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철살인(寸鐵殺人): 한 치의 쇠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 짤막한 경구(警句)로 사람의 마음을 크게 뒤흔듦." 계시처럼 다가와 심금을 울려주던 그 대사들, 그 작품들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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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크업포에버 HD 파우더- 10g
메이크업포에버
42,770원 / 마일리지 0원 (0% 적립)
2011년 05월 13일에 저장
단종
안녕? 자두야!! 1
이빈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0년 3월
3,500원 → 3,150원(10%할인) / 마일리지 170원(5% 적립)
2004년 06월 14일에 저장
절판
'장차 극렬오빠부대'의 강한 가능성이 엿보이는 어린 자매, 자두와 미미가 한판 붙었다. "그건 진정한 용필 오빠의 팬이 아니야!! 용필 오빠의 팬이라면 하드는 두리스바, 음료는 맥콜! 이것만 먹어야 하는데, 언닌 그럼 이용이나 전영록이 선전하는 다른 것도 먹을 수 있다는 소리 아냐?!" "그래!! 난 이용이 선전하는 초코파이나 전영록이 선전하는 월드콘 모두 다 먹을 거다. 왜?!" "배신자! 언니는 배신자야!!"
최종 병기 그녀 1
타카하시 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1월
3,500원 → 3,150원(10%할인) / 마일리지 170원(5% 적립)
2004년 06월 14일에 저장
절판
"아직은 서툴지만 멈춰 서기도 하고, 끌어당기기도 하고 또 걸어보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좋아해 가자. 시골마을이라 뭐 하나 재미있는 일도 없지만, 멍청하고 불만덩어리고... 뭐 하나 기대할 수 없는 장래만이 있을 뿐이지만- 하지만 딱 한 가지만은 확실하다. 우리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
"미안해 슈.... 나 이런 몸이 되고 말았어." "끌어안은 그녀의 심장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다." -1권 中 슈지
쿨핫 Cool Hot 1
유시진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1998년 2월
3,000원 → 2,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50원(5% 적립)
2004년 06월 14일에 저장
절판
"신뢰를 얻으려면 마음만 가지고는 안 돼. 자연스럽게, 서서히 너란 인간한테 젖어들게 해 줘야지." 거리의 고양이와 친구가 되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운이 좋을 것-이라는 미국 속담이 있다는데, [쿨핫] 이 말하는 고양이와 친해지는 법은 아무래도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 더 큰 효능을 발휘할 것 같다. 참 5권의 "두 사람이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본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적이잖아"또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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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만화를 아우르는 감정의 독재자들을 선정했다. 이들 작품에 나는 "천재의 숨결을 느낀다"는 수식을 다는데, 이건 단련된 스킬의 문제가 아니라 말그대로 독자의 감정을 마구 주무르는 이들의 본능적 감각에 찬탄을 금치 못하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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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4월 28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04년 06월 10일에 저장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 버린다." 오래전 날리지 못한 따귀는 그저 영원히 사라져버릴 뿐이다. 밀란 쿤데라의 무서운 점은 정말로 자신이 뭘 쓰는지 알고 쓴다는 점이다. 쿤데라의 언어는 목표물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가 몸통을 꿰뚫는다. 그게 감정이든 사물이든.
사랑해야 하는 딸들- 단편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4년 5월
5,000원 → 4,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50원(5% 적립)
2004년 06월 10일에 저장
구판절판
위의 쿤데라와 어느 정도 비슷한 이유. 요시나가 후미는 인생의 비밀을 알고 있다! 너무나 명민한 이 작가는 진실을 쉽게 깨치고, 그만큼 쉽게 보여준다. 범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감탄하는 것 뿐이지만. 특히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가는 세 친구의 에피소드는 강추.
체호프 단편선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박현섭 옮김 / 민음사 / 2002년 11월
7,000원 → 6,300원(10%할인) / 마일리지 3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4월 28일 (월)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04년 06월 10일에 저장

