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을 나서 자신의 재주와 빛을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갈 곳이 없는 이들이 있었다. 이것이 어디 조선시대만의 일이 겠냐마는 유교적 이념과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그들의 한숨은 더욱 짙어졌다. 천재로 태어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음에도 지위와 명예를 타고나지 못했기에 그저 바람처럼 살다간 이들이 있다. 미천한 재주가 아니었음에도 그들은 미천한 신분이라 하여 재주까지 미천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그런 이들의 이야기이다.
얼마 전에 <다이앤 아버스>라는 사진작가의 전기를 읽었다. 그녀의 전기를 쓰기 위해 저자가 만난 사람은 2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녀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200명의 기억이 동원된 것이다. 그런 사람도 있는데 빛나던 예술적 감각과 의로움을 찾던 협객, 정절을 지키던 여종, 효를 위해 목숨까지 아끼기 않았던 자식의 이야기는 누가 기억해주었을까? 그들이 양반이 아니라서 스쳐지나 가기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조선시대 문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직 움직이지 않고는 베겨나질 못했을 것이다.
'누구 하나 당신들 이야기는 기억을 해야지요.' 라는 마음으로 만든 것이었을까? 이 책은 '전傳''의 형식으로 조선 후기 문인들이 쓴 마이너리티라 불릴 이야기를 우리말로 옮기고 작가의 생각이 덧붙여졌다. 조선은 신분제 사회였고 그 신분제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게 된 이유는 하나일 것이다. 그들의 전을 지은 이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삶에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안타까움은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되었다. 세상에서 잊혀지면 안되는 이가 어디 이들뿐이겠냐마는 그들이 가진 예술과 심성을 몰랐음에 미안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거지에서 기생까지라는 부제처럼 책 속의 인물들은 삶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 힘든 삶을 살아야 했던 경우가 많다. 남달랐지만 태생이 남다르지 않았다고 그들을 없신여긴 다는 것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같나보다.
"죽음은 평범한 것입니다. 바다에서 비바람이 장관을 이루는 풍경은 다시 얻기 어렵지요. 그러니 어찌 춤추지 않겠습니까?" -임희지 p.108
책 속에는 조희룡의 예술전이 많은데 임희지도 그 인물 중 하나다. 미치광이 예술가로 불리었던 그는 배를 타고 가다 비바람을 만났는데 모두가 죽어버릴까 걱정으로 안달이 났는데 김희지는 춤을 추었다고 한다. 스스로 호를 수월도인水月道人 이라 한 임희지는 중국의 역관이었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품이었다고 한다. 대와 난을 잘 그렸고 느낌에 충실하던 감각적 심미주의자였다. 조희룡은 임희지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래서 전을 썼을 것이다. 글로라도 그를 붙잡아 두고 싶었기에.
<감각에 충실하고 느낌대로 살아간 감성의 주체였다.> -p.126
<자해는 가장 낮은 자가 할 수 있는 거절의 몸짓이었다.> -p.127
조선 시대 예술적 재능이 넘쳤던 이들의 이야기의 공통점은 두 가지이다. 감각에 충실하고 자신의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끝까지 거절하는 것. 하지만 낮은 신분의 자가 거절을 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자신의 뜻을 말하기 위해 스스로 눈이 멀게 한 최복처럼.
"내가 그 남자를 죽였어. 내가 죽인 거야. 비록 내 몸은 허락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허락했는데, 이제 그 사람이 죽었다고 내 마음을 바꿀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나 때문에 죽었는데, 내가 배반하고 혼자서 즐겁게 산다는 건 말도 안 돼. 개, 돼지도 나를 더럽게 여길거야."
-여종 p.204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는 그의 신분이 낮다고 해서 혹은 그의 지위와 태생이 천하다고 해서 그 역시 천하고 낮은 사람이라 여긴다. 그런 일은 현대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신분이 뚜렷이 정해진 조선 시대는 말할 것도 없다. 결혼 전에 정혼자가 죽어 평생을 수절한 여종, 마음과 몸을 허락한 정인 이외의 사내가 몸을 탐하려 하자 강물에 뛰어들었던 기생, 사람의 목숨을 구하는데 있어 최선을 다했것만 대접받지 못했음에도 사람을 살리는 것을 업을 삼고 노력한 명인들의 이야기는 신분과 사람의 됨됨이는 연관성이 없음을 말해준다. 나 역시 사극을 볼 때 신분이 낮은 이들을 우습게 보며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책을 읽는 내내 그것이 맘에 걸려 혼이 났다.
"사람들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지 않고 공경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자기의 맞수를 아끼고 경쟁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요.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업신 여기지 않고 보듬는다면 세상이 태평하겠지요."
성대중이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 하늘이 인재를 낼 때에는 영특한 기운을 한꺼번에 부여해서 태어나게 하는 법이지. 그저 아무 뜻도 없이 태어나는 것은 아니라네. 사람들이 하늘의 뜻을 모르고 그저 시기하고 해치려고만 하니, 이는 하늘의 뜻을 심히 어기는 것일세." -p.149 , 성대중과 이덕무의 대화.
조선 시대의 지배층이 두 사람 마음과 같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뛰어남이 저 해와 달과 빛을 다툴 수 없다면 그저 썩어버리는 것이 풀이나 나무와 무엇이 다르랴' 라는 말과 함께 직접 쓴 원고를 태우는 천재 시인 이언진을 보며 성대중과 이덕무는 가슴이 씁쓸해졌을 것이다. 그가 요절했을 때는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문인들이 타고난 재능과 양반과 다름없는 절개를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전하게 한 것은 사람에게는 높고 낮음이 없으니 모두 소중히 여기라는 마음이 강한 것은 아닐까? 책은 내가 모르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며 그들을 기억하게 했다. 이것이 그들이 원한 것이 아니었을까? 너무 늦었다고 해도.
한가지 책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작가의 평이 많이 적혀있어 내 감정이 작가를 따라 흘러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 홀로 그 사람을 만나보고 생각하기에는 작가의 개입이 많았던 것 같아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