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이 사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과의 전쟁이며 캐나다와의 호수 전쟁(?)으로 한창 바쁜 와중에도 굳이 짬을 내서 일주일간의 조기 게양을 명령했다는 것은 살짝 뜬금 없지만, 그만큼 미국 내에서 영향력이 큰 연예인이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정작 코로나 백신이며 동성애자를 대하던 파튼의 태도는 트럼프와 정반대였었는데도.


미국의 컨트리라면 한국의 트로트와도 유사하게 골수 팬이 많아서, 비록 세계적인 인기는 뒤떨어지더라도 판매량은 어마어마하다고 알고 있다. 돌리 파튼도 1980년대 초의 전성기 이후로는 줄곧 하향세라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겠지만, 유작 앨범 <록스타>의 참여자들만 봐도 대중 음악계에서는 '큰할머니' 대접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1980년대에는 크로스오버를 통해 빌보드 메인 차트와 컨트리 차트 모두를 석권한 컨트리 가수가 여럿 나온 바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라이오넬 리치 작곡의 "레이디"로 인기를 끈 케니 로저스이고, 또 한 명의 사례가 "나인 투 파이브"로 인기를 끈 돌리 파튼이다.(아울러 두 사람이 함께 부른 "해류 속의 섬"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다).


"나인 투 파이브"는 동명 영화의 주제가인데, 돌리 파튼은 영화에서 악질 상사에게 반기를 든 여직원 3인방 중 하나로 출연했다. 다른 출연작으로는 샐리 필드, 줄리아 로버츠, 셜리 맥클레인, 대릴 해나와 함께 나온 <철목련>이 있다. 여기서는 주인공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미용실 원장으로 나왔는데, 극작가 샘 셰퍼드(!)가 남편으로 나온다는 점도 특이했다.


파튼의 출연작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것이라면 <텍사스 최고의 갈봇집>이라는 1982년 영화가 있다. 제목 그대로 20세기에 텍사스 라그레인지에 실제로 있었던 '치킨 랜치'라는 성매매 업소(!)를 소재로 했는데, 본래 그곳에 관한 탐사 보도 기사가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키면서 뮤지컬이 먼저 제작되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영화까지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치킨 랜치'는 대공황 시절 쪼들리는 손님들에게 닭 한 마리씩을 화대로 받고, 아예 그 닭들을 이용한 양계장을 부업으로 삼으며 생겨난 별명이다. 여성 포주가 종사자의 위생을 철저히 관리하고, 수익금 일부를 지역에 기부금으로 내놓고, 지역 상점에서 물품을 구매하고, 심지어 운영 중 얻은 정보를 경찰에 제공하는 등 여러 모로 상생 협력(?)을 지속해 나갔다.


그래봤자 성적 착취에 불법 영업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겠지만, <괴짜 경제학> 류의 연구에서 드러났듯 해적부터 마약 밀매 조직에 이르는 범법자들의 무리 역시 나름대로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독특한 문화를 구축하게 마련이므로, '치킨 랜치'와 '머스탱 랜치' 같은 유명 성매매 업소가 사회학이나 인류학의 주목 대상이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치킨 랜치'는 당대의 여타 성매매 업소에 비해 진일보한 편이었다는 평가마저 나오니, 어쩌면 여성사 분야에서도 또 하나의 빈칸을 채우기 위한 시도로서 해당 업소에 대한 재조명과 재평가를 시도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잭 더 리퍼의 희생자인 빅토리아 시대 성매매 종사자들에 대해서도 최근 유사한 맥락에서의 재조명이 이루어지는 듯하니까.


여하간 이래저래 민망한 소재와 내용일 수밖에 없는 이 영화의 삽입곡 중 하나가 돌리 파튼이 직접 작사작곡한 "당신을 언제나 사랑할 거에요"인데, 본래 1974년에 발표되었다가 1982년 이 영화 덕분에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되었으며, 훗날 휘트니 휴스턴이 영화 <보디가드>의 주제가로 리메이크하여 지금까지 전세계 사람이 다 아는 '앤다이아~'가 되었던 것이다.


