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이 읽다 말고 놓아둔 박완서의 에세이집 <호미>를 오랜만에 뒤적이다 보니, 한 가지 흥미로운 내용이 등장한다. 언젠가 저자가 설비 수리를 하러 온 나이 지긋한 목수에게 뭘 물어보니 '당근'이라는 답변이 나오더란다. 무슨 말인가 싶어 한참 어리둥절하고 당혹스러워하다가, 뒤늦게야 '당근'이 '당연'을 뜻하는 유행어임을 깨닫고는 머쓱해졌다는 것이다.


기존 '박완서의 굴욕' 시리즈(컴퓨터가 바이러스 걸렸다기에 옆에 있던 디스켓을 멀리 치웠더니, 수리기사가 한심하게 쳐다보더란 이야기도 그중 하나)의 연장인 셈인데, 저자도 겸연쩍은 듯 이렇게 덧붙인다. "별로 유행을 탈 것 같지 않은 연령층과 직업인에게까지 당근이 당연으로 일반화됐다는 걸 느끼면서, 그럼 정작 당근은 뭐가 되나 걱정이 됐다."(121쪽)


나귀님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공감 가는 구절이었는데, 왜냐하면 최근의 '무섭노' 논란을 비롯해서 일베 용어 사용 논란이 대두할 때마다 이와 비슷한 의문을 품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과연 어디까지 일상 용어를 잠식당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일베 용어가 특정될 때마다 금기어로 간주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일상어의 범위만 쪼그라들지 않겠냐는 것이다.


노무현을 비롯한 각종 표적에 대한 조롱과 합성에서 드러난 일베의 역량은 창작이 아니라 변형이다. 이른바 일베 용어도 기존 용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통용하는 것뿐이니, 일베 용어를 배제한다며 해당 단어를 배제하고 논란이 되는 표현들을 적극 기피하게 된다면, 결국에 가서는 일상어를 모조리 일베의 전유물로 순순히 넘겨주고 마는 꼴이 되지 않을까.


심지어 일베와는 무관한 나귀님조차도 공연히 오해를 받지 않으려 '노무'와 '운지' 같은 일베 용어를 기억하고, 생경한 신조어를 접할 때마다 그 출처가 무엇인지 일단 검색부터 해 보는 판이니, 이번 '무섭노' 논란 역시 역설적으로 일반 대중에게 일베 용어 학습 기회를 제공했다고 봐야 할 법하다. 일베로선 최초 문제 제기자에게 표창장이라도 주고 싶지 않을까?


더 큰 문제는 이번 논란에서 드러났듯, 어떤 표현이 일베 용어인지 판정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다. 같은 경상도 사람이라도 의견이 다르니, 자칫 일베 비판이 마녀사냥으로 번질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었다. 물론 나귀님이 보기에 가장 아이러니한 점은 평소 마녀사냥의 희생자로 자처하던 조국 같은 사람조차도 마녀사냥을 거들고 나섰다는 점이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박완서의 걱정이 아직까지는 기우라는 점이다. '당근'이야 여전히 '당연'을 뜻하는 말로 통용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근'의 원래 의미가 사라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당근'에 새로운 의미가 추가되었다고 봐야 할 테지만, 이 경우는 '당연'에 부정적 의미가 없어서일 뿐, 일베 용어처럼 부정적 의미가 깃들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수 있다.


그런데 박완서의 뜬금없는 당근 걱정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당근'은 남녀 관계에서 중요한 키워드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당근, 당근"은 여성을 바짝 흥분시키는 암호이기 때문이다. 자칫 너무 흥분한 나머지 막무가내로 달려들 수 있으니 남성도 조심해야 하고, 특히나 주변에 납작하고 단단한 물건이 없게끔 각별히 주의해야만 할 정도이다.


