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이야?"
"마사짱, 왜 일본이냐니?"
"다른 나라들은 다 그냥 놔 두었잖아. 그런데 왜 우리한테만 꼬마(원자폭탄을 일컫는 말)를 떨어뜨렸냐구?"
"아이구, 또 그 소리야? 이 할미가 벌써 말해 주었잖아."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냥 히로시마에다 그랬단 말이야? 나가사키에다가도 그랬다며? 일본은 얌전히 있는데 미국이 자기네들 맘대로 꼬마를 실험해 보려고 그랬어?"
"그 땐 전쟁 중이였단다, 마사짱"
"왜 전쟁을 해? 누가 먼저 싸움을 걸었어?"
"그거야 뭐...."
"할머니, 내가 유키짱한테 한 방 먹인 건 걔가 먼저 내 물건에 손을 대서야. 만약에 안 그랬으면 나도 유키짱 머리통 같은 건 안 때렸어."
(......)
''마사짱. 하여튼 우린 당했단다. 우린 피해자란 말이야.''
<마사코의 질문-마사코의 질문 中>
일본 히로시마에 '평화 기념 공원'에 간 마사코가 할머니에게 묻는다. 왜 일본이냐고? 일본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끔찍한 일을 당했느냐고. 할머니는 일본이 나쁜게 아니라고 한다. 그저 우리는 피해자라고. 아직도 피해자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꽉 다문 입이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마사코의 왜라는 질문을 남기고 책은 끝난다.
#우리나라에서 일제시대를 다룬 최초의 동화
이 책이 눈길을 끈 것은 세가지의 조합때문이었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 한국 작가, 일본 소녀의 표지.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쓴 우리나라 작가가 일본 소녀를 표지로 썼다는 것에 대체 무슨 의도일까라는 생각으로 책으로 손을 뻗친다. 다 읽고 나서야 마사코가 왜 표지로 선택되었는디 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일제시대를 다룬 최초의 동화책이라는 것을 알고 놀란다. 광복이 된지 50년도 더 지난 후에야 일제시대를 다룬 첫번째 동화가 나온 것이다.(1999년에 출간) 그만큼 일제시대는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기에는 힘든 일이었다. 어쩌면 알려주는 것만으로 가슴에 피가 맺힌다고 말씀하시던 어른들의 상처가 맘에 걸려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만으로 꼭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중에 일제시대가 들어간다. 일제시대를 제대로 알아야 할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할 역사인 것이다. 그렇기에 어린이도 어른에게도 좋은 동화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덟 항아리에 담긴 아픔과 설움, 하나의 항아리에 담긴 의문.
책은 총 9가지 짧지만 긴여운이 있는 동화로 구성되어 있다. 살짝 이야기를 엿보자. 여기서는 6개만 살펴보자.
1.꽃잎으로 쓴 글자
-다나카선생님은 아침 조회시간에 반장에게 위반패를 주면서 조선말을 쓰는 사람에게 이패를 주고, 패를 받은 사람은 또 조선말을 쓰는 사람에게 패를 넘겨 종례시간에 위반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손바닥 열대를 맞을 거라고 말하고 나간다.(1938년 3월 조선교육령 개정공포.조선어교육 금지) 승우네 반은 공포의 분위기에 휩싸이고 아이들은 조선말을 쓰지 않기 위해 안감힘을 쓴다.
-식민지가 되었을 때 먼저 빼앗는 것이 그 민족의 말과 글이라고 한다. 그건 민족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조선 사람임에도 조선말을 쓰지 않을려고 애쓰며 친구를 감시하는 슬픈 눈동자의 아이들 얼굴로 가득한 학급이 눈 앞에 펼쳐지면서 가슴이 먹먹해진다.
2.방구아저씨
-아이들에게 방구를 뀌며 웃음과 편안함을 주었던 방구아저씨는 상여넣는 곳집 근처에서 혼자 산다.방구아저씨에게는 먼저 간 아내에게 주었던 백동 은나비장식의 화사한 과목장이 유일한 물건이고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 은나비괴목장을 일본산림관이 탐을 낸다. 방구아저씨가 내놓을 기미가 안보이자 이또오순사가 방구아저씨를 내리쳐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한다.
-일본인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빼앗아갔는지, 어떤 방법으로 뺏었을지를 짐작하게끔 한다. 나라를 빼앗긴 것은 내 물건을 주장할 수 없는 서글픈 현실을 만든다. 아이들에게 내 나라가 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알려줄 수 있는 동화였다.
3.남작의 아들
-조선인이면서 남작의 작위를 받은 아버지를 둔 가즈오는 학교에서도 일본인친구들과 어울리며 조선인동무들을 괴롭힌다. 하지만 가즈오의 일본 친구들은 가즈오를 뒤에서 욕하며 놀린다.
가즈오는 아무리 애을 써도 자신이 조선인임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의 이름은 송윤강임을 떳떳이 밝힌다.
-일본이 주는 핍박에 그 시절 조선인이라는 사실은 아픔이고 설움이다. 굶주리고 무시당하고 그렇지만 조선에 태어나 조선의 피가 흐르는 아이들은 그 피를 받아들이며 자신의 뿌리를 당당하게 밝혀나간다. 그 당당함에 일본이 채찍을 가한다 하더라도.
4.잠들어라 새야
-열두살 은옥이는 일본에 가서 돈을 벌겠다고 조선인 여자근로 정신대(1944년 8월 여자정신대 근로령 공포)에 속해 갈매기호를 타고 일본으로 간다. 그곳에 가서야 거짓인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은옥이는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생활하다가 해방이 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집으로 들어갈 수 없어 서성인다.
-일제시대의 아픔을 말할 때 꼭 나오는 위안부이야기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은옥이의 모습은 우리 할머니들의 애처로움을 닮았다. 얼마나 많은 위안부 할머님들이 사과를 받지도 못하고 가슴에 한을 간직한 채 눈을 감으셨을까. 어려운 이야기임에도 책에서는 거부감 없이 아이들이 읽기 편하도록 쓰여져 있다.
5.잎새에 이는 바람
-27세의 나이로 사인이 분명하지 않은채 감옥에서 죽은 윤동주 시인의 죽음을 생체실험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2년형에 처해졌던 시인은 1945년 2월 16일 숨진다.
-윤동주 시인의 시와 함께 어우러진 이야기는 코끝을 시큰하게 하고 광복을 눈앞에 둔 죽음이었기에 더 슬픔이 컸다.
6.마사코의 질문
-마사코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을 추모하는 '평화 기념 공원'에 할머니의 손을 잡고 가면서 묻는다. 왜 일본이 이런 일을 당한 거냐고. 할머니는 계속되는 마사코의 질문에 우리도 피해자라는 한마디로 함구한다.
-마사코가 묻는 질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묻고픈 질문이며 할머니의 답은 우리 모두가 듣고플 것이다. 일본도 피해자라는 답이 아니라 자신들이 잘못을 했다는 말 한마디 그 한마디를 듣길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눈물을 흘리고 있을지 생각해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
-나라를 빼앗긴 역사를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어른인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되뇌는 것은 그 역사가 자랑스러워서도, 일본을 미워하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과거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과거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과거를 모르고 현재가 없듯 미래를 희망차게 하기 위해서는 유비무환 자세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무조건 일본이면 싫다는 감정으로 가득차 있는 나이가 있다. 그건 아마도 어른의 책임일 것이다. 과거의 일본이 잘못한 것을 현재의 일본으로 받아들이면 안된다고 알려줄려면 과거를 제대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솔직히 지금의 나도 일제시대의 일본의 잘못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