영화에서 파튼은 성매매 업소의 여주인으로 나왔는데, 본인도 인정한 평소의 "싼티 나는 이미지"에 딱 어울렸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목청과 커다란 가슴(!)으로도 유명했으니, 유명한 '바니' 복장으로 <플레이보이> 표지에 등장하는가 하면, 젖샘세포를 이용한 세계 최초 체세포 복제양 '돌리'의 이름 유래가 된 것 역시 그런 이미지의 연장이었다.


요즘 같으면 성희롱에 성상품화라는 비판 여론이 나오고도 남았을 법하지만, 정작 파튼 본인은 이 모두를 유쾌한 농담쯤으로 여긴 듯하다. 언젠가 조이스 캐롤 오츠도 <플레이보이>에 기고한 것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페미니스트 진영을 향해 '내가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다고 해서 그 매체의 모든 주장에 동조한 것이겠는가?'라면서 일침을 놓은 것이 떠오른다.


그나저나 이쯤 되면 '제목에서 언급한 헤밍웨이 소설과 돌리 파튼이 도대체 무슨 관계냐?'는 질문도 나올 만하겠다. 대답은 이렇다. 앞에서 언급한 파튼과 로저스의 듀엣곡 "해류 속의 섬들"의 제목이 헤밍웨이의 사후에 여러 권 간행된 유작 중 최초인 동명 소설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다른 유작으로는 <에덴 동산>(1986)과 <여명의 진실>(1999)이 있다).


파튼과 로저스의 "해류 속의 섬들"은 훗날 랩 음악에 샘플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던데, 김진태의 만화 <호텔 캘리포니아>에선 컨트리 팬인 백인 교도소장이 툭하면 '힙합 정신'을 외치는 흑인 죄수들을 향해 '오, 그 노래도 원곡은 컨트리였지!' 하면서 흥을 깨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했었다.(한동안 네이버에도 연재하던 김진태인데 요즘은 뭘 하는지 궁금해진다).


헤밍웨이의 소설 <해류 속의 섬들>은 특이하게도 일본 만화 <바나나 피쉬>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오래 전에 읽은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주인공의 스승인 해결사가 좋아하는 소설이어서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읽는 것으로 나왔었다. 만화 제목인 "바나나 피쉬"부터 샐린저의 단편에서 따온 것이라니, 어쩌면 만화가 본인이 영미 현대 문학 애독자인지도 모를 일이다.


<해류 속의 섬들>은 1970년에 현암사에서 번역되었다가 절판되었고, 이후 무려 반세기 만인 2022년에 '고유명사'라는 출판사에서 새로 번역되었다. 그런데 신간의 소개글에는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 <해류 속의 섬들>은 1970년 한자가 뒤섞인 세로읽기 판(현암사)으로 출간된 이후, 무려 53년동안 번역이 안된 채 미출간 상태로 남아있었다"는 의아한 구절이 있다.


왜 의아한가 하면, 현암사 구판이 "세로읽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자가 뒤섞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제목만 <海流 속의 섬들>로 한자가 들어갔을 뿐, 본문에서 한자 노출은 '二개'나 '五주' 같은 숫자 표기뿐이고, 단어의 경우에는 '유목(流木)'처럼 한글과 병기했다. 결국 번역자나 출판사는 "한자가 뒤섞인" 책 표지만 보고 지레짐작한 것 아닐까?


따라서 현암사 구판을 굳이 "한자가 뒤섞인" 책이라 지칭한다면, 고유명사 신판은 '한자' 十六 대신 '아라비아 숫자' 16을 사용했다는 점에 착안해 "아랍 문자 뒤섞인 책"이라 해도 무방할 법하다. 신판은 구판의 오역을 바로잡은 바람직한 면도 일부 있지만, 이처럼 사실과 다른 내용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신뢰도가 떨어진다. 물론 그나마도 이젠 절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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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일본에서 야생 곰 때문에 발생한 인명 피해가 어마어마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살짝 의아했었다. 그곳에는 예전부터 곰이 많았던 만큼 곰을 잡는 전문 사냥꾼도 많았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뉴스를 검색해 보니, 바로 그런 곰 사냥꾼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야말로 지금처럼 관련 사망 및 부상 피해가 증가한 원인 중 하나라는 모양이다.


