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에서 한 가지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막말의 부재였다. 거대 양당 후보부터 애시당초 망언집이 하나씩 나올 정도로 이 분야에서는 두드러진 이력을 지닌 사람들이었는데, 그래서 더욱 입조심을 했던 까닭인지 정작 토론회에서는 본격적인 막말이 나오지는 않았고, 엉뚱하게 이준석이 갑툭튀해 부적절한 발언을 내놓는 바람에 비난을 독점하고 말았다.


다만 이준석은 다른 사람의 막말을 가져왔을 뿐이니 일단 독창성 면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발언 상대와 타이밍 모두가 어긋난 까닭에 본인의 성급함과 치졸함만 만천하에 드러냈으니,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자폭이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부정적인 여론만 늘어났고, 두고두고 따라다닐 족쇄를 찼으니 향후 전망도 순탄치 않아 보인다.


그나저나 나귀님이 하나 의아하게 생각했던 점은 이준석의 부적절한 발언을 '성희롱'이라고 단정한 일각의 주장이었다. 물론 내용만 살펴보면 그렇게도 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게 이준석 본인의 주장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즉 당선이 유력해 보이던 다른 후보의 아들로 추정되는 사람의 발언을 인용한 것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게 과연 성희롱일까?


물론 이준석을 두둔할 이유까지는 없는 나귀님이지만, 타인의 성희롱 발언을 인용하는 것조차 성희롱이 된다는 주장은 뭔가 불합리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어 해 보는 말이다. 그렇다고 치면, 이준석의 발언을 재인용한 언론 보도 역시 성희롱이 된다고 봐야 할까? 이때에는 내용의 적절성과 부적절성뿐만 아니라, 발언의 의도와 맥락도 따져봐야 하는 게 아닐까?


마찬가지 논리라면 어떤 창작물의 성폭력 묘사를 언급한 것 자체도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니, 예를 들어 포크너의 소설 <성역>의 줄거리를 자세히 설명하는 나귀님의 글도 결국 2차 가해가 되는 걸까? 또는 (피해자를 폄하할 생각이야 전혀 없지만) 자타가 겪은 성폭력을 고발하는 책을 내놓은 저술가도 일종의 2차 가해를 하는 셈이라고 봐야 하는 걸까?


최근 들어 이른바 '성-인지-감수성'이 강조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언제부턴가 정확한 기준 없이 여혐이다 성폭력이다 여론몰이를 하는 사례가 늘어나다 보니, 오히려 부조리를 낳음으로써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결과가 생기지 않나 하는 의문도 종종 떠오른다. 양치기 소년의 우화에 나오듯, 신중하지 못한 고발은 결국 역풍만 불러올 수 있으니까.


나귀님이 최근의 이런 추세며 사례에 대해서 예민할 수밖에 없는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마침 존 업다이크의 "토끼" 4부작이 완간되었기에 그 내용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 번 써 볼까 싶었는데, 저 미국 작가로 말하자면 노골적인 성행위 묘사가 특징인 풍속 소설로 유명해졌던만큼, 나귀님 글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차마 안 나올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의 말을 인용한 이준석도 욕을 먹는 판이니, 나귀님이 업다이크를 인용했다간 자칫 특검 조사와 관세 협상을 비롯한 각종 이슈를 압도하는 초대형 '게이트'로 발전하지 않을까. 뭐든지 하나 걸리면 작살나는 사회 분위기상, 나귀님은 살처분, 알라딘과 문학동네는 (이왕이면 글항아리도!) 압수 수색, 알라딘 회원들도 참고인으로 줄줄이 소환되지 않겠는가.


<성역> 리뷰는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여차 하면 포크너(Faulkner)의 노벨문학상을 취소하고 포크(fork)도 쓰지 말자는 국민 청원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케이크를 젓가락으로만 집어먹고 스파게티를 숟가락으로만 집어먹는 일이 한두 달쯤 지속되면, 최근 종이 빨대에 들끓었던 여론과도 비슷하게 포크도 포크너도 슬그머니 원래대로 돌아올 것 같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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