물론 요즘 분위기만 보면 저 마법의 암호 "당근, 당근"도 여차 하면 학폭에 일진으로 처벌받기에 딱이니, '당근'이 '당연'으로 대체된 것도 그런 분위기의 반영은 아닐까 싶다. 같은 시기에 젊은이들의 연애와 결혼도 줄고, 출산율도 급감했으며, 입양아 학대와 교권 추락도 종종 벌어졌으니, 박완서의 뜬금없는 당근 걱정도 혹시 시대를 꿰뚫어 본 통찰이었을까...



[*] 그나저나 '거제야호'부터 '무섭노'까지 최근 연이어 나라를 뒤흔든 화제의 시발점은 번번이 리센느이니, 이번 정부의 향후 최대 과제는 주가 안정과 부동산 공급과 더불어 저 걸그룹의 입단속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최근의 국정 기조를 감안하면 결과적으로는 BTS나 블랙핑크 같은 초인기 아이돌에 대한 활동 일수 규제니, 호남 출신 신인 걸그룹 육성이니, 차트 순위 2배 반영 아이돌 굿즈 발매처럼 영 뚱딴지 같은 대책만 줄줄이 나올 것 같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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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존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에 관한 글을 올렸는데, 원래는 몇 달 전에 이미 써 놓았던 글이었다. 일단 초고를 쓰고 나서 다시 읽어 보니, 내용 중에 '펜(PEN) 대회 참석차 업다이크가 방한했을 때 동행한 선배 작가 존 치버의 술주정을 받아주느라 고생했다는 일화가 기억난다'고 적은 대목의 사실 확인이 필요해 보여서 뒤늦게야 다시 자료를 뒤적였다.


처음에는 치버의 일기나 서한집에서 쉽게 찾을 줄 알았는데, 막상 펼쳐 보니 한국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는 언급만 짧게 나오고 술주정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면 혹시 펜(PEN) 관계자의 책에서 봤나 싶어, 해당 단체에서 29년간 근무한 직원의 회고록인 <해외에서 온 엽서>(엘리자베스 패터슨 지음, 박해경 옮김, 선우미디어, 2001)를 뒤져 보았지만 없었다.


이쯤 되면 한국 펜(PEN)의 대표를 역임한 전숙희(1919-2010)의 회고록을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이걸 도대체 어디 두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있을 법한 곳의 책장을 서너 번이나 연달아 뒤져도 안 나오기에 결국 포기했는데, 두 달이 지나서야 바깥양반이 찾아내라는 또 다른 책을 찾다가 책더미 사이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전숙희 회고록을 발견하게 되었다.


책을 찾을 때의 역설 가운데 하나는, 늘 보고 지나치던 책인데도 막상 찾으려면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를 쓰다 포기하고 나면, 그러니까 더 이상은 굳이 그 책을 찾지 않아도 그만일 때가 되면, 이상하게도 그때는 그 책이 딱 눈에 띈다. 오죽하면 헌책방에서도 '주인보다 손님이 책을 더 잘 찾는다'는 속설이 있으니, 나귀님만의 망상까진 아닌 듯하다.


여하간 나귀님이 발견한 전숙희의 책은 제목부터 <펜(PEN) 이야기>이며, 그 단체와 맺은 인연과 활동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물론 본격적인 회고록이라기보다는 관련 쪽글을 엮고 자료를 추가한 것이다 보니 생각만큼 체계적이지는 못해 아쉬운데, 차라리 대담 방식으로 그 생애와 활동을 차근차근 돌아보는 방식이었다면 훨씬 더 유용한 자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국제 펜클럽, 약칭 펜(PEN)은 1921년 영국에서 창립되어 세계 각국에 지부를 둔 문인 단체이다. 시인(Poet), 수필가(Essayst), 소설가(Novelist)의 머리글자를 따서 명칭을 지었고 H. G. 웰스, 모리스 마테를링크, 알베르토 모라비아, 아서 밀러, 하인리히 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등 노벨문학상 수상자 다수가 포함된 각국의 유명 문인이 번갈아 대표를 맡았다.


