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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 잠들다
미야베 미유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즈음의 러시에 한 몫 끼어들어, 일본 미스터리를 읽는 것이 내게도 큰 즐거움이다. 그 중 맨 앞줄에는 미야베 미유키가 버티고 서 있다. 일본에서는 가장 선호하는 여성작가 투표에 6년 간 1위를 지킬 정도로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고루 얻는 인기작가라고 하는데, 내가 읽은 것은 만화와 <이코- 안개의 성>을 제외한 세 편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읽은 <인 콜드 블러드>와 함께 르포르타주의 매력을 흠뻑 느끼게 해 준 <이유>와 <화차>, 그리고 출간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용은 잠들다>가 그것이다. 내 경우 그녀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선정성-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인간의 물화-을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공통분모로 묶는 것이 부당한 고정관념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작가이기도 하다.
<이유>는 최고급 아파트에서 일어난 일가족 살인사건을 픽션이라기보다는 마치 아주 조밀한 그물로 건져올린 르포처럼 치밀하게 서술해내고 있는 소설이다. 세 편 중 굳이 따지자면, 가장 수작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인생을 훔친 여자>(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편집자의 고충도 이해가 가지만, 무슨 전설적인 도둑이었다가 신앙의 힘으로 갱생한 녀성의 수기집 같은 제목 아닌가) <화차>만큼 가슴을 뒤흔들어 놓는 소설은 없었다. 문제의 <화차>는 각기 비슷한 양태의 불행을 겪은, 그러나 결국 한 사람은 피해자가, 한 사람은 가해자가 되고 마는 두 여성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이야기. 현대사회의 공포인 신용불량, 개인파산 등의 문제가 첨예하게 얽혀 생각할 거리가 풍부하면서도, 주인공이자 가해자인 여성의 서서히 드러나는 윤곽을 파악해가는 재미가 아주 말도 못한다. 인적드문 길, 달빛 아래서 보는 그로테스크하고 아름다운 뒷모습 같은 느낌이다. 따라가도 따라가도 거리가 좁혀지지 않다가, 어느 순간 숨막히는 앞면을 드러내며 돌아서는 여자. 스포일러가 두려워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 없는 점이 못내 아쉽지만, 마지막 장면도 꼭 이런 느낌이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강렬한 감정이입의 경험이었다.
이번에 읽은 <용은 잠들다> 같은 경우에는, 미스터리 애독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을만큼 말랑말랑하면서도 호소력이 깊다. 앞서의 두 작품에 비해서는 연령대가 낮은 독자들이 선호할 것 같다. 사이코메트러, 즉 접촉만으로 물건이나 사람의 지난 역사, 기억을 엿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소년이 주인공이다. 비근한 예를 들면 <사이코메트러 에지>의 에지- 뭐 그 발전형 정도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흔히 독심술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마음이 아니라 기억을 읽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감정과 생각들은 어차피 기억을 매개로 구성된다. 기억이 만든 사전정보가 없다면 형상화될 수 없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뇌에는 현재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과거를 읽는 사람들이다.
"원하는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걸로 하겠는가?" 주로 어린시절에 흔히 받게 되는 질문이다. 생각키로 그 중 독심술이라는 것만큼 어린 시절과 나이가 들었을 때 각기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는 '능력'도 없지 않을까. 그 전능한 이미지에 매료되어 어린 시절에는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간택되는 일이 많지만, 점차 그 무서운 의미를 알아가면서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되어버린다는 말이다. 이 경우 선택받았다는 것과 저주받았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동의가 된다. 그러므로 <용은 잠들다>가 <사이코메트러 에지>보다 발전형이라는 표현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일단 능력면에서 <용은 잠들다>의 주인공들은 텔레파시 전송이 가능하며, 어떤 경우에는 텔레포테이션 즉 공간이동까지 할 수 있다. 단편적인 기억이나 형상만을 떠올릴 수 있는 에지와는 달리 소리와 영상을 마치 영화를 보듯이 엿볼 수도 있다. 그 외 사이코메트러가 겪을 수밖에 없는 절대고독과 정체성의 위기에 대해서도 <용은 잠들다>는 매우 첨예하게 묘사해내고 있다.
하나의 사건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주인공을 인도하며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마주하게 하는 것은 미야베 미유키의 단골 수법이다. <화차>에서 휴직경찰은 왕래가 없던 죽은 아내의 조카와 오랜만에 조우한다. 조카는 사라진 약혼녀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결국은 약혼녀의 행적을 밟아가게 되는데 어느 시점에서부턴가 더이상 문제는 '실종사건'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찾아야 하는 '그녀'도 두 명으로 늘어난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을까"와 "그 혹은 그녀는 왜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라는 두 질문에 공평하게 시각을 안배하는 것 또한 이 작가의 특징이라, 독서는 흔한 관용구가 주는 울림을 넘어서 그 자체로 만남의 경험이 된다. 거대한 그물망에 얽혀 살아가는 인물과 그 맥락을 뒤쫓는 일- 그러므로 이해하는 일. 내 견해로는 이것이 미야베 미유키식 '사건해결'의 정의다.
<용은 잠들다>에서도 다르지 않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어린 아이가 맨홀에 빠진다. 저널리스트인 주인공은 길에서 만나 태운 한 소년과 함께 이 사건의 목격자가 된다. 위험하게도 맨홀 뚜껑을 열어놓은 범인들을 뒤쫓기는 하지만, 이것이 이야기의 다일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상기한 사건을 사이코메트러 소년과 얽히게 되는 계기로만 무책임하게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주인공의 직업, 공정하지만 어딘가 머뭇거리는 성격과 살짝 드리운 과거의 그림자, 그와 대조적인 사이코메트러 소년의 무모하고 정의감 넘치는 성격 같은 정보들도 하나도 낭비되거나 허투루 서술되는 일 없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에서는 다음 생에는 사랑받을 수 있기를- 이라는 물컹거리고 흔해빠진 표현에 그만 얻어맞고야 만다. 살과 근육과 뼈를 뚫고 곧바로 심장을 가격당한 느낌이다.
살면서 내가 깨닫게 된 유효한 진리 한 가지가 있다면 이런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 다만 무슨 일을 했는지가 중요할 뿐이라는 것. 이것은 제법 공정한 원칙이다. 그러나 동시에 누군가가 이유를 물어주기를, 결과물에 상관없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여겨주기를 가끔, 혹은 꽤나 자주 바라게 된다. 그것을 듣고 또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유명해지기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별자리나 혈액형에 기댄 성격분석들이 그렇게 인기를 얻는 이유도 비슷하리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누군가는 말해 주기를 간절하고 애달프게 소원하는 것이다.
기계처럼 정확한 것, 늘 새로운 것만이 가치는 아니다. 미스터리 소설이 따뜻할 수 있다면 그건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일 것이고, 그런 신실함을 만들어내는 것은 다그치기에 앞서 이유를 물어주는 상냥한 인도자처럼 인물 하나하나를 그려내는 작가의 태도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용은 잠들다>는 매우 훌륭한 대체제다. 읽는 동안 어린 시절 소년소설을 읽을 때와 같은 순수하고 엔돌핀 넘치는 즐거움을 되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말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랴. 정말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