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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평점 :
사람의 몸이 감옥도 아닌데 사람의 마음에 수인囚人이 갇혀 있다. 이 시간 낮선 장소에서 내 마음 속 수인이 태어난 곳 변두리 피시방에 와서 상실의 시대를 이야기 하는 건 어쩐지 쓴 웃음이 난다. 그럼에도 혼자 모텔방으로 들어가지 못함은 아직은 이르기 때문이다. 잠들기 이르고, 생각을 하기에도 이른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이 시간은 와타나베가 그토록 견디기 힘들어했던 4월이 두 번 되풀이 되는 것처럼 잔인하다.
사람은 그런 것일까? 마음 속에 수인 한 명쯤은 두고 살아야 하는 슬픈 존재인걸까? 잊을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하려 해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얼굴을 가진 수인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와타나베의 나오코처럼, 나오코의 가즈키처럼 또 누구의 누구처럼...그런 수인을 품고 사는 우리기에 우리는 이토록 외롭고 흔들거리는 몸을 고독 속에 내 던져야 하는 것일까? 법정 스님말대로 하려고 애를 쓴 적이 있었다. 고독하되 고립되지는 말아야 하는 것. 고립,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기에. 그러나 나오코가 그러지 못하였던 것처럼 나 역시도 그 일이 힘들어 지려 하는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은.
상실의 시대를 스무 살에 읽었다. 그 시절 내게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달콤한 비스킷도, 씁쓸한 비스킷도 아니었다. 그저 7년이 지난 뒤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아 다시 읽은 책에 지나지 않을만큼의 감흥을 주었을 뿐이다. 그런 책이 7년이 지난 후 온갖 맛의 비스킷이 담긴 통이 된다. 비스킷 하나마다 씁쓸한 커피를 마셔야 할 것 같은 책. 수분기 넘치는 바람과 비올 듯 흐린 하늘이 동반 되어야 할 것 같은 책은 읽는 동안 행복하지 않다. 그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슬펐고 우울했으며 가슴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이 여행 가방에 넣은 것은 왜일까? 문장마다 나를 놓아주지 않는 듯한 느낌은 실은 내가 이 책을 놓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놓고 싶지 않은 책, 그러나 반복해서 읽을수록 희망보다는 허무를 더 줄 것 같은, 그럼에도 봄철의 곰만큼 좋아질 것 같은 책이다.
와타나베의 말처럼 사람은 가슴에 수인을 가두어 둔다고 해도 살아가야 한다.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인 그 말. 살아가야 한다. 죽은 이가 얼마나 소중하고 애달픈 존재인지 모르지만 그가 죽었다 해도 난 그와 같은 나이, 혹은 그가 죽었을 때의 나의 나이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성장해야 한다. 눈물을 흘리고, 피를 토할만큼 발악을 하면서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 그 사실이 싫어서 늘 같은 덫에 사로잡히고 주저앉았다.
내 마음 속에 수인으로 자리잡은 누군가를 가두면서 난 여덟 살에서 조금도 자라지 않을려고 했다. 마치 그 수인을 죽을만큼 사랑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그 수인이 내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자라지 못했다.
하지만 성장해야 한다. 그를 두고.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 한다해도 살아있는 인간은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남들이 다 내게 말했을 때는 한 귀로 흘리던 그 진리가 책을 통해 뼈에 새겨질 것 같다. 마치 수인을 가둔 마음의 창살에 새겨질 듯하다.
이 책을 다시 읽은 것은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에 대한 선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