1960년에는 투옥 문인을 후원하는 산하 조직을 만들었고, 이후 각국을 돌며 열리는 총회마다 문인의 인권 문제에 대해 거론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한국 지부는 1954년에 설립되었는데, 휴전 직후 파리의 UN 총회에 참석했던 시인 모윤숙이 우연히 런던에 들렀다 펜(PEN) 본부의 간판을 보고 호기심에 우연히 문을 두들겼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는 비화가 전한다.


전숙희는 모윤숙을 보좌하다가 펜(PEN) 한국 지부의 대표를 맡았으며, 전쟁의 피해를 극복한 일본과 서독이 연이어 총회를 유치하는 것을 지켜보고 부러운 마음에 1970년 제37차 총회를 서울에서 개최하려고 추진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라 김지하에 대한 탄압 문제가 대두했고, 독재 정권의 선전에 사용될 수 있다는 펜(PEN) 내부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는 않았다.


문인을 탄압하는 국가는 안 된다며 한국 총회 반대 여론이 팽배한 가운데, 전숙희를 비롯한 한국 지부 회원들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한국 정부에 항의를 전달하는 선에서 타협하고 총회가 개최되었다. 나귀님이 얼마 전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에 관한 글에서 언급했듯이, 업다이크와 치버가 미국 지부 대표단 자격으로 내한했던 것도 바로 이때의 일이었다.


예상대로 박정희가 개막 연설을 하고 자신과 정부를 선전하는 영문 책자까지 참석자에게 잔뜩 선물하는 등, 당시 정권의 입김을 아주 벗어날 수야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중에 전숙희가 호텔로 찾아가 보니, 각국 대표마다 문제의 홍보물을 도로 내놓으며 '이건 가져갈 필요가 없으니 알아서 처분해 달라'고 눈웃음과 함께 부탁을 남기더라는 민망한 일화도 전한다. 


이후 1988년 제52차 총회의 한국 유치 과정에서는 전두환 정권의 김남주 등 문인 투옥 문제가 또다시 대두했다. 이때 가장 거세게 반대했던 회원 중 하나가 미국 지부의 수전 손택이었는데, 전숙희의 회고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총회 개최를 놓고 찬반 투표가 진행되어서 결국 찬성으로 결론이 나자, 분한 마음에 미국 지부의 동료와 함께 눈물(!)까지 흘렸다 전한다.


그래도 손택은 아들(!)까지 데리고 한국 총회에 참석했으며, 문학과 자유를 주제로 연설을 하기도 했다.(그 번역문 "작가의 시대적 사명"이 전숙희의 책에 수록되었다). 비록 성향도 확연히 다르고 종종 맞서기까지 했지만, 어쩌면 전숙희야말로 손택이 처음 만난 한국 여성 작가일 수 있으니, 과연 두 사람 사이에 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물론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펜(PEN)의 활동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우선 그 대표성 문제가 있고, 냉전 시대에는 동서 갈등에 편승해 정치 논리를 앞세웠다는 비판도 있었으며, 한국 총회처럼 본래 의도와 달리 독재 정권에 홍보 기회를 선사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 단체가 전세계 문인의 만남과 소통이라는 이상을 위해 나름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점은 펜(PEN) 총회 활동을 통해서 한국 문학을 조금이나마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전숙희만 해도 해외에 나갈 때마다 한국 문학 번역서를 챙겨가고, 한국 문학 소개 행사를 개최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했으며, 특히 한국 총회를 통해서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해외 작가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고 회고하고 있으니 말이다. 


비록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을 망정, 이런 초창기의 무모한 노력이 한국 문학 번역 지원 사업 등의 제도를 낳았고, 그 결과 반세기 뒤에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남이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으니, 최근 각광받는다는 각종 K-문화가 나아갈 길을 미리 보여주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는 언젠가 자연스럽게 노벨문학상도 타게 될 것이고, 국제 사회에서 인정도 받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1992년 저서 <펜(PEN) 이야기> 말미에 덧붙인 이 바람은 결국 30년 뒤에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현실이 되었지만, 정작 전숙희는 그 모습을 지켜보지 못하고 15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예전의 활동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무니 안타깝다.