단적으로 작년 한 해에만 해도 일본에서 곰의 습격으로 인한 피해자가 238명이고 그중 사망자가 13명이었으며, 올해 7월 말까지의 통계만 해도 피해자가 53명이고 그중 사망자가 6명이라 한다. 이쯤 되자 일본 정부에서도 곰 포획 예산을 260억 엔쯤 투입했다고 전하는데, 엉뚱하게도 일본을 찾은 외국인에게 걷은 출국세로 상당 부분을 충당한다 해서 논란이다.


그나저나 일본의 전문적 곰 사냥꾼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생각난 책이 하나 있었으니, 무려 20세기 후반에 그 나라를 주름잡았던 한국계 곰 사냥꾼의 자서전이다. 일본에서는 출판사에서 정식 간행된 책인 모양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하게도 <곰사냥 일대기>(후지와라 쵸타로 지음, 김영련 옮김, 1996)라는 300부 한정 비매품 책자로서 간행되었다.


저자 후지와라 쵸타로(藤原長太郎)는 본명이 나성현(羅成賢)으로 1926년에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1940년에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와카야마현에서 살다가, 해방 이후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혼자 일본에 남았다. 이후 한국의 가족과는 소식이 끊겼다가, 조카인 대안건설 대표 나무(羅武)가 삼촌을 수소문해 자서전을 번역 간행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평소에도 사냥을 취미로 삼았었는데, 1957년에 거주지 인근에 곰이 출몰해 농민의 피해가 크다는 소식을 듣고 본격적으로 토벌에 나서게 되었으며, 이후 1980년까지 총214마리의 곰을 잡았다고 한다. 특히 1964년에 NHK의 TV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큰 화제를 불러 모았으며, 급기야 시청자 중 한 명의 적극적인 구애로 늦게나마 결혼까지 했다.


문득 저자의 근황이 궁금해 구글링해 보았는데, 일본 쪽에서도 저 책과 관련된 게시물은 일부 남아 있지만, 이후의 자세한 소식은 찾을 수 없었다. 생존해 있어도 이미 100세이니 아마 지금쯤은 이미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조카가 운영했다는 대안건설이란 업체도 30년 뒤인 지금에 와서는 흔적조차 찾기 힘드니 이래저래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곰사냥 일대기>에서 저자는 사냥에 뛰어든 계기, 사냥에 쓰는 총기와 장비, 곰 사냥에서의 주의점, 각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 관련 정책의 문제점 등을 서술한다. 기존에 발표한 짧은 글을 엮기라도 했는지, 기대에 비해 체계적이거나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아니어서 아쉬운 면도 있지만, 곰 사냥이라는 보기 드문 주제에 관한 자료라는 점에서는 큰 의의가 있겠다.


일본의 전통적인 사냥꾼을 '마타기'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심마니처럼 독특한 풍습을 유지했다고 알려져 있다. <곰사냥 일대기>의 저자가 받드는 철칙 중에도 '좋은 꿈을 꾼 날에는 사냥에 나가지 않는다'와 '여자가 앞에 지나가면 사냥에 나가지 않는다'는 미신적인 내용이 있는데,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까닭에 최대한 신중을 기하려다 보니 나온 습관이 아닐까.


마타기를 다룬 소설로는 2004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어느 포수 이야기>가 있다. 일본 도호쿠 지방의 청년이 사냥꾼으로 입문해서 파란만장한 경험을 거친 끝에, 오랜 숙적인 거대한 곰에 맞서 일대일 사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줄거리를 적어놓고 보니 마치 <모비 딕>과도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연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나약함을 더 부각시킨 느낌이다.


일본에서는 제법 인기를 끌었는지 훗날 만화로도 각색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원제 그대로인 <해후의 숲(邂逅の森)>으로 번역되었는데, 다소 거칠고 잔인한 내용이 포함된 소설에 비해서는 상당히 순화된 편이라고 해야 맞겠다. 만화책 각 권 말미에 원작자의 첨언이 한 페이지씩 붙어 있으니 소설을 읽고 마음에 들어 했던 독자라면 만화로도 한 번 읽어볼 만하겠다.