심해 심해 심해. 심하게 잔인한 소설들. 단편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의 귀감. 특히 [페스트]는 대단하다. 제목부터 냉엄한 [베짱이]도 재밌고. 체홉 앞에서 독자의 감정은 탄성좋은 고무줄이 된다. 작가는 그걸 거대한 악력으로 잡아당겼다 틱 놓아버리고, 독자는 끊어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과 함께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세상 끝의 사랑
마이클 커닝햄 지음, 김승욱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12,500원 → 11,250원(10%할인) / 마일리지 620원(5% 적립)
2004년 06월 10일에 저장
절판
<세상 끝의 사랑>은 예쁘고 허무한 소설이다. 손에 잡힐 듯한, 그러나 손을 뻗으면 날아가버릴 듯한 슬픈 잔향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아름다운 장면들이 가득 포진해있다. 마이클 커닝햄의 묘사력에 책장을 넘길때마다 새삼 감탄하게 되기도. 로빈 라이트펜, 시시 스페이섹, 콜린 파렐이 출연하는 영화판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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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스크] 신화 8집 - State Of The Art : Digital Disc - Digital Disc
신화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그다지 얼리어답터라고 할 수 없는 입장에서, 처음 접해 본 디지털 디스크라는 매체에 대한 소박하고 개인적인 리뷰. 재생기기와 음반을 겸한다는 점이 우선 신기했고, 사용해 본 결과 상당히 안정적인 듯해 만족했다. 물건을 유난히 잘 떨어뜨리는 편이라, (CD의 경우 스페어 케이스가 3개 정도는 있어 줘야 하고, MP3 플레이어를 구입할 때도 하드 디스크형은 큰 용량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절대 피했다) 가벼우면서 단단한 재질에도 점수를 주고 싶다.

음질의 경우에도, CD에 비해 떨어진다지만 아주 예민한 청자가 아니라면 특별히 감지하지 못할 정도다. 아쉬운 점을 들자면, 일단 홀드 버튼이 없다는 것. 그리고 재생 중에 불이 들어오는 등의 표시가 없어 현재 ON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는 것. AAA 사이즈의 건전지로 구동하는데, 깜박 무신경했다가는 배터리가 금세 소진될 수 있겠다 싶었다.

MP3 플레이어가 CD에 비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점은 CD를 구입할 만한 열의가 있는 음악팬과, 그렇지 않은 일반적인 청자들 사이에서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CD를 구입하고서도 번거롭고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굳이 MP3로 코딩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에는, 음반업계로서는 불행하게도 ‘CD를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작용할 테고. 디지털 디스크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한 미디어라는 느낌이었다. 말하자면 작고 가벼워 휴대성이 좋다는 점은 전자에 대한, 잘 알려진 대로 불법복제가 불가능하다는 부분은 후자에 대한 고려일 것이다. 그러나 거기 더해, 음원을 자유롭게 옮길 수 있고 사용자 스스로 저장과 삭제가 가능한 디지털 음원만이 가진 즐거움은 어쩔 수 없이 닫혀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해당 뮤지션의 팬이나, 한 앨범을 진득하게 듣는 청자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앞뒷면을 씹어 먹듯 듣고 또 듣던 그 때는, 음악이 지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중했었다. CD의 스킵 기능을 알게 된 이후, 하물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클릭 한 번으로 지워버릴 수 있는 디지털 음원을 주로 이용하게 된 지금, 음악은 간편한 소모품이 되었다. 더 많은 선택지가 열려 있지만, 엄밀히 생각할 때 그도 축복만은 아닌 것이다. 궤변일 수 있으나 디지털 디스크의 심플함은, 기능이 아닌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장점일 수 있다.

