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 프레디
레오 버스카글리아 지음, 이경덕 옮김 / 창해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할머니, 아기들은 어디있다가 배 속으로 들어간거야?"

"할머니, 저 나뭇잎들은 왜 떨어지는 거야?"

"할머니, 할머니는 일찍 죽으면 안돼, 내 옆에 오래 있어야 해."

"할머니, 사람은 왜 죽는거야? 죽고 나면 다들 그렇게 무서운 귀신이 되는 거야."

"할머니, 겨울에 나뭇잎은 다 죽는데 왜 나무는 죽지 않아? "

 

"할머니, 대답해줘, 응? 다 그런거야라는 그런 대답말고, 진짜 대답해줘. 응?"

 

어린 시절 유난히 궁금증이 많았던 나는 할머니한테 그 궁금증을 해결하려했다. 엄마와 살지 않았던 나로서는 할머니가 유일한 해답이었다. 물론 할아버지도 계셨지만 할아버지는 내 물음에 빙긋이 웃거나, 혹은 이마를 때리거나 둘 중 하나였기에 할머니의 바지가랭이를 잡고 대답해달라고 조르기 일쑤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외에는 어린 시절 누구와도 말을 오래하는 적이 없었던 나이기에 할머니는 쫑알쫑알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보이는 양 한참을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시고는 했다. 내 입에서 나왔던 말들이 보이는 것이었다면, 할머니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보이는 것이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을테니. 그 쫑알거림, 할머니의 나즈막한 목소리, 그리고 파도소리.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 가장 많이 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 보통의 아이들이 하는 질문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할머니가 나를 그리 긴 시간을 꼭 안고 쓰다듬지 않았으리라. 바다에 나가면 조개껍질을 보고 얘는 죽은거야라고 물어보며 나도 죽으면 얘처럼 이렇게 껍질만 남아?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누구나 죽으면 가장 딱딱한 곳이 남는다고. 우리는 그곳이 뼈라고. 그러니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 소중한 것을 잘 저장해놓으라고. 우유를 먹지 않았던 나. 우유를 먹기 시작했다. 우유를 먹고 매일 설사를 하면서도, 그 증상은 매일 우유를 먹자 금세 사라졌다. 우유를 먹기 시작한 나, 또 질문한다. 뼈에 중요한 것을 어떻게 담아? 우리의 몸을 여는 열쇠가 있어? 그건 열면 피가 안나고 뼈에 저장하고 나올 수 있어? 정말 안 아파?

 

내가 아는 할머니는 세상 누구보다 지혜로우시다. 그런 할머니가 너무 좋아서, 나즈막히 들려주는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나는 어려운 질문만 골라했나보다. 할머니가 아니면 모를 어려운 질문을, 아마도 할머니에게 나는 골칫덩이였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 할까. 내 아이가 내게 나와 같은 질문을 한다면 할머님처럼 현명하게 대답할 수 있을까. 사람은 왜 죽어야 하냐는 질문에, 자연은 왜 겨울이면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놓고 죽은 줄 알았는데 봄이면 왜 싹이 나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이보다 더 어려운 삶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이 내게 온다면 나는 아이와 여러번 나뭇잎 프레디를 읽을 생각이다. 그렇게 수십번 읽고 아이의 생각을 듣고 아이에게 내 생각을 전하고 그렇게 하다보면 나도 할머님처럼은 아니어도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

 

나뭇잎 프레디를 어린이 그림책쪽에서 찾았는데 집에와서 검색해보니 이 책 어린이부터 청소년, 어른까지 다양한 장르에 포함되어 있는 사진에세이였다. 읽어보니 과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읽어도 되는 책인지 알게 되었다. 하긴, 모든 책의 나이가 어딨겠는가. 책은 나뭇잎 프레디가 싹을 틔우고 싱그러운 녹색잎으로 자라나 차가운 서리를 맞고 붉고 황금색이 섞인 단풍이 되어 차가운 겨울 바람에 떨어질 때까지의 삶을 사진과 간단한 글로 적어내려가고 있다. 

 

간단한 글, 그 간단한 글이 적힌 줄과 줄 사이를 넓히고 내 생각을 적어내려간다. 그림책이 좋은 이유는 이것이다. 나뭇잎 프레디도 그렇다. 그림책은 글이 적어 내 생각을 거기에 넣으면 그림책은 내가 생각하기에 따라 장편 소설이 되기도 하고 단편소설이 되기도 한다. 프레디를 읽고 나서 한 일은 한번 더 읽는 것이었다. 프레디가 태어나 죽음에 이르는 그 시간을 내가 너무 쉬이 읽어내려 간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너는 태어나 너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남을 위하는 법을 배우고 그렇게 초연하게 죽음을 맞이해 바람과 함께 떨어져 사라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을 두려움에 떨고 고민에 빠지고 힘에 겨웠을텐데  나는 그것을 단 몇 번의 손놀림으로 읽어내려갔다니, 미안해. 프레디.

 

프레디,

나는 아직도 사람은 왜 태어나고 왜 죽어야하는지 잘 몰라. 태어나기 위해 죽어야하고,죽어야 하기위해 태어나야한다는 말로는 부족해. 하지만 하나 확실히 말 할 수 있는 건 삶을 고민하는 것 자체가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거. 네가 삶을 고민했듯이.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며 삶이 주는 선물 또한 행복하게 받을거야. 네가 내게 가르쳐 준 삶의 비밀, 너의 이야기 사이 사이에 채워넣을께. 그러니 읽어줘. 그리고 이야기해줘. 나 잘하고 있다고.

 

프레디, 여긴 나뭇잎이 초록옷을 벗어던지고 이제 황금빛으로 갈아 입으려고 하고 있어. 이 친구들은 아직도 너의 이야기를 해. 차가운 겨울 바람에 떨어지면서도 태연했던, 행복하게 웃었던 너의 이야기를 해. 이들이 어디서 너의 이야기를 들었을까? 너가 땅에게 이야기 해주었니? 바람에게 해주었니? 아니면 땅 속 나무뿌리에게 해주었니?

 

프레디, 넌 사라진게 아니야. 그렇지? 너의 가장 단단했던 부분이 분명 땅속 어딘가에 남아있을거야.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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