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성기담 -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 사건과 스캔들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경성기담이란 제목의 책을 봤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여름에 잘 맞는 책이겠구나였다. 무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얼려줄 책이거니 했다. 그런 기대로 심장이 놀라지 않도록 심호흡을 하며 첫장을 넘긴 책은 내 생각이 맞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죽첨정 ''단두유아''사건 > 아기의 머리만 발견되었다는 사건이다. 아기의 골수를 파먹기 위해 유아의 머리를 잘라내 골수를 파먹고 버린 사건이 첫번째 사건이다. 하지만 다음 사건을 읽어내려갈 수록 한여름밤을 얼릴 이야기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한여름밤을 얼린다기 보다는 이 책은 1920~1930년대에 경성에서 일어난 사건이 현대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과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떤 사건과 비슷한가를 짝지어 보게 하는 재미를 갖게한다.
책을 오해하게 된 이유는 내가 괴담과 기담의 차이를 몰라서이다.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을 보고는 그 차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아마도 흘려들었던 모양이다. 괴담과 기담의 차이를 알아보자.
*기담(奇談/奇譚)-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괴담(怪談)-요괴(妖怪)나 괴이(怪異)한 내용의 이야기의 총칭
괴담이 괴상한 이야기라면 기담은 재밌는 이야기라는 말이 된다. 괴담이 한여름 밤을 얼려놓을 이야기라면 기담은 한여름 밤을 이상 야릇한 재밌는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라고 보면 될려나. 개인적으로 무서운 이야기로 밤을 지샌다면 괴담이고 이상한 소재의 이야기들로 밤을 지샌다면 기담으로 결론지었다. 괴담과 기담의 차이 살며시 선을 긋기가 어려워진다.
어쨌든 이 책은 기담집이다. 이상 야릇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 시대도 현대가 아닌 일본 식민지 시대인 근대 조선이다. 암흑의 시대라고 생각했던 그 시대에도 여러 사건은 일어나고 해결되고 미해결로 남기도 한다. 그때 나라 잃은 설움을 말로 하라면 얼마나 많은 밤을 새울지 모르는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살았고 사건은 일어났다.
책은 네가지 살인사건과 여섯가지 스캔들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기담이라면 이 책을 위해 기담에는 씁쓸함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여기 나온 사건들 모두 공통된 특성은 씁쓸함이 아닐까한다. 일본 식민지 시대에 조선인이었기에 당했던 핍박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이기에 겪었던 아픔들이 곳곳에서 뭍어나와 읽는 동안 주먹을 꼭 쥐기도 했고 입에서는 거친 말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알게된 근대 조선의 사적인 모습, 충격이기 보다는 현대를 꼭 빼닮은 모습에 나와는 상관없다고 딴 세상이라고 믿은 그 시대를 가깝게 바라보면 인간사는 다 똑같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혹은 고개를 젓기도 한다. 까깝고도 먼 근대 조선으로 기담여행을 떠나보자.
<4개의 살인 사건>
*죽첨정 '단두유아'사건
*안동 가와카미 순사 살해 사건
*부산 마리아 참살 사건
*살인마교 백백교 사건
-위의 네 사건을 읽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 하나!!
1. 일본 경찰의 위상은 땅과 가깝다.
-총독부가 세계적인 치안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안전한 도시' 경성에는 '과학수사'의 일인자인 일본 경찰들이 있다. 그들의 위상은 어떻게 만들어졌기에 하늘을 찌를까? 그들이 사건에 궁지에 몰릴 때면 쓰는 것은 '마구잡이 수사'이다. 용의자의 조건에 들어가는 첫번째 조건은 조선인이라는 것이다. 경성 시내에 사건만 발생하면 죄없는 조선인이 아무 이유없이 잡혀가 조사를 받고 몇일씩 구치소에 들어가있어야했다. 이것이 비단 경성뿐이었을까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온다.