일단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에-재생기기를 겸하고 있으므로 음반으로서는 비싼 가격이 될 수밖에 없다-이 점을 해결하는 것이 대중적인 보급에 있어 시급하다. 그 외, 저작권 보호라는 공급자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데서 더 나아가, 사용자의 편의 혹은 즐거움을 고려하여 보완해 나간다면 가능성이 있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즐겁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덧붙여 소프트웨어 면에서 본다면, 신화 8집은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깔끔하다는 느낌. 다만 임팩트는 그만큼 적다. 일단 타이틀곡인 Once In a Lifetime에 대한 느낌부터가  ‘월드컵이 원수...’라는 거였으니까.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나쁘지 않지만, You know, 신화까지 이런 노래를 할 필요가 있는가? 착하고 따분한 노래.

명백한 신화의 낙인을 과시하고 있는 Your Man(그렇다. ‘맨’이다) 같은 곡이나 Highway Star, Throw My Fist 라는 흥겨운 트랙들,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옛 노래들을 떠올리게 하는 Midnight Girl 같은 예쁘장한 곡들이 무리 없이 상쾌하게 귀로 파고 들었다. 그러나 신화 최대의 명곡으로 꼽고 싶은 Wild Eyes나 Perfect Man 등에 필적할 매력적인 곡은 찾을 수 없다. 오빠들이여, 때는 여름이다. 야성으로 돌아가시길. 앨범으로서 볼 때 열혈 팬이라면 아쉬울, 보통의 청자라면 그런대로 만족할 만한 완성도라고 신화 8집을 요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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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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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러시에 한 몫 끼어들어, 일본 미스터리를 읽는 것이 내게도 큰 즐거움이다. 그 중 맨 앞줄에는 미야베 미유키가 버티고 서 있다. 일본에서는 가장 선호하는 여성작가 투표에 6년 간 1위를 지킬 정도로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고루 얻는 인기작가라고 하는데, 내가 읽은 것은 만화와 <이코- 안개의 성>을 제외한 세 편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읽은 <인 콜드 블러드>와 함께 르포르타주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해 준 <이유>와 <화차>, 그리고 출간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용은 잠들다>가 그것이다. 내 경우 그녀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성-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인간의 물화-을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공통분모로 묶는 것이 부당한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작가이기도 하다.

 

 <이유>는 최고급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을 픽션이라기보다는 마치 아주 조밀한 그물로 건져올린 르포처럼 치밀하게 서술해내고 있는 소설이다. 세 편 중 굳이 따지자면, 가장 수작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인생을 훔친 여자>(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편집자의 고충도 이해가 가지만, 무슨 전설적인 도둑이었다가 신앙의 힘으로 갱생한 녀성의 수기집 같은 제목 아닌가) <화차>만큼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 소설은 없었다. 문제의 <화차>는 각기 비슷한 양태의 불행을 겪은, 그러나 결국 한 사람은 피해자가, 한 사람은 가해자가 되고 마는 두 여성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이야기. 현대사회의 공포인 신용불량, 개인파산 등의 문제가 첨예하게 얽혀 생각할 거리가 풍부하면서도, 주인공이자 가해자인 여성의 서서히 드러나는 윤곽을 파악해가는 재미가 아주 말도 못한다. 인적드문 길, 달빛 아래서 보는 그로테스크하고 아름다운 뒷모습 같은 느낌이다. 따라가도 따라가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다가, 어느 순간 숨막히는 앞면을 드러내며 돌아서는 여자. 스포일러가 두려워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 없는 점이 못내 아쉽지만, 마지막 장면도 꼭 이런 느낌이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강렬한 감정이입의 경험이었다.

 

이번에 읽은 <용은 잠들다> 같은 경우에는, 미스터리 애독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을만큼 말랑말랑하면서도 호소력이 깊다. 앞서의 두 작품에 비해서는 연령대가 낮은 독자들이 선호할 것 같다. 사이코메트러, 즉 접촉만으로 물건이나 사람의 지난 역사, 기억을 엿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년이 주인공이다. 비근한 예를 들면 <사이코메트러 에지>의 에지- 뭐 그 발전형 정도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흔히 독심술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마음이 아니라 기억을 읽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감정과 생각들은 어차피 기억을 매개로 구성된다. 기억이 만든 사전정보가 없다면 형상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뇌에는 현재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를 읽는 사람들이다.

