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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와 도깨비 ㅣ 이야기 보물창고 3
이상 지음, 신재명 그림 / 보물창고 / 2007년 2월
평점 :
아이야, 오늘은 너에게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줄 거란다. 달빛보다 은은하고 이슬보다 맑았던 빛을 가졌던 사람이 너에게 들려주고 싶어했던 이야기란다. 왜 그분이 직접 네게 이야기 해주지 않냐고? 그건 그분의 등에 날개가 생겨서 저 시리도록 맑은 하늘로 날아가셨기 때문이란다. 아주 훨훨 날아가셨어. 천사냐고? 그럼 아마도 천사가 되셨을거란다. 하늘에는 아픈 사람도 더이상 아프지 않으니까, 몸도 마음도. 그 분의 성함이 무엇이냐고? 이상선생님이란다.
자아, 그럼 이상선생님께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마. 이리와서 무릎을 베렴.
어느 산골에 돌쇠라는 나무 장수가 살고 있었단다. 나이 서른이 넘도록 아, 서른은 열을 세번 세는 거란다. 그렇지 너보다 3배나 나이가 많은 어른인거지. 하여튼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안 가고 부모도 없어서 먹을 것이 있는 동안은 빈둥빈둥 놀다가 배가 고파지면 나무를 팔러 나갔단다. 그래, 게으름 뱅이였지. 그래도 베짱이 보다는 부지런 했단다. 그럼 다행이지 않구.
그 돌쇠는 나무를 팔러갈 때면 꼭 황소를 데리고 갔단다. 아주 멋진 황소였어. 그럼 뿔도 달렸지. 목에 예쁜 종도 달렸었단다. 달랑달랑 소리도 나고 말고. 돌쇠가 마지막 남은 땅을 팔아서 산 아주 소중한 황소였단다. 게으름뱅이 돌쇠도 이 황소만큼은 아주 소중히 여겼단다. 어느 겨울 날 돌쇠가 황소 등 위에 나무를 실고 읍에 나갔지. 그날 따라 나무가 잘 팔려서 돌쇠는 황소와 맛있는 점심도 사먹고 기분이 아주 좋아서 집으로 가는 길도 웃으면서 걸어갔단다.
그런데 아이야, 너도 알다시피 겨울 해는 아주 짧잖니? 해가 추위를 많이 타거든. 이건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햇님이 부끄러움이 많아서 놀리면 창피해하거든. 하여튼 그 날은 유난히 해가 짧아 산허리를 돌기도 전에 어두워 지고 말았지. 그때였어. 고양이만한 새까만 놈이 돌쇠 앞에 나타났지! 그럼 심장이 쾅쾅 울려대며 깜짝 놀란 돌쇠는 작은 덩치에 겁을 내려놓고 자세히 살펴보니 얼굴은 사람인데 몸은 원숭이였단다. 더 자세히 보니 세상에 짧은 꼬리까지 달려있었대.
그 동물은 자신을 산오뚜기라고 소개했지만 눈썰미 좋은 돌쇠는 단번에 고것이 도깨비 새끼라는 것을 알아보았단다. 그래, 뿔달린 도깨비. 도깨비 새끼는 뿔이 없단다. 아직 어리거든. 그 도깨비 새끼는 맞다며 도움을 요청했어. 얼마 전에 마을에 놀러왔다가 사냥개한테 붙들려 꼬리가 반 토막으로 잘렸다며 울상을 지었단다. 왜냐하면 도깨비들은 꼬리가 없으면 재주를 피울 수 없거든. 도깨비 새끼는 친구도 잃어버리고 길도 잃어버려 산 속에 숨어있었던 거라며 도와달라고 했어. 착한 돌쇠는 그 청을 무시할 수 없었단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니? 라고 물었지. 그러자 도깨비 새끼는 자신을 황소 뱃 속에 2달만 있게 해달라고 했지. 돌쇠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황소 뱃속에 말이다. 뱃속에만 넣어주면 황소의 힘이 지금보다 10배는 세게 해준다는 약속도 했지. 그래, 네 말대로 황소 중에서도 짱이 되는 거란다. 하지만 짱이라는 말대신 대장이 낫겠다. 그치? 착한 돌쇠와 주인을 닮아 착한 황소는 도깨비를 넣어주었단다.
그 후로 황소는 정말 힘이 세져서 돌쇠는 더 맣은 나무를 할 수 있었고 부자가 되어갔단다. 황소가 힘이 넘쳐 매일 일을 하자고 해서 돌쇠는 부지런해지기까지 했단다. 잘 된일지? 그런데 약속한 2달이 가까워졌을 무렵 까닭없이 황소의 배가 불러오는 거야. 도깨비 새끼의 장난이라고 생각해도 심할정도로 배가 불러와서 놀란 돌쇠는 이를 어쩌누 하며 발을 동동 굴렸단다. 그때 황소 입에서 소리가 들려왔단다. 도깨비 새끼가 뱃 속에서 너무 많이 먹어 빠져나갈 수가 없다는 거였어. 이 일을 어쩌누. 돌쇠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단다. 도깨비 새끼가 나오지 않으면 소중한 황소가 죽을테니까. 그래서......
이 녀석, 자는 구나. 그럼 나머지 이야기는 내일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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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유일하게 쓴 동화가 <황소와 도깨비> 이다.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읽어보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세월이 흘러 지금 읽으면 재미가 없지는 않을까란 걱정도 있었나보다. 읽어보니 그 반대다. 몇십년 전에 쓰여진 글인데도 요즘 아이들이 읽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옛 이야기의 정취도 담고 있으며 도깨비 새끼와 돌쇠의 약속도 재밌게 그려져 아이들에게 흥미를 줄 것 같다. 아마도 글도 글이지만 그림이 글을 잘 살려 주었던 것도 있을 것이다.
도시에만 사는 아이들에게 도깨비와 황소는 옛날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기 충분하다. 우리나라 귀신 도깨비가 서양 귀신 드라큘라보다 인기가 없다는 것을 느낄때면 괜히 속이 상한다. 아이들이 할로운 파티에 정성을 쏟으며 치장을 할 때는 그런 마음이 더하다. 우리나라의 재롱둥이 귀신 도깨비가 있는데, 귀신이지만 우리와는 친숙한 사이로 재밌고 착한 도깨비의 진가를 아이들은 너무 몰라준다. 도깨비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무엇보다 도깨비는 마늘이나 십자가에 절대로 지지 않으며 사람 피를 먹지 않는다! 책에 나오는 착한 도깨비 새끼들이 아직도 깊은 산에 산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아주면 좋을텐데 말이다. 물론, 나도 보지는 못했지만 살고 있을 것이다. 꼬리로 재주를 부리며.
내가 알고 있던 도깨비와의 다른 모습에 이상의 독특함을 본다. 원숭이 같이 생긴 도깨비라니. 흔히 알고 있던 우락부락한 도깨비는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지 못할 것임을 알았던 것일까? 귀여운 도깨비의 모습을 그려낸 그의 동화적인 마음이 나를 아프게 한다. 이상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몸이 아프고 마음이 아픈 시인이자 작가였다는 것이다. 누구나가 다 아는 날개를 남기고 2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이상은 내게 어두운 모습의 작가였다. 그가 바란 것은 이렇게 따뜻하고 재밌는 동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동화 작가도 아주 잘 해냈을텐데. 그가 동화를 쓰기에는 세상이 아팠던 탓일까? 이 동화를 읽고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교과서에서 의미없이 읽었던 것말고 정성드려 꼼꼼하게 읽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