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그는 와온 바다에서 차를 마시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와온 바다에서 를 마시다'에서 그의 글을 보고 와온 바다가 궁금해져서 찾아보게 되고 사진 속의 그곳은 그가 말한 그대로였다. 그의 묘사는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켰다. 그림들을 떠올리면서 그가 있는 곳, 그가 가본 곳이 궁금해졌다. 그의 필력이라면 가보지 않은 나를 그곳으로 갈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거라 믿고 선택한 책이 포구기행이었다.
'포구기행' 작가를 모르는 나지만 그답다는 생각을 한다. 곽재구, 그는 항구보다 포구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항구의 소란스러움이나 화려함보다는 그는 포구의 아늑함, 조용함이 더 잘 어울린다. 항구만 보고 자란 나는 포구가 무엇인지 잘 몰라 찾아보게 되었다. 항구가 씩씩하고 우렁찬 사내의 이미지라면 포구는 수더분하지만 마음이 따뜻한 아낙네의 이미지라고 받아들였다.
이 책은 곽재구가 전국 곳곳의 포구를 돌아다니며 적은 글이 담겨있다. 글의 힘일까. 그의 글에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도 담겨있고 그곳의 파도소리와 냄새, 배의 불빛들, 기러기의 움직임까지 살아숨쉰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내내 누군가를 그리워하게 한다. 나도 그곳에 있는 듯한 착각, 떠났다는 착각이 들어서 그처럼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 엽서 한장 띄우고 싶은 그리움에 빠지게 한다. 글도 글이지만 중간 중간 나오는 사진도 한 몫 거들고 있다. 그가 찍었다는 사진들에는 향수가 묻어난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그의 기행은 나를 돌아보고, 나를 위로하는 여행이 되었다.
-외로움이 찾아올 때, 사실은 그 순간이 인생에 있어 사랑이 찾아올 때보다 더 귀한 시간이다. 쓴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한 인간의 삶의 깊이, 삶의 우아한 형상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고 외로운 순간이 찾아온다. 사랑을 해도, 따뜻한 가족이 있어도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고독의 무게가 있다. 한때는 나는 나만 외롭고 힘든 줄 알았다. 사랑을 하면서도 외로운 순간이 있다는 것은 나를 혼란시켰다. 이제야 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외롭다고. 이것만큼 위로가 되는 말이 없다. 누구나 나만큼의 고독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 고독이 휘몰아 칠 때 대처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틀린 대처법은 없다고 본다. 나는 끝없이 휘몰아 치는 파도에 몸을 맡기는 편이다. 가라앉다 보면 탁!치고 올라올 순간이 있겠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고독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나은 방법인가 생각하게 된다.
곽재구, 그는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인간의 삶의 깊이가 결정된다고 했다. 그는 외로울 때 구룡포를 찾는다고 한다. 외로움을 그곳에서 날려보낸다고 한다. 구룡포를 보며 그는 외로움에 대해 깊이 고민했을 것이다. 아마도 외로움과 대화를 했을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피하지않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자 외로움은 떠났을 것이다.
외로움은, 고독은 찾아오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잘 보내주어야하지 않을까. 그것에 몸을 맡기는 것도 좋지만 고독의 마음을 알아채는 것, 그것은 내 삶에 무언가 충고를 하고 싶어 찾아오는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술과 눈물로 고독을 떨쳐버릴려고 애쓰지 말고 고독을 대면하는 것, 그 자세를 배우고 싶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없이 마음이 허하게 느껴질 때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떠난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쪽으로 들어설까? 길 위에서 알지 못할 방향 때문에 시간을 쓰는 것은 바보스런 일이다. 길 위에 시간이 펼쳐지고 시간 속으로 길들이 이어진다. 눈앞에 걸어야 할 길과 만나야 할 시간들이 펼쳐져 있는 사실만으로 여행자는 충분히 행복하다.-
내가 시간에 쫓기고 살고 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그것은 휴식을 취할 때도 시간을 확인하며 시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할 때이다. 어느덧 시간이 노예가 되어 현재 내가 머물고 있는 시간을 즐기지 못하고 다가올 시간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서도 그랬다. 이미 정해놓은 코스대로 여행을 해야했고 시간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애가 타고 화가 났다.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일이었다. 나는 쉬는 시간에도, 여행을 할 때도 시간을 위해 일을 했다.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지 않은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를 위함이다. 시간은 그저 내가 게으르지 않도록 도와주는 부수적인 거였다. 시간을 버리는 일, 그것을 실천할 만한 것으로 여행만한 것이 있을까. 여행은 시간이 정지됨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행은 시간을 제대로 쓰기 위해 떠나는 것 아닐까. 시간의 여유로움을 느낀 자가 시간을 잘 쓰듯말이다. 발이 닿는 대로 여행하는 것. 올해가 가기 전에 하고픈 일 중 하나가 되었다.
