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짹깍짹깍, 시계 소리가 선명하게 귓가를 파고 들고 잠은 이미 저 멀리 떠나버리고 머리 속에는 몇 가지 영상들이 차가운 공포를 자아낸다. 밤이면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내게 <ZOO> 는 읽지는 말았어야 하는 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그런 공포 문학이겠니라는 겁없는 생각은 하룻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새워야 하는 대가를 치르게 했다. 10가지의 이야기, 그 속에 담긴 9개의 공포는 내게는 낯선 그러나 분명 내 온 몸을 휘감을 낯설음이었다.

 

 

 #어둠, 완전한 어둠이 아닐 때 공포는 배가 된다.

 정작 무서운 것은 귀신이 아니라는 사람이라는 할머니의 말씀. 책 속의 공포는 대부분 사람이 자아내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일까? 사람밖에 믿을 게 없다고 말하는 세상이기도 하고, 사람이 가장 무서운 세상이라는 말 사이에서 얼마나 더 방황해야 하는 것일까? 스멀스멀한 공포라는 광고문구의 영화를 보면서도 이 정도의 스멀거림은 느끼지 못했다.

 

 오츠이치가 내게 선사 해 준 공포는 까만 어둠이 아니다. 투명한 어둠, 그 어둠을 응시하면 무언가가 보일 듯한, 그러나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둠의 저편이 자아내는 공포는 생각보다 혹독하다.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만들어 낸 투명한 어둠은 분명 무섭고 두려운데도 아름답다. 그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으면 전혀 다른 나와 그러나 나를 닮은 나와 인사를 하게 될 것 같은 매혹적인 아찔함. 사람의 마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 저자가 전해주는 공포는 더욱 섬뜩해진다. 그가 나인 것 같아, 나도 그런 선택을 할 것 같아서.

 

 

 

#색다른 공포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책 속에는 10가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양지 陽地의 시 詩>를 제외한다면 9개의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팔에는 소름이 마음 을 얼어붙게 할 것 같은 공포로 몰아넣는다. 9 가지의 공포가 선사하는 섬뜩함이 놀라운 것이 아니다. 그보다 놀라운 건 각각의 공포가 모두 다른 공포라는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어디까지 인걸까? 이 작가 얼마나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어둠의 밑바닥을 여행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 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만다. (어쩌면 저자에게는 공포의 이야기 소재가 열리는 나무가 있는 것은 아닐까?)

 

 9 개의 공포의 집으로 초대된 분들은 아마 그 공간의 아름다움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공포는 숨이 막히게 한다. 영화 <장화와 홍련>을 보면서 아름다움과 공포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처럼 책 속의 공포를 읽을 때마다 그 아름다움과 투명한 어둠 속에서 나는 파도에 떠다니는 해초라도 된 듯했다. 그렇게 떠다니다 보면 주인공들과 공감을 할 수 있다. 아, 이럴 수도 있겠구나, 이 사람 이래서 이런 행동을 했구나 라고 공감하면서 공포는 색다름으로 전해진다. 지금껏 공포물들은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여겼는데 이 책의 공포는 그렇지 않다. 책 속의 주인공이 내가 될 것 같기도 하여 더욱 그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영화를 기대해볼까?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들> 이란 영화를 본 후 원작을 찾아 보게 되었는데 그건 예상외로 단편이어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책이 떠올랐다. 영화의 소재로 삼는다면 참 좋은 소재들로는 딱이라는 생각과 함께 영화로 나온다면 눈을 가리고서라도 꼭 보리라 다짐해 본다.

 

여름 밤 더위를 날려버릴 책을 하나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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