 

"원하는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걸로 하겠는가?" 주로 어린시절에 흔히 받게 되는 질문이다. 생각키로 그 중 독심술이라는 것만큼 어린 시절과 나이가 들었을 때 각기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는 '능력'도 없지 않을까. 그 전능한 이미지에 매료되어 어린 시절에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간택되는 일이 많지만, 점차 그 무서운 의미를 알아가면서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는 말이다. 이 경우 선택받았다는 것과 저주받았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의가 된다. 그러므로 <용은 잠들다>가 <사이코메트러 에지>보다 발전형이라는 표현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일단 능력면에서 <용은 잠들다>의 주인공들은 텔레파시 전송이 가능하며, 어떤 경우에는 텔레포테이션 즉 공간이동까지 할 수 있다. 단편적인 기억이나 형상만을 떠올릴 수 있는 에지와는 달리 소리와 영상을 마치 영화를 보듯이 엿볼 수도 있다. 그 외 사이코메트러가 겪을 수밖에 없는 절대고독과 정체성의 위기에 대해서도 <용은 잠들다>는 매우 첨예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주인공을 인도하며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하는 것은 미야베 미유키의 단골 수법이다. <화차>에서 휴직경찰은 왕래가 없던 죽은 아내의 조카와 오랜만에 조우한다. 조카는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결국은 약혼녀의 행적을 밟아가게 되는데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더이상 문제는 '실종사건'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찾아야 하는 '그녀'도 두 명으로 늘어난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을까"와 "그 혹은 그녀는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라는 두 질문에 공평하게 시각을 안배하는 것 또한 이 작가의 특징이라, 독서는 흔한 관용구가 주는 울림을 넘어서 그 자체로 만남의 경험이 된다. 거대한 그물망에 얽혀 살아가는 인물과 그 맥락을 뒤쫓는 일- 그러므로 이해하는 일. 내 견해로는 이것이 미야베 미유키식 '사건해결'의 정의다.

 

<용은 잠들다>에서도 다르지 않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어린 아이가 맨홀에 빠진다. 저널리스트인 주인공은 길에서 만나 태운 한 소년과 함께 이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위험하게도 맨홀 뚜껑을 열어놓은 범인들을 뒤쫓기는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다일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상기한 사건을 사이코메트러 소년과 얽히게 되는 계기로만 무책임하게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주인공의 직업, 공정하지만 어딘가 머뭇거리는 성격과 살짝 드리운 과거의 그림자, 그와 대조적인 사이코메트러 소년의 무모하고 정의감 넘치는 성격 같은 정보들도 하나도 낭비되거나 허투루 서술되는 일 없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에서는 다음 생에는 사랑받을 수 있기를- 이라는 물컹거리고 흔해빠진 표현에 그만 얻어맞고야 만다. 살과 근육과 뼈를 뚫고 곧바로 심장을 가격당한 느낌이다.

 

살면서 내가 깨닫게 된 유효한 진리 한 가지가 있다면 이런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다만 무슨 일을 했는지가 중요할 뿐이라는 것. 이것은 제법 공정한 원칙이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가 이유를 물어주기를, 결과물에 상관없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여겨주기를 가끔, 혹은 꽤나 자주 바라게 된다. 그것을 듣고 또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유명해지기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별자리나 혈액형에 기댄 성격분석들이 그렇게 인기를 얻는 이유도 비슷하리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누군가는 말해 주기를 간절하고 애달프게 소원하는 것이다.

