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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의 서울 - 한국문학이 스케치한 서울로의 산책 ㅣ 서울문화예술총서 2
김재관.장두식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문학으로 서울이 지나 온 길을 되짚는 타임머신인 책을 펼치기 전에 내가 생각하는 서울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먼저 생각해보았다. 시골에서도 '읍'이란 곳에 사는 내가 서울을 동경한 건 큰이모네 아이들이 방학 때마다 신기한 물건을 들고 우리집에 놀러올 때부터였다. 신기한 연필깍이를 처음 만난 것도 집 앞 문구사가 아니라 이모가 서울서 가져온 것이였으며 티비와 연결해서 하는 양배추 게임도 이모가 가져다 준 것이었다. 아이들이 살기에 참 좋은 곳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큰이모와 이모부께서는 시골이 참 좋다고 말했지만 사촌동생들은 빨리 서울에 가서 재밌게 놀고싶다고 말했으므로.
어렸을 때부터 멀미가 심해 차를 타지 못한 나는 고향을 벗어나는 일이 극히 드물었지만 아빠에게 서울에 꼭 가고 싶다고 때를 써서 간 서울은 가는 길부터 힘이 들었다. 기대로 부풀었던 마음은 멀리로 이미 탈수된지 오래고 도착하자마자 반기는 차들과 많은 인파는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낯설음은 가시지 않고 꽉 막힌 아파트는 바다가 보이는 우리집을 그립게 만들었다. 신기함과 다채로움 보다는 그저 무섭고 두려운 서울에서 기어코 길을 잃고 반나절이 넘어서야 부모님을 찾고는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그 이후로 서울에만 가면 그때의 서늘함이 먼저 가슴으로 스며든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은 동경의 도시다.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그리워하는 이들 대다수가 꿈을 갖고 서울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은 내게 동경의 도시였다. 그 동경의 도시 서울이 자라온 시간을 문학으로 되짚는 이 책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은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문학이 전하고픈 현실의 애달픔
책은 서울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1960년~2000년대의 현실을 문학을 통해 이야기한다. 현실세계의 반영이라 말할 수 있는 문학은 그 시절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성공하고 싶어서라는 당찬 꿈을 꾸던 젊은이들은 먹고 살기 위해 하루 좁은 골방에서 허리한번 피지 못하고 먼지를 들이마시며 일을 하고 그마저도 구하지 못해 차가운 현실에서 더 차가운 바닥에서 잠을 자야했다. 문학은 말한다.
목소리를 높이기도 두려운 세상에서 소설가, 시인들은 현실의 아픔을 글로 쏟아낸다. 한명이라도 자신의 글로 현실을 바로 볼 수만 있다면 하고 그들은 바랐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들은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악몽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서울에서 지쳐 쓰러져가는 사람들의 슬픔을 전하지 않고는 펜을 내려놓을 수 없었는지 모른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서울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화려한 불빛만이 아니라 찢겨진 꿈의 그림자까지.
#허무한 서울의 탑을 오르는 애벌레의 눈물, 누구의 잘못인가!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서 무수히 많은 애벌레들이 탑 위로 기어오른다. 위에 대단한 무언가가 있다고 믿으며 친구들을 짓밟고 올라가기만 하느라 바쁘다. 절대적 희망은 얼마나 무서운가! 주위를 둘러볼 여유는 버린지 오래고 위에 올라간 애벌레들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절대 친구를 떨어뜨리고 기어올라오는 애벌레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이뤄온 결과가 절망이라는 것을 말하면 모래로 쌓은 탑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기에.
기득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부조리함을 입도 벙긋하지 않고 사회는 계속해서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사람을, 너무 늙거나 너무 어린 사람들까기 서울로! 서울로!를 외치게 만든다. 작은 땅에 많은 사람으로 인해 서울의 땅은 몸살을 앓고 그 주변지역까지 앓아눕는데 정부는 약을 주기는 커녕 차가운 얼음물을 뿌려댄다.
거대한 탑이 되어버린 서울, 그 탑의 꼭대기만 쫓는 애벌레들, 꼭대기에서 뻔히 내려다보이는 현실에 대해 말하지 않는 기득권을 가진 애벌레들 그리고 서울을 발전이란 명분아래 무차별적으로 애벌레를 서울로 모이게 한 정부. 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노랑 애벌레 그들은 글을 썼다!
거대한 탑 위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 노랑 애벌레는 땅으로 내려와 나비가 되어 친구들에게 진정한 삶은 탑 위에 있지 않음을 말한다. 애벌레들이 듣지 않아도 단 한명의 친구라도 들으면 된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말한다. 노랑 나비는 줄무늬 애벌레를 설득해 그가 나비가 되도록 옆에서 도와준다.
몸집이 커지느라 바쁘기만 한 서울의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쓴 사람은 누구일까? 공무원? 대통령? 국회의원? 아니였다. 그들은 피를 토하며 소설을 쓰고 눈물을 흘리며 차가운 방에서 시를 쓴 문학가들이었다. 자신의 권리를 외치며 죽어간 어린 영혼을 위해 아파하며 글을 쓰고 집을 잃고 쫓겨난 이들의 설움을 시로 썼다. 그 시절에 글을 쓴 작가들은 어쩌면 우리에게 노랑 애벌레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있기에 서울을 바로보는 이들이 한명, 또 한명 늘어났는지도 모른다.
희망으로 가득하리라 기대했던 서울이 아픔의 서울, 눈물의 서울이 될거라는 것을 누가 알았겠는가? 희망을 노래하고 싶은 가수도, 꿈을 전하고픈 소설가도, 행복을 말하고픈 시인도 서울에 있었다. 서울이 아니면 먹고 살수도, 꿈을 꿀수도 없었기에 우리는 모두 서울에 있었던 것이다. 서울은 분명 발전했다. 쓰레기통에 장미가 피었다는 찬사를 들을 정도로 서울은 성장했다. 그 성장을 누리며 살고있는 이들도 우리다. 하지만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서울을 꽃피운 장미는 희망을 노래하며 꿈을 찾아온 이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서울에 희망의 풍선을 매달아 주세요.
아이였을 때나 지금이나 서울에 갖는 생각 중 변하지 않은 건 하나는 서울에는 많은 인구만큼 그 만큼의 꿈이 자라나는 도시라고, 그들의 꿈이 하나의 풍선이라면 서울은 얼마나 다양한 풍선이 채워질까라는 생각에 두근거리는 일은 지금도 여전하다. 서울을 꿈꾸는 이들이 지금도 얼마나 많은가. 서울을 변화하는 건 정부도 관리도 아닐 것이다. 바로 행복한 서울을 꿈꾸며 서울에서 살아가는, 그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이들의 몫이다. 아픈 역사를 가졌지만 앞으로는 문학 속에서도, 삶 속에서도 살고 싶어지는 아름다운 서울로 변화하길 바라본다.
문학이 가진 진실성과 현실성 그리고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꼈다. 정말 이 속에 나온 아픈 책과 시집을 꼭 다 읽어보리란 꿈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