전숙희는 보통 '수필가'로 지칭되지만, 문인보다는 행정가로서의 능력이 월등했던 듯하다. 단체 운영과 행사 유치를 위해서는 추진력과 자금력이 필요한데, 지금 봐도 만만찮은 국제 행사를 유치했다는 점에서는 이른바 여장부 유형일 수도 있겠다. 물론 전숙희가 한국 전쟁 당시의 말 많았던 '낙랑클럽'과도 가까웠다 하니, 짐작컨대 정부 쪽의 연줄도 있었겠지만.


전숙희의 가장 큰 뒷배는 동생인 '카지노 대부' 전락원(1927-2004)이었다. 펜(PEN) 지부 운영에도 그의 지원이 있었다는 언급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서울 총회 당시 참석자를 위한 '기생 파티'이다. 존 치버도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관련 언급을 남겼는데, 일기에는 그냥 '접대를 받았다'고만 나왔지만, 다른 기록에서는 '은밀한 곳을 주무르더라'고도 써 놓았다.


전락원은 워커힐 카지노로 시작해서 호텔 운영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면서 파라다이스 그룹을 현재 재계 100위권 내의 재벌로 성장시켰는데, 본인과 가족 모두 외부 노출을 꺼린 탓에 소문만 무성하다 보니 종종 사기꾼들의 사칭 피해를 입는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전청조 사건이 있는데, 이때에는 전락원의 아들이며 현재 회장인 전필립의 혼외자로 자처한 바 있다.


동생 전락원의 지원 하에 전숙희는 계원예중, 계원예고, 계원예대 등 학교를 설립하고, 잡지 <동서문학>을 창간하는 등 문화 방면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펜(PEN)의 두 번째 한국 총회로부터 불과 한 세대 만에 잠시 잊히기는 했지만, 향후 한국 문화의 세계 진출이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려면 십중팔구 전숙희의 활동에 대해서도 재발굴이 불가피하지 않을까.


여하간 '내한 당시 업다이크가 치버의 술주정 때문에 고생했다'는 나귀님의 기억은 잘못된 듯해서 삭제했다. 어쩌면 더 먼저 열린 소련 총회 당시 두 작가의 부부 동반 여행의 일화를 서울 총회 당시라고 착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치버 못지않게 주정뱅이로 악명이 높았던 레이먼드 카버라든지 또 다른 작가의 비슷한 일화를 잘못 기억했을 수도 있겠고...



[*] 예전에 사다 놓은 책 중에 1970년 펜(PEN) 서울 총회 자료집도 있었다고 기억하는데, 지금 와서 다시 찾으려니 어디 있나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 말했듯이, 꼭 필요할 때에는 안 보이다가 나중에 필요 없어지면 슬그머니 나타나는 패턴이 또 반복되려는 모양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펜 선집: 독일편>(분도출판사, 1976)과 함께 다시 한 번 소개해 볼까...


[**] 대략 1년 전쯤에 존 업다이크 글 쓰면서 덩달아 쓴 글인데, 올릴까 말까 차일피일하다가 마침 8월 1일이 전숙희의 16주기 기일이라기에 생각나서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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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삼성 이재용이 자사에서 오래 일하다 사망한 환경미화원을 조문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 요란한 행차가 아니라, 일행 없이 혼자 조용히 방문해서 유족을 만나고 장례비까지 사비로 지원했다니, 가뜩이나 반도체 호황과 주가 급등으로 일거수일투족에 시선이 집중되는 재벌 총수로서는 의외의 행동에 훈훈한 미담이라 여겨진 듯하다.


