 일락이를 두고 가자고 한다. 일락이는 내 자식이 아니므로 피를 판 돈을 쓰고 싶지 않다는 허삼관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허기에 지친 일락이를 등에 업고 국수를 사주러 가는 허삼관의 뒷모습에 코가 시큰해진다. 기른 정이 낳은 정보다 더 크다는 말은 어쩌면 진실인지도 모른다. 아니 진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허삼관과 또 다른 부모님을 보면서.

 

#허삼관의 매혈여행-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못 하겠소!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고 농촌으로 일락과 이락이 떠나자 아들들을 위해 허삼관은 피를 판다. 피를 판지 한달도 되지 않아 피를 판 허삼관은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졌다. 그가 어지럽다고 했을 때 손에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이렇게 그가 죽지 않기를 바랐다. 살아난 허삼관은 나의 심장을 더 내려놓는다. 그가 일락의 병원비를 위해 매혈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그를 보며 책을 손에서 내려놓을 수 밖에 없었다. 얼마나 한참을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더이상 피를 뽑을 수가 없다니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는 허삼관은 문득 다시 피를 팔고 싶어한다. 평탄한 생활이었으니 돈이 필요했다기 보다는 피를 판 후에 먹는  '돼지간 볶음과 황주'를 위해서 였을 것이다. 처음으로 자신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위해서 피를 팔고 싶은 허삼관은 늙은 몸으로 피를 팔러간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허삼관은 피를 팔 수 없다는 말에 눈물과 함께 울음을 터트린다. 더이상 젊지 않다는 것, 온 가족을 구해주던 피를 팔 수 없다는 것만큼 무서운게 그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허삼관 매혈기-웃어야 하나요? 울어야 하나요?

허삼관의 감정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이 책을 처음에는 웃으며 읽어내려갔다. 재치있는 허삼관의 말투와 아내 허옥란의 행동이 나를 웃게 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내려가며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하는지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슬픈 상황에서도 슬픔을 드러내지 허삼관을 보며 나는 대신 아파야 했다. 자꾸만 내 부모님의 얼굴과 그의 얼굴이 겹쳐져서 울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웃음과 눈물을 함께 얼굴에 나타나게 할 수 있다는 말을  이제야 알게 된다.

 

#부모의 사랑, 자식들은 그것을 알아봐주어야 한다. 

부모의 사랑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보답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보답이 되지 않을 것을 안다고 해도.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것이 모든 부모의 바람이라고 한다. 단지 그 하나의 바람을 위해 부모들은 뿌리를 내놓으며 자식의 나무를 키워준다. 아프고 힘들다고 해도, 피를 팔아서라도. 그것이 행복이라고 말하며.

 

부모가 되지 않으면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그 아픔을, 그 답답함을, 마음 속에서 삭히는 방법을 알 수 없으므로. 자식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뿌리를 땅 속으로 내리면서, 자식을 위해 땅 속에 있는 뿌리를 햇볕이 강한 지상으로 내놓으면서 부모들은 행복해한다. 그들이 움직일 수 없음에도, 그들의 뿌리가 말라간다해도 자식만 행복하다면 그들도 행복하다고 한다.

 

우리는 그런 부모님의 나무를 한번쯤은 될 수 있으면 자주 찾아뵈야 한다. 우리이 푸르름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며 당신들이 만들어준 것이라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 그 분들의 삶이 허탈하게 하지 않기 위해! 아무리 보답을 원치 않는 사랑을 갚을 방법은 당신도 부모가 되는 것이라는 잔소리를 듣는 다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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