 

기계처럼 정확한 것, 늘 새로운  것만이 가치는 아니다. 미스터리 소설이 따뜻할 수 있다면 그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일 것이고, 그런 신실함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그치기에 앞서 이유를 물어주는 상냥한 인도자처럼 인물 하나하나를 그려내는 작가의 태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은 잠들다>는 매우 훌륭한 대체제다. 읽는 동안 어린 시절 소년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순수하고 엔돌핀 넘치는 즐거움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말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랴. 정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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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 여행기 아이세움 논술명작 2
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고은주 엮음, 윤유리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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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기 위해 서점으로 향했다. 선물 사는 재주라고는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목적지는 언제나 정해놓기라도 한 양 서점이다. 일단 받아도 기분 좋은 게 책이고, 좋은 책을 고르는 일은 선물을 주는 나로서도 신나는 이벤트니까. 그런데 내가 미혼이고 보니, 아이들 책 고르는 일이 녹록치가 않다. 요즘은 논술이 화두라는데- 아니 이른바 논술비상사태라는데. 그래서 오늘의 미션은 그렇게 정해졌다. 책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어린이용 책들을 읽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초등학교 학생을 위한 논술책 고르기.

 

목적이 정해져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애들을 위한 논술관련 책이 이렇게 많았던가. 언제부터? 내 경우 대학입시에서 논술시험을 치른 첫세대이면서 중고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친 경험이 있기도 하다. 지금 와 돌이켜보면 내가 받았던 교육도, 그리고 했던 교육도 족집게 과외와 각종 팁들(청유형이나 자문자답은 쓰지 말라는 디테일한 것에서 시작해 엘빈 토플러로 상징되는 천편일률적인 참고도서 리스트까지)의 집합 이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논술 모의고사라도 채점하게 되면 70퍼센트 이상이 서론 첫 문장을 “현대사회는...”으로 시작하게 되는 기현상도 일어난다. 이런 일은, 어딘가 호러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 문제는 독서다. 양서를 많이 읽는 것과, 무엇보다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좋은 글을 쓰는 바탕인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것.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른도 그럴진대 아이들임에랴. 그래서 논술에는 목적의식이 있는 독서가 필요하다. 왜 이 책이 의미가 있는지, 이 독서경험을 어디로 확장시켜야 하는지 늘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아유 참 복잡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나보다 복 받았다. 논술 붐에 편승하려는 난삽한 책들도 적지 않지만, 아이들을 지혜의 보고인 고전과 만나게 해주는 꽤 튼실한 가이드들도 제법 찾아볼 수 있는 요즘이기 때문이다.

 

몇 시간이나 서점에서 진을 치다 고르게 된 아이세움의 명작논술 시리즈가 그런 책이다. 일단 선물용이니만큼 깔끔하면서도 깜찍한 디자인이 맘에 들었고, 일러스트도 센스가 있다. 유머러스한 캐릭터들이 북적대는 만화로 시선을 잡아끌고 방향을 제시한 후 본격 독서로 들어가고, 다시 내용을 분석한 다음 본격적인 논술 문제로 들어가는 구성이 꽤 체계적이다. 내 경우 <걸리버 여행기>를 특히 재미있게 보았는데, 그간 아이들을 위한 동화로만 알려져 있던 이 책의 핵심, 즉 스위프트 특유의 풍자와 풍부한 상상을 드물게 잘 잡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그로테스크한 상상의 세계 라퓨타, 인간의 형상을 한 추악한 괴물 야후-물론 그 대형 포탈의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의 진짜 정체를 만나면 상식창고도 풍부해질 것이다.  명작논술 시리즈의 <걸리버 여행기>에 점수를 주고 싶은 이유는 대략 이런 것들.

 

완역본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재구성한 책이라는 점에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이들에게 독서가 어렵고 지루한, 부담스런 경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대로 그렇게 일단 친해지고 나면, 원전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렇게 두 번의 독서경험을 통해 아이의 세계는 풍부해져 있을 것이다. 적어도 내 경험을 미루어 보면 늘 그랬다. 독서의 방향을 잡아주며 무엇보다 재밌다는 점에서, 단점보다 장점이 단연 많이 보이는 책이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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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3-20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보고 아이세움의 명작논술 시리즈를 샀는데 39살인 저도 재미있게 보고 있어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