-별똥 떨어진 곳/마음에 두었다/다음날 가보려/벼르다 벼르다/인젠 다 자랐소-
(별똥, 정지용)
어릴 때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내일 저곳에 꼭 가보야지하고 다짐하고는 그 다음날이면 까맣게 잊은 기억이 여러번이다. 수십번을 가려고 마음 먹었을 텐데 왜 가지 못했을가를 다 큰 어른이 되어 생각한다. 하지만 다 큰 내게는 별똥별 보기가 참 귀한 시간이 되었다.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면서, 어른에서 노인이 되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했던 수많은 약속들을 얼마나 잊고 사는 것일까. 어른이 되어서도 꼭 잊지 말자고 기억해내야한다고 다짐했던 일들이 내게도 참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은 일기장을 들춰내야 기억이 날만큼 잊고 살고 있다. 시간앞에 장사없다라는 말로 변명하기에는 슬프고 아프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은 자주 꺼내주어야 한다. 마음의 서랍 맨 위층에는 자주 꺼내주어야 하는 것들을 집어넣고 혼자 있는 시간에 꺼내보며 기억해야한다. 훗날 눈감을 때 기억이나서 안타까울 일이 너무 많지 않도록 자주 꺼내 쓰다듬고 찾아보고 찾아가고 해야한다. 내 별똥이 떨어진 곳, 그곳을 찾아나서야 겠다.
-불빛들이 빛나기 시작한다. 저 불빛은 화포의 불빛이고, 저 불빛은 거차의 불빛이며, 저 불빛은 와온 마을의 불빛이다. 하늘의 별과 순천만 갯마을의 불빛들을 차례로 바라보며 나는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에도 잠겨본다. 당신 같으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선택은 마을의 불빛들이다.-
일에 지치는 것보다는 사람에 지치는 일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하루만 사람들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여러번이다. 그래서 떠난 길.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 산 속에도, 외진 바다에도 사람은 살았다. 떠나고 싶다고 했지만 떠나고 나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 가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무서워졌다. 그러다 마을의 불빛을 발견하면 버스안에서 부터 가슴이 뛰었다. 작가의 말대로 그 마을 불빛 하나 하나가 그 집의 희망을 타고 둥실 떠있는 듯했다. 사람은 사람을 떠나서 살 수 없기에 힘이 든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나의 결점, 나의 나약함을 먼저 인정해야했다. 약한 나를 인정해야 강한 내가 나를 끌어안아 줄 수 있으며 사람들의 손을 잡고 일어날 수 있다.
-짐작하시겠지만 내가 바람을 사랑하는 제일 큰 이유는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 중에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겠지요. 그런데 세상 사람 중에 그만큼 자유로운 존재가 없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많이 쓸쓸할 때,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고 가슴속이 텅 비어 지상 위의 모든 집착들로부터 벗어날 때 드디어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은 아닌지요....존재의 비상. 그것은 쓸쓸함만이 줄 수 있는 큰 선물은 아니겠는지요.-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지킬 것이 많다는 것이 된다. 어린이였을 때는 지킬 것이 별로 없었다. 내 한몸도 부모님이 지켜주셨는데 지킬거라고는 너덜해진 곰인형과 멜로디가 나오는 필통뿐이었다. 그 시절에는 지킬것이 별로 없어 행복했다. 지금보다는 훨씬 보잘것 없는 밥상도 그렇게 꿀맛일 수 없었다. 그 시절은 분명 지금보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우리는 더 많이 가질수록 불안해하고 남과 비교하고 그러다 보니 더 많이 더 빨리 갖기 위해 애를 쓰고있다. 누굴위해? 무엇을 위해? 무엇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그토록 많은 것을 가지려하는 것일까. 적게 가지고 적게 바라고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세운 잣대에 맞게 내 인생을 제단해야하지 않을까. 남의 세운 잣대에 나를 끼워 맞추다 보면 항상 뭔가 모자란 옷을 입게 될테니.
곽재구의 포구기행에는 우리네가 산다.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닌 가까운 사람들이 저 속에 들어가서 살고 있다. 여행이 아니어도 좋다. 바다가 아니어도 좋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무엇을 원하는지, 잊고 지낸 것은 없는지, 우리는 생각하고 기억해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