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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 제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지닌 삶의 무게가 유독 무겁다고 생각될 때가 있다. 무엇을 해도 가슴은 채워지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 소리만 귓가를 채우고 나는 더욱 심연으로 가라앉고 마는 시절, 나를 위로한 건 행복한 사람들의 위로가 아닌 나처럼 힘든 혹은 나보다 더 큰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고 아픔을 지니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던 것일까? 나처럼 가슴에 찬 바람이 부는 이가 더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던 것일까?
책 속의 주인공 다다와 교텐을 통해 내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메워진다. 살아감에 있어 따뜻한 위로는 매번 예상치 못한 곳에서, 혹은 사람에게서 받는 것 같다. 아니, 예상치 못한 위로이기에 위로 받는 것이다. 나를 위로해주려고 애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처를 내보일 수 없는 까닭은 왜일까? 너무 가까우면 상처에 바람을 불어 줄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책을 읽는 동안 왜 이렇게 많은 질문이 나를 채워 나가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질문과 알고자 하는, 얻고자 하는 답은 무엇일까?
#살다가 후회되는 일은 다시 되돌릴 수는 없는 건가요?
1)대답- 예.
2)부연 대답- 살아가면서 되돌릴 수 있는 일은 없어요. 하지만 살아있다면 기회는 남은 거예요.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움직일 수는 없지만 당신이 누군가에게 줄 수는 있어요. 받지 못한 것을, 받고 싶었던 것을 줄 수는 있어요. 그걸 기억해야 해요. 너무 쉽게 포기하거나 도망치면 안 되요. 살다보면 기회는 있는 거니까, 그 기회를 꼭 잡아요.
3)덧 붙이기
-심부름집을 운영하는 다다와 옆에서 껄렁(?)대는 교텐은 초등학생 유라에게 기회는 꼭 온다고, 그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해준다. 그들이 전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그들 자신에게 하는 말일 수 있다. 가슴에 상처를 간직한 교텐과 다다, 그들에게도 기회는 있는 것이다. 다시 행복해질 기회가! 그러니 열심히 살아 있어야 한다, 기회는 있으니까!
# 상처 받았고, 상처 주었다 해도 전과 똑같이 살 수 있는 건가요?
1)대답- 아니오.
2)부연 대답- 상처가 생기고 흔적이 남았다면 분명 전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어요. 다시 전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은 가끔 우리의 무릎을 꺽어놓기도 하고 우리의 숨통을 조이기도 해요. 하지만 다들 알고 있어요. 흔적은 남겠지만 분명 회복할 수는 있다고. 다시 원래대로 돌려 놓을 순 없어도 회복할 수는 있다고. 내 안의 상처가 너무 많아서, 그 흔적이 너무 생생하다고 겁먹지는 말아요. 천천히 상처를 문질러 주면 분명 그 부분에도 온기가 돌아요. 당신의 상처도 당신이라는 것을, 함께 이겨내고 살아간다는 것을 기억해요.
3)덧 붙이기
-교텐의 새끼 손가락에는 큰 상처가 있다. 유독 그 손가락에만 핏기가 돌지 않고 뻣뻣한 느낌이 드는 건 예전에 손가락이 절단 되어서 봉합을 했기 때문. 붙어있지만 전과는 다른 손가락. 그 손가락을 통해 알게 된다. 상처는 흔적을 남기고, 흔적은 남지만 회복할 수는 있다고. 사람 마음 역시 마찬가지, 흔적은 남고 전과는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회복할 수는 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일까? 상처를 받은 쪽도, 상처를 준 쪽도 마음의 상처를 혹은 몸의 상처를 입는다. 일방향인 상처는 없다는 것, 누구나 자신의 상처에 바람을 불어 줄 사람을 기다리는 것을 기억한다면 누구나 누군가의 치료제가 될 수 있다.
#왜 이 책이 나오키상 수상작인가요?
너무나 익숙한 일본식 소설, 왜 나오키상을 수상한걸까?
짤막한 사건들로 인해 마음의 위로를 받는 사람들과 주인공들. 사람과의 관계는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이어서 심부름 의뢰를 받은 다다는 그 심부름을 통해 의로인의 마음을 의도하지 않게(?) 치료하게 되고 다다 역시 치료를 받게 된다. 다다의 치료는 교텐의 역할이 훨씬 더 크긴 하지만.
교텐과 다다는 각각의 상처를 간직한 채 고등학교 졸업 후 30 대가 되어 다시 만난 사이다. 아무 곳에도 갈 곳 없는 교텐은 다다네 심부름집에 얹혀살고 엉뚱함과 기발함 혹은 독특함으로 사건을 일으키거나 해결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하면서 다다의 심기를 건드린다. 다다 역시 교텐에게 부드럽기만 한 것은 아니라서 둘 사이를 보고 있으면 찬 바람이 쌩~하고 불 것 같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찬 바람이 부는 건 두 사람에게 감춰진 상처를 들춰내는 작업임을 알게 되었다. 곪을대로 곪은 상처임에도 들춰보지 않아 얼어버린 상처에 바람을 쐬여주는 교텐과 다다, 그들의 마음에 간직한 상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쓰러울 만큼 천천히 치료되어 가기 시작한다.
책을 읽는 동안 왜 나오키상을 받았는지 생각했다. 특별함이 없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는 내게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따뜻해진 마음을 보게 된다. 아, 이런 따뜻함이 이 책을 나오키상을 타게 한 걸까? 고독과 고립, 그 속에서 그래도 희망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 되어 있는 것이라고 믿게 해주는 것. 역시 소설은 희망을 들려주는 것. 그것에 충실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