이전에도 커피를 선물한 알바생에게 몇 배로 사례하고, 떡볶이와 오뎅을 맛있게 먹어치우는 등 소탈하고도 너그러운 면모가 부각되는 것을 보면, 은둔형에 카리스마적 경영자였던 부친과 달리 친근한 이미지로의 전환이 유용함을 깨달은 모양이다. 어쩌면 여러 해 동안 재판과 투옥을 경험하면서, 내심은 몰라도 외양만큼은 변화가 필요함을 실감한 까닭은 아니려나.


심지어 이재용의 '메르스 사과문'은 진심 어린 사과문의 모범으로 간주되어, 최근의 정용진처럼 누군가가 미진한 사과를 내놓을 때마다 비교 대상으로 언급될 정도이다. 마침 반도체 호황과 주가 급등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어서, 설령 카리나가 전화를 걸어 오더라도 차단하고 이재용을 만나러 가겠다는 사람이 대다수일 듯하니, 본인이나 회사나 인기가 최고조이다.


이재용에 대한 여론이 항상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반도체 생산과 기술 개발에 대담하게 뛰어들었던 부친 이건희의 결단이 혜안으로 평가되는 반면, 편법 상속 논란까지 불사하며 모든 것을 물려받고도 손 대는 것마다 헛발질만 계속하다 뇌물 공여로 감옥 신세까지 졌던 아들 이재용이야말로 이른바 '호부견자'의 대표적인 사레처럼 보인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불과 몇 년 전에만 해도 삼성에 적대적이었던 여론이며, 심지어 삼성이 조만간 망할 것이라는 악담이 팽배했었다. 특히 거액을 투자했어도 대만에 밀리고 중국에 밀리는 반도체 사업이 장차 삼성의 아킬레스건이 되리라는 예측마저 나왔는데, 지금은 역대급 실적을 갱신하고 노조가 요구하는 억대 성과급도 선뜻 내놓으면서 모두가 '삼전닉스'만 바라보게 되었다.


주식이건 뭐건 '삼성 반도체'와는 아무 연관 없는 나귀님이지만, 여전히 그 이름을 들으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백혈병 사망자' 사건이다. 회사에서 우수한 고졸 사원을 선발해 공장에 보냈는데, 알고 보니 발암 물질 가득한 반도체 제작 시설에서 특수 약품으로 청소하는 것이 업무였다나. 급기야 해당 업무를 맡은 직원 중 백혈병 환자가 이상하게 늘어났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소송을 제기하며 잠시나마 관심이 일었지만, 삼성전자와 정부 모두의 외면 속에 해결이 지지부진하다가 10여 년 뒤에야 사측이 사과와 보상을 내놓았다고 전해들었다. 이른바 '세계 일류'와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그럴싸한 구호를 내걸었던 재계 1위 대기업에서 드러내는 매몰차고도 비인간적인 면모에 당시 크게 공분이 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새삼스레 이 사건에 대해 환기하게 된 계기는 며칠 전에 무슨 책을 찾으려고 바깥양반 책장을 뒤지다가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 많은 바깥양반이니, 그때에도 '저쪽' 운동 하는 친구들의 요청으로 관련 행사에도 참석하고 책도 얻어오고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한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다.