마타기 관련 소설과 논픽션이 일본의 곰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서양사 분야에도 관련서가 몇 가지 있다. <곰과 인간의 역사>는 부제인 "세상에서 가장 오래 된 애증관계"처럼 저 맹수와 인류의 복잡다단한 인연을 개괄하는 내용이다. <곰, 몰락한 왕의 역사>는 프랑스 역사가인 저자가 서양 중세사를 중심으로 저 맹수와 관련된 갖가지 이야기를 풀어내는 내용이다. 


곰 사냥 관련 국내 기록으로는 독립군 출신으로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범석 장군의 회고록 <우둥불>에도 몇 가지 일화가 언급되었다고 기억한다. 한 번은 곰과 마주친 상황에서 갑작스레 총이 고장나서,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곰과 사람이 커다란 나무 둘레를 이리저리 뱅글뱅글 돌면서 쫓고 쫓기다가 간신히 총을 고쳐서 사살했다는 일화도 있었던가 그랬다.


곰이라고 하면 지금은 푸우부터 벨리곰까지 친근한 이미지가 대부분이지만, 실제로는 호랑이도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숲속 최강의 맹수이기 때문에 야생에서 맞닥트렸을 때에는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 당장 빌 브라이슨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체험기인 <나를 부르는 숲>에도 곰의 위험성에 대해서 아예 한 장(章)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하니까.


우리나라도 1980년대까지는 야생 반달곰이 포획되다가 이후 멸종되었다고 기억하는데, 2000년대부터는 생태계 복원이라는 미명으로 반달곰 복원 사업이 이루어진 모양이다. 하지만 이것도 수십 년이 지나고 보니 그 성과가 미미하고 안전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비판과 이의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자연 보호도 좋지만 일본의 사례를 감안하면 좀 더 주의가 필요하겠다.


어쩌면 이런 생태계 복원 시도는 과거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지역에서 일어난 늑대 개체수 감소의 영향에서 착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목장주가 가축 보호를 위해 늑대를 제거하자, 천적이 없어진 사슴 등 초식동물이 급증하면서 오히려 생태계의 균형을 깨트렸다. 결국 균형 유지를 위해서는 상위 포식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외지에서 늑대를 데려왔다던가.


하지만 이건 미국처럼 땅 넓은 나라 이야기이고,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에서 늑대나 곰 같은 맹수를 복원한다면 부작용도 적지 않을 법하다. 지난번 '늑구' 한 마리 탈출한 사건에도 열흘이나 난리법석이 벌어진 것을 감안하면, 현실적인 위험 가능성을 고려하여 좀 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리 슬기 같은 곰 처녀를 조상으로 여기는 민족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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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서투른 나귀님인 탓에 뭘 또 잘못 눌렀더니 '알라딘 특별 기획: 다시 뽑아보는 3대 미스터리' 페이지가 나온다. 흔히 '세계 3대 미스터리'라고 일컬어지는 "엘러리 퀸의 <Y의 비극>,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번 기회에 알라딘 나름대로 새로운 '3대 미스터리'를 선정했다는 거다.


기획 취지에 따르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는지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이 목록이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고 비판하면서, "알라딘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새로운 3대 추리소설을 선정해보고자" 했다고 한다. 결국 자기네는 기존 3대 미스터리에 비해 더 '근거 있는' 선정을 해 보았다는 뜻이려나.


하지만 그 결과물은 어쩐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 및 독자 선정단 112명 중 각각 22명, 20명, 19명의 추천으로 찬호께이의 <13.67>,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새로운 '3대 미스터리'로 선정했다는데, 이쯤 되면 애초의 거창한 의도와 달리 단순 인기 투표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은 알라딘이 공개한 선정단 112명 추천 도서 451종 목록에서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10명 이상 추천 작품은 10종인데 그중 7종이 일본 소설이고, 크리스티의 고전 2종을 제외한 8종 모두 21세기 작품이다. 5명 이상 추천 작품 34종으로 범위를 넓혀 보아도, 60퍼센트인 21종이 일본 소설이고, 그중 1990년 이후 작품은 19종이며, 21세기 작품은 12종이다.


