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무려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 하와이대저택의 세네카 편역서를 살펴보다 보니, 언제부턴가 '성공론' 저자들이 이 스토아 철학자의 저서를 앞다투어 이용하고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보통 '인생론'으로 지칭되는 그의 대화편이 섭리, 분노, 행복, 평상심, 시간, 죽음 등의 주제를 다룬다는 점 때문에 자기계발 분야에도 적격이라 여기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세네카의 인기 요인은 그보다 먼저 자기계발 분야에서 인기를 끌었던 벤저민 프랭클린의 경우와도 유사하지 않나 짐작된다. 각종 금언을 창작하고 시간 계획을 세우는 등,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성공한 인물이라는 이유 때문에 각별히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사실 프랭클린은 원래부터 천재라서 성공한 것이지 근면만으로 성공한 것까지는 아니었다.


프랭클린을 좋아해 저서 제목도 <가난한 찰리의 연감>인 투자자 찰리 멍거도 마찬가지인데, 동업자 워런 버핏처럼 원래부터 똑똑한 사람이었으니 성공했을 뿐이다. 그러니 같은 국정교과서로 공부해도 1등과 꼴등이 생기듯, 일반인이 이들의 조언을 마음에 새긴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깐부치킨 좌석에 앉는다고 누구나 젠슨 황이 될 수는 없듯이 말이다.


만약 오늘날의 독자가 세네카에게서 어떤 교훈을 얻어내려 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그의 비참한 최후에서 얻는 반면교사뿐이 아닐까. 그는 뛰어난 철학자였고 정치인이었고, 여러 '대화편'에 드러난 것처럼 내면에서는 갖가지 사색과 통찰이 넘쳐났지만, 부와 권력에 과도하게 집착한 까닭에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의 죽음이야말로 과유불급의 사례이다.


나귀님이 보기에는 차라리 군주를 잘 섬겨 대업을 이루고도 '토사구팽'이란 명언을 남기고 잠적해 천수를 누린 도주공(범려)이 세네카보다 한 수 위인 듯하지만, 주식에서도 고점에서 익절하기는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고들 하니, 빠져나올 때를 아는 것은 물론이고 그런 앎을 서슴없이 실천에 옮기는 것만 해도 예나 지금이나 이미 일반인의 역량을 넘어서는 듯하다.


사실 천병희와 김남우 등의 원전 번역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세네카는 중역의 피해를 종종 입은 작가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심각한 번역서 2종을 소개하자면, 1980년대부터 간행된 범우사의 <행복론>(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저서와 합본되어 지금도 <명상록/행복론>으로 간행 중이다)과 2000년대 들어 간행된 동서문화사의 <세네카 인생론>이 있다.


우선 범우사의 <행복론>은 세네카의 원저가 아니다! 17세기 영국인 로저 레스트레인지(Roger L'estrange, 1616-1704)의 편저 <세네카의 도덕론: 요약본(Seneca's Morals: By Way of Abstract)>(1678)에 수록된 "행복한 삶에 관하여"(Of a Happy Life)를 옮긴 것인데, 편저자의 서문에 따르면 세네카의 여러 저서에 흩어져 있는 내용을 주제별로 재구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세네카의 '대화편' 중에도 "행복한 삶에 관하여"(De Vita Beata)가 있어서 마치 같은 작품이겠거니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두 가지를 비교해 보면, 세네카의 "행복한 삶"은 총28장(미완)인 반면, 레스트레인지의 "행복한 삶"은 총25장이고 내용도 더 많으며, 세네카의 동명 대화편의 내용뿐만 아니라 <도덕 서한>의 내용도 군데군데 조합해 놓았다.


출전 표시가 전무해서 각 문단의 유래를 확인할 수 없다는 가장 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요약본조차도 이미 옛날 책이니 지금에 와서는 고전으로 대접받을 만하지만, 출판사가 오랫동안 독자를 기만했다는 점은 괘씸할 수밖에 없다.(어쩌면 번역자나 출판사는 이 책이 세네카의 온전한 저술까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지 모르지만, 책에는 일언반구도 없다).


다음으로 동서문화사의 <세네카 인생론>이 있는데, 무려 970쪽에 달해 지금까지 나온 세네카 번역서 중 최대 분량이다. 세네카의 대화편 전10편, <도덕 서한집> 전124편 중 65편, <자연의 의문들> 전6편에, 심지어 풍자 산문 "아포콜로킨토시스"와 위작으로 간주된 "불행의 치료에 대하여"까지 들어 있어서, 사실상 희곡을 제외한 그의 작품 대부분을 수록한 셈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다른 동서문화사 번역서와 마찬가지로 일어 중역으로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고유명사부터 "마르쿠스 카토"(Marcus Cato)를 "마르크스 카트", "라엘리우스"(Laelius)를 "라에리우스", 베르길리우스"(Vergilius)를 "웰기리우스"로 틀리게 썼는데, 하나같이 가타가나로 표기된 라틴어를 잘못 옮기는 과정에서 벌어진 전형적인 실수이다.


그런데 이 책의 또 다른 부분에서는 위의 인명이 "마르쿠스 카토"와 "베르길리우스"라고 제대로 표기되어 있으니, 이쯤 되면 번역도 문제지만 편집도 문제임을 짐작하게 된다. 지금은 그나마도 절판되어 '대화편'은 <세네카 인생철학이야기>로 재간행되고, '도덕 서한'은 <세네카 삶의 지혜를 위한 편지>로 재간행되었으나, "자연의 의문들"과 다른 저술은 사라졌다.


C. S. 루이스는 고전 독서에 관한 조언에서 '플라톤 해설서를 읽는 것보다는 플라톤을 읽는 것이 더 쉽다'고 말했다. 세네카도 마찬가지이니, 맥락도 결여되고 왜곡도 의심되는 갖가지 '성공론' 류의 편역서를 읽기보다는 원전 번역서를 읽는 편이 더 유익할 것이다. 약간의 인내와 관심은 필요하겠지만, 그건 하다못해 일일 연속극을 보더라도 필요한 자세 아닐까.


원전 번역서로 추천할 만한 것은 당연히 천병희의 <세네카의 행복론>으로 '대화편' 중 4편의 완역이다. 김남우 등이 옮긴 <세네카의 대화: 인생에 관하여>는 '대화편' 전12(10)편을 한 권으로 완역했다는 점이 장점이다. 다른 원전 번역서도 몇 가지 더 나온 것 같은데 수준이 어떤지는 모르겠다. 이런 몇 가지를 빼면 나머지는 중역본에 편역서라 추천할 수 없겠다. 



[*] 나귀님이 보기에 지금까지 나온 세네카 편역서 중에서 최악의 제목은 <사형당했지만 이 편지는 주고 싶습니다>이다. 언젠가 뉴스에서 최근 출판계에서 몇몇 베스트셀러의 제목을 무작정 따라하는 유행이 있다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그 대표 사례로 들어서 황당하다 싶었는데, 저 제목을 보고 나니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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