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로그'라는 책을 읽고 싶다고 생각한것은 작가도 책의 내용도 아니었다. 단순히 제목때문이었다. 이어령선생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내가 이어령님이 대단한 필력가이시라는 것도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작가를 보지않고 내용을 보지않고 제목만으로 책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디지로그' 라는 제목이 정겨웠다. 디지로그란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합한 신조어이다. 자세히 말하면 디지털의 기술과 아날로그의 감성을 합한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스스로가 아날로그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다. 자판보다는 글씨가 더 쓰기 편하고 디지털기기에 대해서는 한발 앞서 그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아 매번 뒤늦게 물건을 구입하고는 하였다. 디지털이 내게 가지는 의미는 차가움이었고 아날로그가 내게 가지는 의미는 뜨거움이었다. 그랬기에 차가움보다는 뜨거움을 지향하는 인간으로 남고자하여 일부러 아날로그에 집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디지털의 매력을 애써 외면하면서. 차가움은 차가웠기 때문에 뜨거움을 원했으며 뜨거움은 뜨거웠기 때문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맞이하고 싶어했다. 그런데도 나는 매번 둘중 어느 하나를 고르면 하나를 포기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 내게 이책의 제목은 함께 할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메일보다는 편지가 따뜻하기는 하지만 번거로움에 자주 쓰지 못해 실용성이 없었던 편지에 이제는 메일로 편선지를 고르고 손글씨로 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예가 너무 세대에 뒤떨어졌다 해도 이해해주세요-저는 요즘에야 메일을 보낸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키워드를 '디지로그'로 보고있다. 이것만으로 매력적인 일이지만 더욱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일은 과거에 바탕을 두었다는 것이다. 과거-현재-미래가 이어지는 이야기만큼 매력적인게 어디있겠는가.
작가는 이 책에서 상당부분을 독자에게 맡기고 있다. 머루주는 담가주었으되 그 머루주를 얼마나 숙성시켜 맛있게 먹을지는 독자의 몫이다. 섣부르게 먹을 것인가 향과 맛을 다 음미할수 있을 만큼 상상력을 발휘할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작가를 원망했었다. 작가만 알고있는 듯한 그 말투에 나는 머리속으로 작가가 던진 실마리하나에 상상력과 내 얕은 지식과 경험을 떠올려야했다. 작가는 내게 능동적인 수신자가 되길 바란것이다.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오로지 독자의 몫인것이다.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데로 받아들여라. 작가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입장에서 내게 한국적인 방법으로 책을 보기를 요구한다. 한국인은 상대방의 얼굴이나 행동 말투에서 그말을 한 사람의 의도를 짐작하고 받아들인다. 외국사람들처럼 티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한국인의 장점은 상대방에게 섬세하리만치 표정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작가의 말투와 보이지 않는 감정을 보고 그가 나에게 원하는 것을 알았으니 나는 작가에게 투정할 수 없다. 나는 작가가 뛰어준 디지로그라는 배를 나만의 방식으로 치장해야한다. 그 치장이 내 짧은 견해로 틀린거라 하더라도 전혀 겁먹을 필요가없다. 작가는 친절하게도 이 책의 후편인 전략을 내 배의 인테리어 담당으로 보내주기 했기 때문에. 이 책은 '선언'이다. 배가 출항의 포를 올렸으니 내가 탄 배는 이미 출발했다. 뛰어내리면 망망대해니 나는 그 시간을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럼 디지로그의 배를 천천히 편한 마음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배의 겉은 견고하며 정교하다.이것이 디지털의 기술이다. 디지로그는 앞에서 말했듯이 디지털의 기술과 아날로그의 감성의 결합이다. 우리나라가 디지털 강국이라는 표현은 이제 너무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을테니 그면에서는 더 설명할 말이 필요없다.(배의 정교함과 견고함을 더 말할 필요가 없게죠?) 우리는 디지털강국으로 안주해야하는가...? 작가는 우리에게 디지털 강국을 뛰어넘어 디지로그의 강국이 되라고한다. 디지로그는 차가움과 따스함의 공존이다. 디지털강국이라는 이름으로 차갑지만 튼튼한 갑옷을 만들었다면 옷을 입을 주인을 구해야한다. 그 주인을 어떻게 고를것인가? 차가운 머리를 가진 사람이 전장에서 승리할지는 몰라도 그 사람은 병사들을 함께 데려가지는 못한다. 병사들을 이끌 사람은 따스한 지혜를 가진 사람이어야한다. 그 주인이 아날로그인 것이다. 차가움과 뜨거움은 어느한쪽 발을 담그고 있으면 힘들기 마련이다. 둘을 합한다면 그 따스함속에는 언제든 몸을 담그고 있어도 빼고 싶지않을 것이다. 디지털의 기술과 아날로그의 감성의 융합은 우리에게 기분좋은 온도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배의 외관을 다 살펴보았다면 그속의 아날로그로 내려가 보자.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을 뒤떨어졌다고 무시했다. 과거를 토대로 서지 못함은 사상누각이 될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밝혀줄 단하나의 열쇠라면 그 탑은 입김하나에도 무너질 것이다. 한국인은 한국인을 위해 지은 집에서 살아야 편안하다. 한국적인 아날로그는 무엇인가. 작가는 한국적인 아날로그를 한국인의 식습관과 연결시키고 있다. 