이쯤 되면 '알라딘 선정 3대 미스터리'는 2026년 현재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책들에 대한 인기투표에 불과하다고 봐야 할 것만 같다. 차라리 '21세기 3대 미스터리'로 범위를 줄였다면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는데, 포와 도일의 시대까지 망라하는 미스터리 역사 전체에 대한 평가라면서도 최근작에 과도히 편중된 결과가 나왔으니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작품과 선집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아서, 이 장르의 비조 E. A. 포는 "모르그 가의 살인"과 <포 단편선>으로 표가 갈렸고, 코넌 도일도 시리즈의 통칭인 "셜록 홈즈 시리즈"와 단편집 <셜록 홈즈의 모험>으로 표가 갈렸다. G. K. 체스터튼이 '추천 이유'에만 거론되고 선정되지 않은 것, 미스터리 장르의 패러디인 <장미의 이름>이 고평가된 것도 기묘하다.


알라딘의 애초 의도는 "베스트셀러나 최근 화제작 중심의 소개를 넘어, 지금의 미스터리 장르 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작품, 더 많은 독자가 읽었으면 하는 작품, 그리고 오래도록 회자될 만한 작품들을"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는데 결국 인기 투표에 불과했으니, 이쯤 되면 알라딘 측의 설문 조사 설계에 근본적이고 만성적인 문제가 있지 않나 의심하게 된다.


이런 문제점은 지난번 '21세기 최고의 책' 선정 과정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선정된 책이 대부분 신간이다 보니, 그냥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우수작을 고른 수준이었다. 자격 자체가 의문인 책도 적지 않았으니, 선정단 중 일부가 자신의 저서와 역서를 선뜻 추천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추천작 10권 중에 추천인의 저서와 역서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경우까지 있었다. 


제대로 된 설문 조사라면 이런 편향이나 장난질을 걸러낼 수 있는 장치를 갖추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말했듯 연도 범위를 줄여 시대별 최고작을 선정해 경합시키든가, 아니면 전체 이용자나 구매자의 설문을 전문가가 검토해서 편향과 오류를 줄이는 과정을 거치거나, 아니면 애초부터 전문가에게만 의뢰해 더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하려 고민했어야 한다.


지난번 영화배우 김지미와 안성기가 타계했을 때에 부고 기사를 보면 하나같이 데뷔작과 최근작 몇 가지를 거론하는 데에서 그쳤는데, 각각 1960년대와 1980년대였던 두 사람의 전성기를 직접 목격한 사람 중에 현재 언론계에 남아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들 자기가 아는 내용만 가지고 쓰려다 보니, 그들의 활약상을 제대로 전달 못한 셈이다.


지금이야 일본 추리소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정작 10년 뒤나 20년 뒤까지 그 인기와 호평이 지속될지는 모를 일이다. 해방 이전 국내 작가의 추리소설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김내성의 <마인>도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고, 이번 설문 조사에서도 딱 한 명만 추천하고 말았으니까. 그렇게 보자면 포, 도일, 크리스티는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여하간 단순 인기 투표를 벗어나려는 노력이 없다면, 알라딘의 설문 조사는 향후로도 공신력을 얻지 못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강의 소설이 '한국 3대 소설'과 '세계 3대 소설'을 싹쓸이하고, '한국 3대 SF 소설'과 '한국 3대 호러 소설'에서도 '한국의 미래를 보여주었다'나 '한국의 무시무시한 현실을 보여주었다'는 황당한 이유로 한 권쯤 선정되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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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엔가 심훈의 육필 원고가 국내로 귀환한다는 뉴스가 연이어 나오기에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 살펴보았더니, 뭔가 약간의 과장인지 호들갑인지가 섞인 보도가 아닌가 싶었다. 뉴스 제목만 놓고 보면 마치 부당하게 국외 반출이라도 된 문화재가 환수되기라도 한 모양새이지만, 실제로는 해외 교포인 유족이 오랫동안 잘 보관하다가 내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간 심훈의 육필 원고는 미국으로 이민을 간 셋째 아들이 잘 간수해 왔다는데, 수년 전에 그도 사망하자 유족의 결정에 따라 국내 기관에 기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해당 기관은 2027년 개관 예정이라는 국립한국문학관으로, 무려 7년에 걸쳐 유족을 설득한 끝에 <상록수> 육필 원고와 초판 단행본을 비롯해서 50여 종의 관련 자료를 기증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자기네가 직접 발굴한 것도 아니고, 단지 해외에 거주하는 적법한 상속자로부터 기증받은 물건을 가져오며 굳이 요란을 떤 것은 한국문학관 측의 과도한 언론플레이 같기도 하다. 그나저나 심훈의 자료는 유족 덕분에 비교적 쉽게 확보했지만, 다른 작가의 자료는 어떻게 확보할지도 궁금하다. 가치 높은 자료는 이미 누가 가져갔을 테고, 초판본도 가격이 비싸니까.