당시에 삼성전자의 태도는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고압적이었다. 반도체 호황으로 억대 성과급을 노조에 선뜻 내주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아울러 알바생과 환경미화원에게도 너그럽고 호감인 이미지를 쌓아올린 이재용의 행보를 생각하면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물론 그때는 호황도 아니었고 이재용이 전권을 장악하지도 않았다는 변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찌 보면 백혈병 사태 당시에도 메르스 사태 때에 나온 것과 같은 사과문이 나왔어야 맞지 않았을까? 20년간 근무하다 사망한 환경미화원의 빈소를 방문했듯이 진정한 추모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물론 백혈병 사태에 대한 사죄의 뜻으로 삼성은 공익 기금 수백억을 내놓았다니, 사태는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뭔가 미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20년 전 일을 이제 와서 다시 꺼내 삼성을 욕하고 불매하고 주가도 폭락시키자는 건 아니다. 다만 백혈병 사태며 비자금 조성을 비롯해 삼성의 여러 가지 '덩치에 걸맞지 않은' 야비한 행동을 여지껏 기억하는 나귀님으로선 최근의 '삼전닉스' 열풍에, 심지어 이재용의 개인적 인기까지 지켜보면서 여러 모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툭하면 일본을 향해 '용서는 하되 기억도 하자'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용서보다 기억이 앞서는 듯하다. 반면 삼성에 대해서는 기억보다 용서가 더 앞서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심지어 '좌파 코스프레'를 좋아해서 누구보다 열심이었던 알라딘이 다른 신용카드는 모조리 물리치고 유독 삼성카드에만 각종 혜택을 쏟아 부으며 광고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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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사이에 드디어 <자불어>를 완독했다.(번역서 제목은 <청나라 귀신요괴전>이지만, 지난번에 이야기했듯이 쓸데없이 길기만 하고 멋대가리 없는 제목이어서 원제로 지칭한다). 그 서문에 등장하는 "귀거"(鬼車) 관련 황당한 오역과 엉터리 역주를 지적하는 글을 올린 때가 2023년 연말이었으니, 그때부터 계산해도 무려 2년 반만에야 간신히 완독한 셈이다. 


한편으로는 상하권 합쳐 19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 버거워서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짧은 일화를 모아놓은 작품의 특성상 몇 편 읽고 덮어놓고, 한참 뒤에 다시 펼쳐 몇 편 읽고 도로 덮어놓는 식으로 읽어나갔기 때문이다. 번역과 편집 모두 그리 좋지는 않아서 종종 알듯말듯 모호한 문장이 등장하고 오타가 빈발한 것 역시 흥미를 반감시키는 요소였다.


<자불어(子不語)>는 <논어> "술이"편에 나온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에서 착안한 제목이다. 즉 "공자께서는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으셨다"라는 문장에서 "공자께서는 ... 말하지 않으셨다"를 가져와 제목으로 삼았으니, 결국 "괴력난신"에 관한 내용이란 뜻이다. 역시나 청대의 작품인 <요재지이>처럼 귀신, 괴물, 불가사의 등에 대한 일화를 두루 모았다.


다만 문학성 면에서는 한 세기 더 먼저 나온 <요재지이>보다 아무래도 한 수 아래로 보이기도 한다. <요재지이>가 본격적인 소설에 가깝다면 <자불어>는 여전히 필기(수필)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수신기>나 <이견지> 같은 더 이전 시대 필기류의 간략하고 단순한 서술에 비하자면 많이 발전했다고 할 수 있지만, 뭔가 미진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고전 괴담의 주요 유형 중 하나는 신원(伸寃), 즉 억울함을 해소하는 내용이다. <자불어>에서도 잘못된 판결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은 원혼이 되어 직접 복수하거나 관헌에 호소해 간접 복수하고, 인간이 아니라 요괴에게 당한 경우에는 성황신 같은 상급신에게 민원을 제기하여 정의를 구현한다. 심지어 최근 논란인 '보완 수사'와 유사한 내용도 찾아볼 수 있다.


"보전에서의 억울한 옥살이"(9권 7편)에서는 어머니를 죽였다는 누명을 쓴 아들이 끌려가며 성황신에게 호소하자 신상이 움직여 앞길을 막는 바람에 결국 재조사가 이루어져 누명을 벗는다. 사실은 이에 앞서 상급 관리가 수사 결과에 뭔가 미진한 데가 있다고 여기고 '보완 수사'를 명령했지만, 하급 관리가 이에 따르지 않으려다가 성황신의 분노를 산 것이다.


