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슬픈 예감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3월
평점 :
요시모토 바나나를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그녀가 일본 사람이라서 그런걸까?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아름다운 산 속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온천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물을 너무 따뜻한데 얼굴에 닿는 바람은 너무 차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 몸은 너무 따뜻한데 마음은 차가운 눈송이를 혹은 칠흑같이 검은 밤하늘을 닮은 것처럼 차갑다. 신기한 것은 그 차가움은 마음에서 퍼져 몸을 얼어붙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들어온 따뜻함에 이상하리만치 금세 녹아들게 된다. 내 가슴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을 삶의 애틋함, 사랑에 대한 아릿함을 그녀가 알아준다는 것에 얼마나 놀랐는지. 그래서 좋아했다. 그녀를. 내가 느끼고 있는 외로움, 허전함, 슬픔은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의 따뜻한 포옹에 눈물을 흘리고 마는 것이다.
<하얀 강 밤배> 이후 한동안 그녀의 작품에 쉽게 손을 뻗치지 못했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작가가 주고자 하는 따뜻함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함에 서글퍼서였을까? 열렬히 좋아했던 작가의 작품에 전처럼 감동하지 못함이 안타까워서일까? 어느새 바나나는 내게 멀리 두고서 기웃거릴 수밖에 없는 작가가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새 작품들은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내게 고마운 친구가 이 책 <슬픈 예감>을 선물해주었다. 이 책이 나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두근거림으로 기웃거리던 내게 친구가 전해준 책은 고마움 그 자체였다. 바나나가 잘 쓰는 말처럼 애틋함이 책을 받는 순간 선물해준 친구에게 넘쳐났다.
<슬픈 예감>을 읽고 나서 내 감정은 그녀의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풋풋한 싱그러움으로 가득하다. 오랜만에 읽는 그녀의 작품이어서일까? 요시모토 바나나의 젊은 시절의 작품이라서 일까? 싱그러울만큼의 젊은 주인공들과 그들의 가슴에 숨겨져있는 투명한 슬픔 한조각,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따뜻한 온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안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까지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었다. 시리도록 맑은 하늘을 닮은 책이다.
<이것은 열아홉 살 적 나의 초여름 이야기이다.> -p.23
19살 아요이, 행복한 집에서 따뜻한 부모님과 든든한 남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가출을 하는 독특한 아이, 그 해 여름에는 이모집으로 가출을 한다. 누구나 살다보면 마음속에 잊어버리고 있는 한 조각을 찾고 싶을 때가 있다. 정체도 모르지만 아련하고 애틋해지는 그 무엇을 찾고 싶은 것, 그것이 자신의 생애을 흔들어 버린다고 해도 꼭 만나보고 싶은 것이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아요이는 그것을 찾기 위해 초여름날 이모네 집으로 향한다.
19살 아요이를 덮친 건 분명 슬픈 예감이었을 것이다. 그 예감은 말한다. 어떻게 나를 잊을 수 있냐고, 나를 기억해달라고! 그것을 찾아 나서게 되면 슬픔 사연을 만날 수밖에 없음을 알면서도 아요이는 찾아 나선다. 삶을 제대로 느껴보고 싶기에. 차가운 것은 차갑게, 뜨거운 것은 뜨겁게 느끼고 싶은 마음. 잃어버린 한 부분을 찾아 떠나는 아요이가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언제나 아요이를 기다려주는 양부모님과 독특한 이모 그리고 든든한 남동생 데츠오가 있기 때문이다.
아요이를 따라 나선 길. 그 길에서 요시모토 바나나에게 다시 반하고 말았다.
------------------<기억에 남은 구절>-------------------------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무언가가 빛난다. 무언가가 빠졌다. 얘기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나의 엉뚱한 착각인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의 기억따위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주 자연스럽게 잊어버린다. 그런데 달빛이 환한 밤에 밖에 있다 보면, 안절부절 못하는 일이 있었다. 먼 하늘을 올려다보며 바람을 맞다보면, 너무도 그리운 일들이 떠오를 것 같았다. 그것은 분명 거기에 있는데, 좀 더 생각하려 하면 소리도 없이 모습을 감추고 만다.> -p.25
<느닷없이 가슴이 술렁거리는 느낌. 뭔가를 알게 될듯한 조짐. 그리고 뭔가를 찾아낼 수 있을 듯한 예감. 자신의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을지도 모를 사건이 다가오는 듯한, 조금은 두렵고 설레고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애틋한 기분.> -p.35-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