결국 현대 문학의 중요한 초판본을 대부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한 '윤길수 장서' 같은 수준 높은 개인 컬렉션을 통째로 인수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어 보이는데, 문제는 결국 가격일 것이다. 유명한 <진달내꼿> 초판본을 비롯해 최소 수억 원에서 최대 십수억 원대로 추정되는 그 책들을 인수할 만한 예산을 국가 기관인 한국문학관 측에서 선뜻 내놓을지는 의문이니.


그렇잖아도 그간 각지의 유사 문학관이며 기념관의 행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소문도 많았다고 알고 있다. 쉽게 말해 지자체에서 '건물 지어줄 테니 물건 내놓으라'는 식으로 해당 인물의 유품이나 자료를 반강제로 기증받는 방식이 성행한 것인데, 막상 옆구리 찔러 절 받듯 기증받고 나서는 제대로 관리도 안 해서 뒤늦게 유족과 갈등이 벌어진 경우도 있다 한다.


심지어 심훈의 경우에도 충남 당진에 '심훈기념관'이 이미 있는데, 정작 이번의 육필 원고 반환에서는 배제된 듯한 모양이니 의아한 일이다. 당진은 <상록수>의 집필 장소이자 심훈의 묘소가 있는 곳으로 자격이 충분하기에, 2014년 당진시가 유족과 협의하고 장서와 유품 414점을 기증받아 개관했으며, 현재도 '심훈상록문화제'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모양이다.


따라서 육필 원고 기증에서도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한국문학관보다는 심훈기념관이 더 우선이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거꾸로가 되었으니 그 와중에 또 어떤 우여곡절이 있는지 궁금하다. 당진시의 입장에서는 심훈의 유품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만한 것을 놓친 셈이니 두고두고 원망스럽지 않겠나. 물론 정확한 이유는 유족 측의 설명도 들어보아야 하겠지만.


고서업자 릭 게코스키의 에세이에 서술된 바에 따르면, 외국에서는 유명 작가의 육필 원고나 소장 도서를 대학이나 도서관에서 매입하는 것이 일반화된 듯하다. 국내에서도 주요 관련 기관이 이런 자료를 '기증 압박'하는 대신에 제값을 주고 매입하는 풍토가 자리잡아야 할 텐데, <진달내꼿> 초판 선정 논란에서도 드러났듯이 아직까지는 영 인식이 부족한 듯하다.


현실은 오히려 반대라서, 심훈의 작품을 이용해 부당한 수익을 챙긴 국가 기관도 있다고 한다. 올 초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문체부 산하 한국문학예술저작권협회(문저협)에서 심훈과 김영랑 등 저작권 보호 기간 만료 작가들의 작품에 대해서도 판권료를 받아냈다가 적발되었기 때문이다. 문저협은 한강의 판권료도 미지급한 전과가 있었으니 이쯤 되면 상습적이다.


시 "그날이 오면"와 소설 <상록수>에 드러난 것처럼 심훈은 민족주의자이자 계몽주의자였으며, 3.1.운동에 참여하여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그의 두 형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린 친일파라고 하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심지어 친일파로 평가된 큰형의 아들(즉 심훈의 조카)가 <상록수>의 모델로 간주되고 있으니 더욱 아이러니하다.


요즘 기준으로 따지면 결국 심훈도 친일파 집안 출신이고 <상록수>도 친일파 아들이 모델이니 양쪽 모두 배척해야 한다는 여론이 생기진 않으려나. 마침 어느 신인 여배우가 집안 자랑을 하다 친일파 내력이 파묘되어 연일 입방아에 오르는 상황이니 말이다. 급기야 일각에서는 친일파 재산 환수 주장까지 나온다지만, 글쎄, 그게 과연 말처럼 간단한 문제일지...