상상이 가는가? 우리가 매일 매일 먹는 식습관이 디지로그로 가는 열쇠였던 것이다. 한국인은 무엇이든 잘 먹는다. 나이도 먹고 욕도 먹고 챔피언까지도 먹는다. 먹는것은 무엇인가? 남는 것이다. 우리 옛말에 먹는게 남는것이란 속담을 작가가 말했을때 '옳커니!'하고 무릎을 쳤을만큼 이말은 굉장하다. 여태까지 우리가 먹은게 얼마인가. 그 모든게 다 사라지는게 아니라 남아있는 것이다. 먹는게 남은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어금니로 꼭꼭 씹어먹어 우리 속으로 들어와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먹는게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생존을 위한 삶보다는 한단계 높은 단계를 지향하며 살겠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거기에 작가는 한소리한다. '당신들은 먹는것을 너무 우습게봐.' 우리는 먹기 위해산다. 음식을 먹기 위해 사랑을 먹기 위해 칭찬을 먹기 위해 행복을 먹기위해 말이다. 그런데 먹는게 뭐 그리 대수냐니!! 우리는 식구로 출발해 어디서든 식구로 살아가는데 말이다. 집식구 학급식구 회사에서 한식구 월드컵때는 전국민이 붉은악마라며 한식구라고 부르짖는것이 한국이다. 이런데 먹는것 만큼 중요한게 어딨겠는가.
한국이 먹는것만 잘한다고 디지로그의 강대국이 될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디지로그인 이배는 나무로만 이루어진 것이아니다. 수천가지가 수만가지가 모이고 모여 배를 만든것이다. 모아놓았다고 다가 아닐것이다. 모아놓더라도 섞어놓더라도 그것은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자신만의 자리에서 제 기능을 다해야 배가 움직이는 것이다. 이런면에서 한국인의 비빔밥정신은 놀랄만큼 디지로그의 길을 뒷받침하고 있다. 여러 재료가 섞였 새로운 맛을 내지만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면 속에든 모든 것들의 맛이 난다. 이것이 한국의 경쟁력이다. 합하여 새로운 맛을 내지만 그 속 맛또한 변하지 않고 보존할 수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아날로그가 디지털 속에 들어간다하더라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사라질거라고 겁먹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날로그는 디지털속에 들어가 새로운 맛을 창조하고 있지만 또한 우리에게 아련한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고있기도 하다.
작가는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인을 사랑한다. 그렇다고 작가가 한국을 좋게 좋게 보는것만은 아니다 작가는 한국을 청룡열차라고 부르며 한국의 불안정성을 인정한다. 그 불안정때문에 한국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지만 작가는 그 불안정성까지 품어주려한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되 그것에 안주하지는말라. 우리는 청룡열차가 아슬 아슬 하더라도 타는 것처럼 그 청룡열차는 반드시 정해진 궤도를 따라 도착할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청룡열차에서 떨어지는 끔찍한 사고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 청룡열차 타기를 포기한다면 한국인이아닌것이다. 한국인은 그 사고를 낸 청룡열차의 문제점을 찾아내 고치고 앞으로의 예방을 한후에 다시 청룡열차를 타는 용기를 가진 민족인것이다. 첩첩산중에서 먹을게 없어 고민하는게 아니라 그곳에서 나물을 뜯어 그것을 먹는 민족이 한국인이다.
아직 나의 디지로그 항해는 끝나지 않았다. 전략이 나오기 전에 나는 디지로그의 배를 보다 아름답게 하지만 조화롭게 꾸밀것이며 전략이 나왔을때 과감히 맞지 않는 그림이 있다면 전략인테리어와 함께 그 그림을 다시 그려넣을 것이다. 디지로그의 항해는 나를 믿어준 작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여행이었다.
-------------------------------------기억에 남는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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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 책은 와성된 것이 아니다.
읽는 사람의 상상력 속에서 조금씩 발효되어 가는 머루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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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이 상호의존성과 관계를 중시하는 배려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포크와 나이프는 개체의 분리를 기본으로 하는 독립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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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야말로 디지털의 공허한 가상현실을 갈비처럼 뜯어먹을 수 있는 어금니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이버스페이스의 디지털 공동체와 식문화의 아날로그 공동체를 이어주는 디지로그 파워가 희망의 키워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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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밥은 여든여덟 번 손이 가야하다는 농업시대의 전설을 그대로 간직한 채 지금도 밥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이미 산업과 정보시대의 두 기술을 한데 모은 자동 전기밥솥으로 지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