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라 베이크웰의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는 후주와 참고문헌을 링크로 대체한 것 때문에 논란이 벌어져서, 현재 기존 판본은 판매가 중지되고 부록을 복원하기 위한 추가 제작이 진행 중인 것으로 짐작된다. 나귀님으로서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조치인데, 뒤늦게 출판사 측의 소개글을 읽어보니 "가격을 크게 낮추고 부피를 가볍게 했다"는 구절이 눈에 띈다.
결국 원서에도 들어 있고, 구판에도 들어 있던 후주와 참고문헌을 굳이 빼버린 것은 가격 인하를 위한 출판사 측의 고심 때문이었던 걸까? 하지만 나귀님이 알기로 일반 단행본 서적의 부록은 전체 쪽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기에 책값을 좌우하는 요소까지는 되지 못하는 듯하니, 출판사의 주장은 뭔가 착오이거나 아니면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서 문득 예전 조지 오웰이 '책값이 비싸서 독서를 못한다'는 통념을 반박하기 위해 직접 계산기를 두들겼던 것이 생각나기에 (결론은 담배보다 책이 더 싸니, 결국 책이 비싸서 안 읽는 게 아니라 읽기 싫어 안 읽는다는 것이었다) 나귀님도 해당 출판사의 신간 중 부록 달린 것 몇 가지를 골라서 면수, 가격, 부록이 차지하는 비율 등을 간단히 계산해 봤다.
1. <아비투스>
372면, 22,000원, 부록(감사의 말, 주석, 참고문헌: 350-372면)
==> 면당 59원, 부록(23면) 1357원(정가의 6%)
2. <공기의 세계>
632쪽, 33,000원, 부록(감사의 글, 참고문헌, 미주: 584-632면)
==> 면당 52원, 부록(49면) 2548원(정가의 7%)
3. <공존한다는 착각>
424면, 23,000원, 부록(주, 참고문헌 및 감사의 말: 410-424면)
==> 면당 54원, 부록(15쪽) 810원(정가의 3%)
4. <지구의 짧은 역사>
312면, 20,000원, 부록(감사의 말, 옮기고 나서, 참고문헌, 그림 출처, 찾아보기: 281-312면)
==> 면당 64원, 부록(32면) 2048원(정가의 10%)
5. <불안사회>
172면, 16,800원, 부록(주, 색인: 162-172면)
==> 면당 97원, 부록(11면) 1067원(정가의 6%)
위의 사례만 보면 책에서 부록의 비율은 대략 6-7% 내외, 아무리 많아야 10% 수준이므로, 종이에 찍건 링크로 대체하건 책값에서 큰 차이는 없을 듯하다.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 신판은 544면, 정가 26,000원, 면당 47원이고, 구판은 648면, 정가 38,000원, 면당 58원에다 부록(등장인물, 감사의 글, 주, 주요 참고도서, 찾아보기)이 120쪽(18%)으로 제법 많다.
신판은 구판의 부록 중 '후주'와 '참고문헌'만 링크했는데, 구판 기준으로는 92면(14%)으로 역시나 제법 많은 편이다. 역산해 보면, 신판에서 링크로 대체된 부분이 추가될 경우, 정가 26,000원에서 3,640원(14%)어치가 늘어나 29,640원이 되지 않을까. 쪽수도 544면에서 632쪽으로 늘어나니, 이쯤 되면 30,000원 이상의 정가를 책정해도 충분히 일리가 있어 보인다.
결국 부록을 링크로 대체하여 인하된 가격이 3,640원쯤이라면 정가 대비로는 적지 않더라도, 독자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조금 '짜치는' 금액이기도 하다. 차라리 화끈하게 10,000원쯤 빼준다면 몰라도, 현재 물가 기준으로 포장 음식 배달비며 저가 커피 한 잔 가격에 해당하는 3,640원을 빼주며 "가격을 크게 낮추"었다는 출판사의 주장은 아무래도 과장 아닐까.
마침 같은 출판사에서 먼저 펴낸 세라 베이크웰의 전작인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들>이 652면에 정가 33,000원이고, 그중 부록(감사의 말, 휴머니즘 선언문, 미주, 그림 출처)이 95면으로 전체의 14%를 차지하고 있으니,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 신판도 후주와 참고문헌을 포함해서 간행했다면 대략 전작과 유사한 분량과 가격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점은 다산초당에서 조만간 간행한다며 한창 북펀드를 진행 중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회고록 <어제의 세계>가 600면에 33,000원인 반면, 지식공작소에서 간행되었던 구판은 분량이 596면으로 비슷한데도 가격은 절반 수준인 18,000원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는 판권 계약비라도 들어가지, 츠바이크는 판권 계약이 없는데도.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에 적용되었던 논리대로라면 <어제의 세계>도 가격을 낮추고 부피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츠바이크 회고록은 오히려 "초판 한정으로 각양장, 금박 등 고급스러운 사양과 디자인을 더해 소장 가치를 높였다"고 주장하니, 세라 베이크웰의 책과는 정반대로 책값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쓴 모양새다.
나귀님 입장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은 출판사에서 정작 가격과 두께, 양장과 금박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는 반면, 막상 책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의 충실성이나 이용의 편의성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는 <싯다르타>의 경우에도 번역본은 많지만, 가격이 싼 책이 더 많이 팔린 것까지는 아니었다.
그러니 정 가격을 내리고 싶었다면, 차라리 "부록"만 인쇄해서 3,640원에 판매하고 "본문"은 링크로 대체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제작비를 권당 26,000원씩 아낄 수 있으니 어마어마한 이득이고, 출판사 측 선전처럼 "전 세계의 인문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이 걸작 논픽션"을 커피 한 잔 값보다 싸게 판매한다면 베스트셀러에 스테디셀러 등극은 따 놓은 당상이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