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가끔 내가 썼던 서평을 보고 책을 읽었는데 별로였다며 항의 쪽지를 보내온 분이 계시거나 같은 책을 읽고 덧글로 너무 과장된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서평은 분명 그 책을 고르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다음에 살 사람을 위해 지금 내가 느끼는 희열이나 감동을 약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서평, 그건 그 책을 향한 나의 마음. 그 마음이 어느 때는 사랑이었다가, 어느 때는 이별이었다가, 또 다른 때는 짝사랑, 혹은 씁쓸한 마음이 되기도 한다. 서평은 지극히 주관적이란 말을 하는 이유는 이 서평은 이사카의 책을 사랑하는 독자가 쓸 서평이기에.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몇 번이고 만날 때마다 사랑하게 만드는 작가. 그의 책을 사랑한다.

 

 이사카의 책은 나를 반하게 한다. 푹 빠져들게 만들어 놓고 두근거리게 해놓고 정신도 못 차릴만큼 바라보게 해놓고 찰나의 순간에 내 가슴으로 바람을 훅 집어넣는다. 행복했잖아, 좋았잖아, 우리...이렇게 말하며 나는 결국 다 읽지 못하고 책을 덮고 마는 것이다. 그제서야 생각한다. 이사카를 잘 알잖아? 그의 책을 대부분 읽어봤잖아? 이런 기분 처음도 아닌데 왜 그래? 아아, 이사카를 사랑했었지. 그의 책을 사랑했었지. 아니, 지금도 사랑하지.  왜, 그를 만나면 항상 처음 만난 것처럼 가슴이 뛸까? 왜, 이렇게 아무 준비도 못하고 사랑을 처음 하는 여학생처럼 풍덩 빠지게 되는 걸까? 답은 하나, 이사카 코타로이니까! 이사카 코타로의 책은 물 웅덩이가 아주 많이 펼쳐져 있는 길을 걷는 느낌이다. 빠지지 않는 것이 용할만큼 다량의 물 웅덩이. 한 번 빠지면 두 번, 세 번은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든다.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의 특이함은 보지도 않고 나를 흥분 시킨 것은 띠지에 적힌 "제 25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수상작" 이었다. 번번히 상에서 미끄러지는 악동같은 이미지의 이사카가 상을 받다니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온다. 이건 분명 짝사랑의 공통된 특징일 것이다. 그 두근거림으로 마음을 열고, 책을 열고, 귀를 연다.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은 책을 시작하면서 내 pmp에 저장되었고 책이 끝날 때까지 나와 함께 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책 속 그들의 이야기에 동참은 못하겠지만 같은 음악을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금은 늦게 참여한 그가 찾아가는 그들의 이야기-현재-시나의 시선

 두 명의 사내가 서점을 습격하기로 결정한다. 한 명이 서점으로 들어가면 어딘가 모르게 어수룩한 남자가 뒷문에서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며 망을 본다. 아주 작은 서점을 습격한 그의 이름은 가와사키, 밥 딜런의 노래를 열 번 부르는 그의 이름은 시나. 그리고 지금은 현재.

 

  대학교 신입생인 시나는 자취방으로 온 첫날, 조금은 색다른 만남을 두 번 가진다. 첫번째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꼬리끝동글말이" 란 도둑고양이. 그의 방에 서슴없이 들어 온 고양이와의 낯선 인사 후에 밥 딜런의 노래를 부르며 쓰레기를 버리는 시나에게 누가 말을 건다. 그의 이름은 가와사키. 시나의 옆 방에 사는 사람이다. 그가 좋아하는 가수는 밥 딜런. 시나가 유일하게 팝송을 암기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 그것만으로 된 걸까? 서로를 잇는 다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가와사키를 만나고 그의 방으로 간 시나는 가와사키의 엉뚱한 제안에 당황한다. 옆 방에 실연으로 힘들어하는 외국인이 있으니 서점에서 "대사전"을 훔쳐다 주자고! 사주는 건 싫다고. 꼭 훔쳐다 주고 싶다는 가와사키의 엉뚱함에 눈만 커지는 시나, 같이 하자는 말에 고개가 절로절로. 하지만 그들은 첫 장면에서 보듯 함께한다. 그러니 이건, 시작인 가와사키의 이야기? 아니, 이건 끝에서 시작한 시나의 이야기?