"정녀가 억울함을 하소연하다"(22권 29편)에서는 강간 살인 피해자인 여성의 원혼이 <장화홍련전>의 줄거리와 유사하게 한밤중에 상급 관리를 찾아온다. 자기 부모와 하급 관리 모두 가해자에게 뇌물을 받고 사건을 축소했다며 눈물로 호소하자, 상급 관리는 날이 밝자마자 하급 관리에게 '보완 수사'를 지시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준다.


"하화아"(22권 4편)에서는 남녀의 원혼이 어느 선비를 찾아와 전생의 원한을 갚는다. 과거에 남녀는 살인 누명을 쓰고 사형 판결을 받았는데, 사건을 담당한 하급 관리가 '보완 수사'의 필요성을 깨닫고 사형 집행을 계속 연기했다. 하지만 선비의 전생 모습인 상급 관리가 하급 관리를 닦달해 사형을 집행한 까닭에 결국 피해자 두 명의 원한을 사게 된 것이었다.


물론 귀신의 세계라고 해서 항상 정의롭고 공정한 것까지는 아니다. 고전 괴담의 또 다른 주요 유형인 '저승 여행'은 주인공이 갑자기 저승사자에게 끌려갔다가, 뒤늦게야 업무 착오로 판명되어 이승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짬을 내어 그곳 사정을 자세하게 구경하고 오는 내용이다. 이때 저승에서도 뇌물이 오가고 사정을 봐주는 등 이승과 다름없는 듯 묘사된다.


중국의 대표적인 괴담집은 대부분 저자의 불우함을 반영했다고 여겨진다. <요재지이>의 저자 포송령은 환갑에야 과거에 합격했고, <자불어>의 저자 원매도 과거에는 합격했지만 한직을 맴돌다가 퇴직하여 창작에 몰두했다. 따라서 이런 창작물 속의 인과응보와 사필귀정은 현실에 대한 불만의 반영일 수 있겠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 허구에서라도 그렇기를 바랐달까.


현재 정치권의 가장 큰 논제는 검찰의 보완수사권이라 한다. 경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 검찰 수사를 강제하게끔 만든 제도라는데, 이것 역시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의 반영으로 보인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검찰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없애자고 하는데, 이게 없어질 경우 어떻게 되는지를 최근의 '장윤기 사건'이 보여주었으니, 지금이라도 재논의가 필요하지는 않을까.


검찰 권력의 부작용이야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없애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라면 탄핵을 두 번이나 겪은 대통령 제도야말로 백해무익하다고 간주해서 검찰보다 먼저 척결해야 맞지 않을까. 경찰이라 해서 더 낫지 않음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났는데도 굳이 검찰을 '개혁'하겠다면, 아마 딴데 의도가 있진 않을지.


그나저나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여고생 가족이야말로 정말 괴담 내용처럼 죽어서라도 원한을 갚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이 세상에 귀신이란 없다는 것은 앞서 세월호 때며 무안공항 때에 이미 입증되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모두의 공분을 자아낸 저 두 가지 사건 때에도 억울한 사람은 분통이 터져도 보복하지 못한 반면, 잘못한 놈들은 다리 뻗고 잤으니까.


과연 이것이 세상의 이치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데, <자불어>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서로 싸우는 두 신"(3권 12편)에 따르면, 세상 만사를 소왕(素王: 술수)과 이왕(李王: 이치)이 7대 3의 비율로 나누어 처리하기에 "이치가 술수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예부터 그러했다"며 "세상의 인심, 천리, 선악, 시비는 결국 30퍼센트의 정의가 있을 것"이라 전한다.


70퍼센트의 불의와 30퍼센트의 정의라.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다. 결국 예나 지금이나 정의와 공정은 이상일 뿐 실현되기 힘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까. 그렇다면 공자는 저 30퍼센트를 실현하겠답시고 평생을 허비한 셈인가. 아울러 그가 말하지 않았던 저 70퍼센트의 불의는 괴력난신의 틀을 거쳐 <자불어>나 <요재지이> 같은 기록에 반영되었던 것이고...