[*] 비교적 일찍 타계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훈의 저술은 개인 전집으로 여러 번 간행되었다고 알고 있다. 알라딘 중고샵에만 해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간행된 두 가지 전집이 등록되어 있고, 2000년에도 새로운 "심훈문학전집" 간행이 시도되었지만 1권만 간행되고 말았다. 지금 다시 검색해 보니 2016-2019년에 "심훈 전집"이 전9권으로 간행되어 여전히 판매 중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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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들어온 바깥양반이 아침 일찍 극장 가서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왔다기에, 과연 어느 정도로 원작과 다르게 각색이 되었나 궁금해서 몇 가지 기억나는 대로 질문을 던져 (예를 들어 '아르고스를 연기한 배우는 누구인가?') 답변을 들어 보니, 현대적 해석이 상당 부분 가미되며 사실상 원작 훼손 수준의 변형이 이루어진 것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오디세이아>는 완전한 비극만도 아니고, 오디세우스 역시 완벽한 영웅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현대식 해석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려면 제신과 마법을 완전히 배제한 청동기 시대 야만인들의 생존 투쟁기로 묘사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과격한 수준까지 각색이 이루어졌다면 복식 고증이나 배우 섭외 등에서의 논란도 애초부터 안 생기지 않았을까.


이번 영화의 고증 논란은 보르헤스가 지적한 '투명인간'의 난점을 연상시킨다. 고대의 플라톤은 '기게스의 반지'를 설명하면서 그런 마법 반지가 있었다고 말하고 넘어가면 끝이지만, 현대의 웰스는 '투명인간'의 사실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구구절절 들어야 하니 힘들었단 거다. 평소 사실성을 중요시한 영화 감독이니 고증 논란도 자연히 따라붙은 것이 아닐까.


배우 섭외 관련 논란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사례는 엘리엇 페이지이다. 트랜스젠더인 탓에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왜곡 시비가 벌어질 것 같더니만 결국 원작에는 없었던 배역을 담당한 듯하다. 나귀님 생각에는 이 배우야말로 남녀 양성 모두로 살아보았다는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역할에 안성맞춤이었을 것 같은데, 어째서 그 역할을 안 맡겼는지 의아할 뿐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간교한 영웅이다. 거짓말과 시치미는 기본이고, 자만한 행동으로 위기도 자초하니, 마블 영화로 치면 시종 진지한 캡틴보다는 깐죽대는 아이언맨과 더 유사하다. 긴 여정에서 동료들을 모두 잃고 감금당했지만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목표를 위해서는 굴욕조차 받아들이니, 그를 무조건 지치고 힘든 인물로만 묘사한 것은 절반만 본 셈이다.


현실의 전쟁을 의식한 까닭인지, 이번 영화는 <오디세이아>를 너무 어둡게만 그리려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감독의 이름값 때문인지 흥행과 평론 모두 호평 일색이지만, 좀 더 객관적인 평가는 더 기다려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호프> 논란에서도 유사하게 전개되듯이, 관객의 반응이 기껏해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색이라면 걸작까진 아닐 수 있으니까.


나귀님이 이제껏 본 그리스 신화 영상화의 최고봉은 <이아손과 아르고호 원정대>(1963)이다. 고증 따위는 가뿐히 씹어버리고 순수한 재미로 승부하는 영화인데, 특히 레이 해리하우젠이 전설적인 스톱모션 특수 효과로 구현한 청동상과 해골의 모습은 지금 봐도 충분히 신기하다. 작품성으로 따질 수는 없어도 오락성으로 따지자면 가히 최고의 영화라고 할 만하다.


그나저나 <오디세이아> 이야기가 나왔으니, 엉뚱하게도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대목에서 그 작품이 언급된 것이 생각난다. 작년엔가 예능 프로 <케냐 간 세끼>를 보다가 문득 생각나서 꺼낸 책인데, 왜냐하면 저자인 이사크 디네센(카렌 블릭센)이 한때 케냐에서 커피 농장을 운영했고, 그 기억을 더듬은 회고록이 훗날 영화로도 유명해진 이 책이기 때문이다.