 

 현재는 이렇게 흘러간다. 시나가 일기를 쓰지 않는 건 다행인 일.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수 많은 일들로 인해 그는 일기장을 10권도 더 써야 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일기장은 애초에 필요 없는 것 아닐까? 시나는 잊지 못할테니까. 그들의 이야기를.

 

#이야기의 시작은 2년 전 -과거-고토미의 시선

 상큼함과 당찬 웃음이 매력인 고토. 겉모습은 일본인이지만 대화 하고 나면 외국인임을 금방 알게 되는 부탄에서 유학 온 도르지. 잘생긴 얼굴, 어딘지 모르게 아름다운 얼굴, 수 많은 여자와의 섹스가 인생의 우선 1순위인 남자 그러나 미워하기에는 귀여운 말을 맑은(?) 행동을 하는 남자 가와사키. 2년 전에 그들은 친구. 아니 조금은 복잡한 사이의 친구이다. 고토미는 과거에 가와사키와 사귀었다가 금방 헤어졌고 후에 도르지를 만나 사귀게 되고 2년 전 셋은 우연히 얽히게 된다. 서로에게 끈이 이어지는 것은 가끔 복잡한 사건 뒤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그 과거, 그 근방에서는 애완동물을 납치해서 잔인하게 죽이는 애완동물 살해범으로 인해 신경이 곤두선 상태. 고토미와 도르지는 우연히 공원에서 그들과 부딪히고 의도하지 않은 싸움을 하게 되고 고토미는 정기권 케이스를  떨어 뜨린채로 도망치게 된다. 그 안에는 주소와 전화번호가 담겨 있는데.......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듯한, 이미 일어난 듯한데 예상 외로 이야기는 고토미와 도르지 그리고 가와사키의 이야기의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잊을만 하면 애완동물 살해범들의 목소리가, 손길이 심장을 떨리게 하니까. 

 

 고토미의 시선임에도 가와사키, 도르지의 독특한 삶에 대처하는 자세가 나를 끌어들인다. 가와사키, 그가 바람둥이라고 해도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여자가 될 수 있을까. 투명한 웃음을 닮았을 것 같은 가와사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들어있다. 그가 말하는 바이러스, 그에게 있는 문제는 무엇일까로 내내 머리를 움직여야 하고 도르지의 순수한 모습과 부탄의 생활양식을 듣느라 과거 속 이야기에서도 내 눈은 바쁘다.  

 

#이건 아주 짧은 설명, 책을 덮은 뒤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 볼 당신.

 위의 짤막한 설명은 책의 1/4 도 안 되는 이야기. 이야기의 시작과 이야기의 끝이 맞닿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왜 나는 짐작을 하지 못할까! 책은 시나가 말하는 현재와 고토미가 말하는 2년 전으로 번갈아 가며 진행된다. 그래서 더욱 흥분되고, 더욱 궁금해진다. 대체 무슨 사연이? 무슨 결말이? 시작과 끝의 어디쯤을 알고 있는데도 왜 이야기를 연결시키지 못하는 걸까? 이사카가 말한다. 너가 나한테 대책없이 빠져들어서라고! 가와사키에게 여자들이 빠져들 듯.

중반부가 되면서 제목의 뜻을 짐작할 수 있는데 그 짐작은 후반부로 갈수록 새롭게 정립된다. 집오리와 들오리..우리는 누구나 집오리와 들오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기준의 모호함. 그 속에서 왜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단정 지으려고 하는 걸까? 코인로커의 의미까지 책을 읽을수록 짙어져가는 책의 제목을 스스로 생각해보게 하는 것 또한 이사카씨의 매력인 것 같다.

 

 책의 5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부분을 남겨두고 딱 한 번 책을 시간이 남는데도 덮은 적이 있다. 그 철렁거림. 예상 했던 것과 예상하지 못한 것 그 사이에서 나는 무얼 해야 할 지 몰라 마시던 커피를 남겨두고 책을 들고 나와 멍하니 걸었다. 겨우 읽은 남은 페이지들. 그 이야기는 하지 못한다. 금방 이별을 한 여자처럼 나는 조금만 그 이야기를 꺼내면 울 수도 있을테니. 그러니 그건 당신의 몫, 당신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왜 좋아하는 책의 서평은 길어질까. 길수록 읽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텐데, 그럼 이 책을 사려는 사람은 읽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더 많은 말을 하지 못해 안달일까. 그건, 단순하다. 좋아하니까! 이사카 코타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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