[*] <요재지이>의 경우, 비록 소설이기는 하지만 조너선 스펜스의 <왕 여인의 죽음>에서는 당대의 상황을 재구성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저자는 17세기 중국에 살던 한 여성의 억울한 죽음을 서술하는 과정에서 동시대 작가 포송령의 저 괴담집에 나타난 풍속 묘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결말 부분에서는 오로지 <요재지이>에서 가져온 인용문만을 열거함으로써 저 살인 사건을 서술하는 희한한 묘기를 부리기까지 한다. 생전의 월터 벤저민도 순수하게 인용문만 가지고 책을 한 편 쓰고 싶다고 했었다니, 어쩌면 스펜스의 저술 속 한 대목도 그런 구상이 현실화된 한 가지 사례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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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중에 <스즈키 이즈미 SF 선집>이라는 것이 있던데, 생소한 작가라서 누군가 싶어 눌러보니 이미 작고한 70년대 인물이다. 검색해 보니 <여자와 여자의 세상>이라는 선집도 이미 간행되었던 모양인데, 표지만 보면 고양이 이야기 같기도 하고, 제목만 보면 세상 쓸모없는 페미니즘 책이 또 하나 나왔나 싶기도 해서, SF 작가의 책이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생전에는 주목을 받았지만 사후에 한동안 잊혔다가 최근 들어서 재발굴된 모양인데, 이른바 '남자 없는 세계'나 '여성 우월 사회'에 대한 SF 단편이 대부분인 듯하다. 두 권 모두에서 알라딘 미리보기에 나온 대목만 읽어 보면 그냥저냥하고 딱히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겠던데, 작품이 뛰어나다기보다는 일종의 선구자로서의 의의가 더 높이 평가될지도 모르겠다.


아닌 게 아니라 스즈키 이즈미의 이력을 보면 작가 활동은 오히려 부차적이었고, 사진 모델과 영화 배우로도 활약했다고 나온다. 그런데 영화 중 대표작을 보니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라는 것이 있다. 이건 일본 작가 데라야마 슈지의 에세이집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찌어찌 연극과 영화로도 각색했던 모양이고, 스즈키 이즈미는 단역으로 출연한 모양이다.


모델 활동에서는 말 많은 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와 협업했다는 것도 특이하다. 도대체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궁금해서 구글링해 보니 예쁘다기보다는 뭔가 기괴한 인상이다.(화장 탓인가?) 나귀님이 가진 아라키의 책은 국내 간행된 에세이 2권과 영어판 풍속업소 사진집뿐인데, 에세이에는 사진도 수록되었으니, 잘 찾아보면 스즈키 이즈미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지난 주말 사이에는 일본 연예인 미와 아키히로(1935-2026)의 사망 소식이 있었다. 역시나 생소한 인물이어서 누군가 알아보니 1950년대부터 가수와 배우로 다방면에서 활동한 '종합 예술인'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성우로 가장 잘 알려진 모양이다. <원령공주>에서 늑대 두목,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황야의 마녀를 맡았다던가.


가장 특이한 점은 본래 남성이지만 인기를 얻자마자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해서 논란을 일으켰고, 이후 지금까지 남장여자 컨셉으로 활동했다는 점이다.(유튜브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원령공주> 오디션 영상에서도 역시나 여장을 하고 있다). 심지어 미시마 유키오며 데라야마 슈지(또 그 사람이다!)와도 친분이 깊었다고 하니, 이래저래 특이한 사람이다.


그나저나 이쯤 되면 <책을 버리고 거리고 나가자>를 다시 읽어야 하나 싶었다. 지금은 절판되어 중고가도 어마어마하게 올랐으니, 얼른 읽어보고 별 것 아니다 싶으면 내다 파는 게 이익이지 않겠나. 그런데 옥탑방에 올라가 일본 책 쌓아놓은 책더미를 살펴보니, 하필 아래쪽에 깔려있기에 깨끗이 포기하고 도로 내려왔다. 뭐, 어차피 시어서 먹지도 못할 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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