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란 중요한 거예요. 원초적으로 그래요. 기록이 남지 않은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아니라고요? 실존이란 엄연하고도 무거운 거라서, 지켜보는 눈길이나 기록하는 손가락 따위의 존재 여부로 달라지지 않는다고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나요. 나하고는 생각이 다르군요.

존재했던 엄연하고 무거운 현실도,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져버립니다. 그 반대로, 존재하지 않았던 일도 일단 기록되어버리면 존재했던 것으로 착간되어요. 세월이 흘러 증언자들이 모두 늙어 죽어버리면 더욱 그렇죠. 기록은 기억의 확장이니까요. 우리는 기억을 믿듯이 기록을 믿어요. 결국 기록은 존재를 대신해요. 존재는, 기록이 남아 있는 그 범위까지만 유효성을 가지죠. 그렇기 때문에 영리한 사람이라면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그 기록이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에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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