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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자연을 닮은 시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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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이라는 것은 요즘을 두고 하는 말일까? 얼마전의 추위도 햇살에 녹은 듯하고 아침 저녁의 쌀쌀함만 빼면 따뜻함이 오후내내 이어진다. 봄이 조금 더 가까이 온다면 차가운 바람마저 햇볕으로 인한 더위를 녹여주는 시원함을 제공해주는 것 같다. 추위에 강한지라 어떤 이는 춥다고 하는 지금이 내게는 봄이 오는 길목이다. 봄이 와서 자리를 잡을 때쯤이면 내게는 더운 날이라 지금이 내게는 참 좋다. 그래서 일까? 봄바람이 좋아서 시집을 찾게 된 것도 있지만 얼마전에 정호승시인의 시집을 읽고 따뜻했다는 지인의 말때문이도 할 것이다.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제목보다 나를 끌어당긴 것은 -어른이 읽는 동시-라는 글씨였다. 살랑이는 봄바람처럼 가벼운 글을 읽고싶었나보다. 그래서 택한 이 책에는 풀냄새, 흙냄새 혹은 바람냄새 혹은 별냄새(가 있다면)그 냄새들이 난다. 동시라는 말처럼 깊게 그 뜻을 생각치 않아도 가슴에 바로 전해지되 그 울림이 낮지 않다.
<무지개떡
엄마가 사오신 무지개떡을 먹었다 떡은 먹고 무지개는 남겨놓았다 북한산에 무지개가 걸리었다>
이 시집의 첫 시는 <무지개떡>이다. 조용한 공원 의자에 앉아 이 시를 읽을 때 나도 모르게 하늘을 보게 된다. 혹시 시인이 남겨놓은 무지개가 하늘에 걸린 것은 아닐까란 생각에. 동시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를 떠올리며 시를 읽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어른은 동시를 읽으면 안된다는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솜사탕 같은 동시의 가벼움과 달콤함은 아이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른인데도 난 달콤한 솜사탕을 아직도 좋아한다는 걸 잊어먹고 있었다.
<내 동생
오늘 병원에 가서 엄마가 낙태를 하고 왔다고 이야기하는 걸 엿들었다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게 잘못이라고 했다 나는 국어사전을 뒤져 낙태가 무슨 뜻인지 찾아보았다 엄마보다 태어나지도 못하고 죽은 내 동생이 더 불쌍했다>
어떨 때는 아이들의 시가 더 아픔을 잘 전달하기도 한다. 그 아픔을 표현하기 위해 숨겨놓거나 꼬아놓지 않기에 바로 와닿는다. 화살이 가슴에 박히듯이. 정호승의 동시에는 아픔도 함께 있다. 새우를 먹을 때마다 돌아가신 꼬부랑 할머니한테 미안하다는 아이도 있고 어머니의 소녀적 사진을 보며 어머니의 젊음을 되돌리고 싶다는 자식도 있으며 아빠와 함께 찾아가 대부인 정채봉님의 죽음 앞에 고개만 떨구는 아이의 슬픔도 들어있다. 예쁘고 좋은 감정으로만 가득찬 것이 동시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며 아이들이 적은 동시에 슬픔이 깃들어도 왜냐고 묻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별
가을입니다 떡갈나무 한 그루 바람에 흔들리다가 도토리 한 알 떨어져 또르르 굴러가다가 그만 지구 밖까지 굴러가 별이 됩니다>
이 시집에는 유독 별이 많이 나온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시인들의 가슴에 박힌 것일까? 아니면 누구나 그러하듯 어릴 때 찾아가리라 다짐했던 별똥별을 지금도 찾지 못해서일까? 어쩌면 시인들의 눈에, 마음에 어린 시절 별가루가 들어간 것은 아닐까란 어린애다운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오딘이 가진 꿀술을 먹은 이가 시인이 된다는데 꿀술을 혹시 별똥별에 묻힌 것은 아닐까? 별은 누구에게나 그리움의 대상이다. 별에 하나의 추억이라도 걸지 않는 이가 있을까?
<나의 꿈
돌멩이로 빵을 만든다 흙으로 밥을 짓는다 풀잎으로 반찬을 만든다 강물로 국을 끓인다 함박눈으로 시루떡을 찐다 노을로 팥빙수를 만든다 이 세상에 배고픈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정호승 시인이 바라는 게 이루어진다면 어떨까? 조금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그의 시를 읽고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동시라는 것때문에 마음에 부담을 갖지 않고 읽은 시집은 지인의 말씀대로 따뜻하다. 가슴이 아릴 때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따스하다. 봄빛을 담은 시집을 읽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