특히나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에서는 명백한용의자가 일본 고위관 부인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받는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 재판을 무엇하러 한다는 말인가. 거짓과 억지로 가득한 재판을 무엇하러 한단 말인가. 그저 조선인을 잡아 넣으면 되는 것을. 지금시대에서 미국인이 한국내에서 문제를 일으켰을 시 제대로 판결도 하지 않고 가벼운 형벌로만 풀려나는 것과 조선시대 죄를 지은 일본인이 풀려나는 것, 어느 하나 틀리지 않다.
읽는 동안 행간 속에 녹아있는 아픈 역사의 흔적에 숨을 길게 내쉬어야했으며 주먹을 여러번 쥐었다폈다를 해야했다.
<6개의 스캔들>
*중앙보육학교 박희도 교장의 '여 제자 정조 유린' 사건
*채무왕 윤택영 후작의 부채 수난기
*이인용 남작 집안 부부 싸움
*이화여전 안기영 교수의 '애정 도피 행각'
*조선의 '노라' 박인덕 이혼 사건
*조선 최초의 스웨덴 경제학사 최영숙 애사哀史
-6개의 스캔들은 사적인 이야기이다. 근대 조선의 사적인 이야기, 작가는 이 이야기들이 소설의 형식을 빌렸을 뿐 실화라고 말해준다. 작가는 이 사적인 이야기를 제대로 고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조사를 하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했을까 생각하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사적인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생소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 시대는 우리가 알고있는 한일합방이나 3.1운동등 큰 사건들만 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 때를 사람이 사는 시대가 아니라 죽은 시대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것을 국사 처음 시간에 배웠음에도 나는 과거로의 문을 닫고 현재의 문에서 과거의 닫힌문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으로 과거는 살아 숨쉬는 역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6가지 스캔들로 내가 알게 된 세가지.
1.사람 사는 일은 다 똑같다?!
-교수가 여제자를 희롱한 이야기는 고맙게도 잊을만 하면 일이 터져서 우리에게 각인시켜준다. 이런 일이 비단 현대에만 있는 일일까? 학교가 있고 선생님이 있고 제자가 있으면 어디든 이런 일은 터지게 마련인가보다. 박희도 교장의 '여 제자 정조 유린' 사건은 기가 찰 노릇이다. 또한 근대 조선시대에도 '내가 하면 사랑. 남이 하면 불륜'인 남의 입방아에 오르기 좋은 사건도 있었다. 제자와 가정이 있는 선생과의 사랑 도피, 안기영 교수의 사건은 조선이라는 시대만 없애고 신문에 내도 믿을 이야기이다. 사적인 역사,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은 어쩜 이리도 같을까.
2.있는 놈들이 더해?
-전두환의 전재산은 29만원, 빚은 1800억원. 순종의 장인 윤택영의 전재산은 3백 원(현재 가치 3천만 원), 빚은 3백만 원(현재 가치 3천억 원)이다. 29만원 밖에 없다고 해도 잘먹고 잘사는 전두환이나 빚 갚을 돈은 없어도 4만원씩 빚내서 집을 수리하는 윤택영이나 이렇게 닮은꼴이 또 있을까 싶다. 유산이 많으면 꼭 생기는 집안 다툼까지도 이인용 남작집안과 그의 부인을 보면 할말을 잃게 한다.
3.근대 조선시대에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강력한 가부장제의 시대라면 단연 유교국가였던 조선이지 않을까? 근대 조선 시대에는 간통죄가 있었지만 여자는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만이 아내를 간통죄로 고소할 수 있는 것이다. 남자들이여!!일부다처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은 마음껏 펴라,라는 말이지 않는가. 이런 사회에 여성이 첫 이혼을 요구하자 나라가 떠들썩한 것은 당연한 일. 박인덕과 최영숙을 보면서 그 시기에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이 느껴진다. 여성이기에 받는 불이익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살인사건을 읽을 때는 가슴에 담긴 뜨거운 민족애가 울컥했고 스캔들 부분을 읽을 때는 현대와 너무나 비슷한 이야기에 놀라고 신기해했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사람 냄새 나는 인문학 책이라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