그중 한 대목에서는 저자가 책을 쓴다며 타자기를 두들기자, 옆에서 지켜보던 원주민 하인 소년이 나름대로 논리정연한 반론을 제기한다. 즉 책장에서 꺼낸 책 한 권을 보여주며 '책이란 이렇게 한데 묶인 것이지만, 주인님의 글은 낱장으로 떨어져 있어서 책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물론 그의 주장은 원고(낱장)와 제본서(책)의 차이를 오해한 것뿐이다.


이때 소년이 꺼낸 책이란 바로 <오디세이아>였는데, 저자가 내친 김에 그 내용을 설명하며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양을 이용해 탈출했다고 말하자, 소년은 그 양이 자기가 본 양과 비슷한 것인 듯하다고 단언한다. 허구 속의 대상을 자기 주변의 대상과 연결지어 이해하는 특이한 사고방식은 백인과 원주민의 접촉을 다룬 책에서 흔히 등장하곤 했었다.


이번에 뒤적여 본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열린책들의 '미스터노' 페이퍼백 판본인데, 뒤표지를 보면 "국내 최초 번역"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하지만 그보다 20년쯤 전에 나온 <아웃 오브 아프리카>(위미숙 옮김, 포커스, 1991)라는 번역본도 있었다. 생각난 김에 그것도 꺼내 대조해 보니 전5장 중 단상 위주인 제4장(어느 이민자의 노트)를 제외하고 번역했다.


포커스 판본은 예를 들어 개 이름 "더스크"(dusk)를 "다스크"로 표기하는 등, 고유명사 표기가 어색한 것으로 미루어 일어 중역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거꾸로 포커스 판본이 더 이해하기 쉬운 경우도 있었다. 예전에 저자의 하인이었던 원주민이 보낸 안부 편지에서 상대방을 "암사자"라고, 즉 "암사자 블릭센"과 "존귀하신 암사자님께"로 호칭한 대목이 그러했다.


열린책들 판본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냥 넘어간 반면, 포커스 판본에서는 저 원주민의 영어가 유창하지 못한 까닭에 '남작부인'(Baroness)을 '암사자'(Lioness)라고 잘못 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역주가 붙어 있다.(문득 국문학자 양주동의 일화에서 어느 제자가 보낸 안부 편지를 보니 "恩師(은사)"를 "鬼帥[귀신 장수]"라 잘못 적었더라던 대목이 떠오른다). 


그래도 과거에 포커스 판본이 반가웠던 까닭은 '영화 소설'이 아니어서였다.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2000년대 이전의 간행물 중에는 어떤 외국 영화가 개봉되면 그 원작이 아니라 영화 내용을 그대로 가져다가 소설로 각색하고 영화 포스터를 표지에 붙인 조악한 출판물이 범람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도 영화 개봉 후에 그런 책들이 여러 종 나왔다고 기억한다.


아울러 포커스 판본의 또 한 가지 장점은 저자와 주요 인물의 사진이 흑백으로나마 몇 가지 수록되었다는 점인데, 이에 비해 열린책들 판본은 도판이 전무하다. '포커스'라는 출판사 발행인이 사진작가 김용범이고, 뒷날개에 그의 아프리카 사진집도 선전하는 것으로 미루어, <아웃 오브 아프리카> 원작 번역서도 아프리카에 대한 개인적 관심의 연장이었던 걸까.


앞서 언급한 원주민 소년은 케냐 총인구의 20퍼센트에 달하는 키쿠유족이었다. 외계 행성에 아프리카 같은 자연 환경을 만들어 전통 문화를 유지한다는 묘한 내용인 <키리냐가>의 주인공도 바로 키쿠유족이었다. 유명한 고고학자 루이스 리키의 아들인 리처드 리키도 어려서부터 키쿠유족과 생활해서 그 부족 특유의 성인식(!)까지 치렀다는 이야기가 문득 기억난다.



[*] 루이스 리키에 관한 이야기는 제인 구달에 이어 비루테 갈디카스까지 타계함으로써 '어쩐지 모두 세상을 떠난 세 딸들'에 대한 글에서 다시 언급하도록 하자. 물론 '나스타샤 킨스키 4종 세트'나 '마리루이제 플라이써의 길고 화려한 극작가 생활'처럼 머릿속에는 다 들어 있지만 막상 옮겨 적으려니 귀찮아서 어영부영하다 결국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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