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의 나라
조너선 캐럴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계절은 겨울이다. 우리집은 주위에 집보다는 산이나 나무가 더 많은 언덕에 올라가면 바다가 멀리 보이는 소위 말하는 깡촌이다. 더위를 녹여줄 바다가 있음에도 여름보다는 눈의 마법을 볼 수 있는 겨울을 좋아한다. 겨울이면 아침마다 눈이 온다는 아빠의 말에 몇번이나 속으며 아침에 일어나 불평하면서도 그 말에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룻밤 사이에 하얀 세상으로 변한 주위 풍경에 마음을 뺏았겼기 때문이다. 언제적, 얼마나 어린 나이의 겨울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새하얀 눈의 마법은 볼때마다 탄성을 자아냈고 마을과 동떨어져 있는 우리집을 눈의 성으로 상상하게 했다. 

 

단 하나의 재료인 눈으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마법은 겨울이 어린 내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래서 겨울이면 더욱 동화책들을 재밌게 읽고는 했다. 눈의 여왕이나 인어공주 오즈의 마법사를 한권 읽고 눈길을 걸으며 주인공이 된 것처럼 공상에 빠지는 일은 내가 즐기던 놀이였다. 그렇게 좋아하는 동화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재밌고 슬프고 아름다운 동화를 쓰는 작가는 누구일까 궁금해하며 한번쯤 만나고 싶다는 소원을 빈적이 있다. 실은 그 작가는 동화나라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기대를 하며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웃음의 나라>는 어릴적 자신을 빠지게 만들었던 위대한 동화작가 마셜 프랜스의 전기를 쓰기로 결심한 한 남자, 토마스 애비에게 일어나는 일을 그린 책이다.

 

#웃음의 나라에는 천사가 살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겨울 이렇게 한해가 내뜻과는 상관없이 마무리 되려고 하면 우울함이 밀려온다. 웃을일이 적어지는 요즘 이 책을 택한건 전적으로 제목때문이었다. 웃음의 나라, 동화적인 제목에 마음이 끌려 손에 들고 읽어내려가면서 아름답고 재밌는 동화나라로의 초대를 꿈꾸었지만 내가 초대된 곳은 내내 동화나라가 아니라 약간은 무섭고 신비로운 환상의 나라였다.

 

그 환상의 나라는 바람의 움직임이 멈춘 곳 같다. 모든 곳에 불고 있는 바람이 그곳에만 불지 않는 느낌. 처음에는 알아차리지 못해 뒤늦게 알아차리자 공기의 흐림이 멈춰져있음을 알게 된다. 그때의 섬뜩함, 기묘하다는 말로는 부족해서 겨울밤에 팔에 소름이 돋는다. 흡입력이 커서일까, 비밀을 알아버렸을 때의 놀람은 상당했다. 그제서야 그 마을에서의 일들이 톱니바퀴 돌아가듯 지난 내용들이 이해가 간다. 영화 <디 아더스>의 비밀을 알게 되었을 때의 충격이랄까!

 

책을 보는 내내 아름답고 재밌는 동화나라의 파란 하늘은 내게 보여지지 않았다. 비를 내리지도 않을 거면서 잔뜩 흐린 하늘이 책 속의 하늘을 뒤덮었다. 동화나라처럼 다른 세상을 기대했으니 상상해본적 없는 '웃음의 나라'로의 여행도 괜찮았다.

 

#살짝 엿볼까? 줄거리.

-주인공 토마스는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아버지를 둔 학교 선생님이다. 일이야 그럭저럭 하지만 유머감각인 없는 탓에 연애에도 꽝인 그는 단조로운 삶과 돌아가신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파 누구나 그의 아버지의 전기를 쓰라던 말을 뒤로하고 그가 존경하는 동화작가 마셜 프랜스의 전기를 쓰기로 결정한다. 어린시절 그를 매혹시켰던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은 마셜 프랜스의 팬으로 만들었고 누구를 웃기는 일은 전혀 재능이 없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의 제목은 <웃음의 나라>이다.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사람들에게 자신으로서 보다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살아가야하는 것은 그를 아버지로부터 점점 더 도망치게 만든다. 현실을 피하기 위함일까? 그가 택한 사람은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은둔형 삶을 살다가 죽은 동화작가였다. 토마스는 프랜스를 좋아하는 한 여인을 만나 함께 작가가 살던 마을로 향한다.

 

토마스가 왜 프랜스의 전기를 쓰고자 하는지 나는 아직도 제대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그저 내가 내린 결론은 그의 어린시절부터 현재까지, 즉 그의 인생을 통털어 유일하게 빠져들었던 작가의 이야기를 쓰면서 견디기 힘들어 이리저리 도망쳤던 그 시간들을 제대로 맞서기 위함은 아니였을까란 생각을 해본다.

 

#알고 있는 것, 어디까지 진실일까?

-20살때였나, 다 컸음에도 동화를 좋아했던 나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란 책을 보게되었다. 그토록 아름답고 슬픈 동화 속에 숨겨진 진실. 놀라움에 빠진 내가 택한 방법은 그 책의 내용을 믿지 않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가설이길 바랬다. 어른이었음에도 쓴 웃음으로 웃고 넘기면 될 일임에도 그러지를 못했다. 그 동화들로 꿈을 만들었으며 그 많은 꿈들을 먹기도 하고 키우기도 장난을 치기도 했기 때문이다.

 

알고나면 무서워지는 진실들이 있다. 편안한 안락의자가 가시나무로 만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음부터 더이상 편해지지 않는 것처럼. 동화를 쓰는 작가, 어린시절을 꿈과 환상으로 채워준 작가. 그 작가는 현실에 때묻지 않고, 혹여 때가 묻었다해도 그것을 사랑으로 이겨낼거라 믿음. 그건 작가에대한 믿음과 함께 어린시절의 꿈을 건 믿음이다. 그 믿음이 흔들린다면,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면, 알아낼 것인가? 거기서 멈출 것인가? 한 개인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부터가 아름다움만으로 채워지지 않을 것이란 것을 미리 알았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책 표지에 작가 사진을 싣지 않는 다는 이 책의 작가 조너선 캐럴. 프로필을 정말 싫어해서 이 책에는 옮긴이가 말해준 것 이외에는 작가의 설명이 없다. 독특함, 자신의 이력으로 독자가 책을 읽는 것이 싫다는 작가. 그녀의 상상력, 믿어도 후회는 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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