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푼도 더도말고 덜도말고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15
제프리 아처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머러스한 제목에 끌려 구입했던 책이다. 그리고 정말 즐겁게 읽었다. 그 자리에서 한권을 다 읽어내려가기는 참 오랫만인 것 같다. 읽고 난후에도 이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저절로 미소짓게 되는, 한편의 잘 짜여진 복수극이다.

그렇지만, 허허;; 이것이 과연 추리물인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거액의 돈을 잃은 네 사람은 좌절하지만 끝까지 주저앉지는 않는다. 나름대로의 재능과 장기를 모아 목적을 달성하는 그 과정에서, 독자는 여타의 추리소설처럼 머리를 쓸 필요가 없다. 그저 주인공들의 행적을 따라가며 통쾌해하고 아슬아슬해하다보면 소설은 기막힌 반전을 남겨주고 끝을 맺는다. (그 반전때문에라도 꼭 추천을 하고 싶은 책이다;;)

...그러고보니 구도가 왠지 환타지 소설과도 비슷하군. 서로 개성이 다른 4명이서 복수를 위해 일행을 이룬후 갖가지 고난뒤에 보스를 물리치고 부귀영화를 얻나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옆마을에서 죽은 사람 - 소년 괴기 시리즈 1
나루시마 유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나루시마 유리의 작품이 늘 그러하듯, 이 단편들 역시 결국은 심리 안에서의 공포감을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다른 공포물처럼 괴이한 생명체나 유혈낭자한 장면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유머러스하게 조용조용 풀어나가는 사건들은, 알고보면 모두 '인간'에서 시작된 업보.

-...출석을 불렀을때 대답하지 않으면 공격한다는거야.

-하지만 그것은 '옆마을'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나 마찬가지지. 설마 나에게도 일어날까...?

표제작인 '옆마을에서 죽은 사람'은 늘 멀게만 느껴졌던 사건들 -살인이라든지, 강간, 유괴와 같은- 보통 쉽게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걸까: 소박한 의문에서 출발한 단편이다. 아무리 가까운 곳에서 일어났다 하더라도 내가 당하지 않으면 그것은 옆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옆마을- 가깝지만 결국은 내가 사는 곳은 아닌 공간. 하지만 그 모호하고도 뚜렷한 경계가 무너질때, 공포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다른 작품들도 정말 모두 읽을만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공포물의 말초적인 자극을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공포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읽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은 만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택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1997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내가 느낀 것은 지독한 씁쓸함뿐이었다. 남성이 여성에 대한 책을 쓰면 이런 결론밖에 나올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무리 여자들이 페미니즘이니 여성 인권이니 해도 이 작가와 같은 남성들이 대부분이라면 별반 가능성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읽는 도중에는 몇 번이나 분노가 치밀었는데 책을 전부 읽고 난 후에는 단지 허탈감만이 남았다. 우리 나라의 누구나가 인정하는 이문열이라는 소설가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당당히 이런 소설을 내놓는 게 당황스러웠고, 그래도 베스트셀러라고 팔리는 우리 사회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이 소설은 조선시대 장씨 부인의 일대기를 일인칭으로 서술하면서 여자로 태어나 가져야할 마땅한 자세를 훈계하고 있다. (그 훈계의 내용이라는 것이 너무나 가부장적이고 전근대적이어서, 읽으면서 참 이문열이라는 사람이 안타까워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문열이란 이름을 믿고 이 소설을 사봤을 사람들이 진심으로 걱정스러워졌다. 내용이 워낙에 졸렬하여 그럴리는 없을거라 생각은 하지만, 만에 하나.. 읽으면서 끄덕거릴 사람이 있을까봐...)

'선택'은 총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처음은 현대 여성에게 장씨 부인이 주는 훈계의 말 (즉, 이문열이 이 시대 여성에게 바라는 점..)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부분은 장씨 부인의 삶을 회고 형식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조금은 특별한 재능을 지녔던 한 여인이 출가 후 남편을 현명하게 내조하고 자식들을 바르게 교육시키며 살아간다는, 평범한 일대기가 교훈적 어조로 씌여져 있다.

장씨 부인은 이러한 삶이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글 전반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시와 글씨에 특출 났던 그녀는 글에 있어서의 성취를 포기하고 현모양처로의 길을 택해 혼례를 올린 후, 시집 간 가문의 한 구성원으로써 헌신할 것을 선택하였다고 했다. 그리고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선택의 정당성을 강조하며 현대 여성들 역시 이러한 선택을 해야 함을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장씨 부인이 한 것은 과연 '선택'이 맞는 것일까? 선택이란 것은 일단 여러 가지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하고, 거기에 자신의 의지가 더해져야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사회적으로 진출할 길이 막힌 여자로 태어난 그녀는 과연 그녀 자신의 의지로 그 길을 선택한 것일까? 여자로 태어난 이상 어쩔 수 없었던 길을 선택이란 이름으로 포장해버린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고, 그렇기에 장씨 부인의 '고심'했다던 선택은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한다. 설득력을 잃은 훈계는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지루함만 줄뿐이다.

또한 장씨 부인의 입을 통해 나타나는, 현대 여성과 페미니즘에 대한 동조하기 힘든 비판은 작가의 감정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사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다같이 져야 하는 짐이라면, 끝내 피할 수 없는 짐이라면 조용히 지고 가는 것도 아름답다.' '여성 해방과 성적인 방종을 혼동하는 논리에 박수를 보내는 남성은 아첨으로밖에 여상의 호감을 살 길이 없는 못난이나 그런 여성들이 많아야만 한몫을 볼 수 잇는 바람둥이 뿐이다.'

'자연에 따르는 것이 선이라는 일반적인 논리로 피해가도,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걸로 미학적인 치장을 해도, 간음은 간음이다. 그보다는 전시대 남성들의 뻔뻔스런 반칙이 오히려 더 정직해 보인다.'

'가사 부담에 대한 너희들의 과격한 요구도 가끔씩은 못마땅하다.'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택을 빙자한 강요이다. 작가가 원하는 여성상을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이 책에서 장씨 부인에게 본받아야 할 점도 분명히 있지만, 그러한 교훈적인 점들은 작가의 경솔하고 균형 잃은 발언에 빛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문열의 소설 '선택'은 나에게 있어 뒷맛이 씁쓸한 지루한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평양 횡단 특급
이영수(듀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 sf장르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축은 휴머니즘이다. 로봇이 주인공이든 기계화된 세상이든간에 결국 궁극적인 결말은 휴머니즘이며 인간에 대한 신뢰이다. 그러나 듀나의 소설집 태평양 횡단 특급은 그 보편화된 특징이자 암묵적인 법칙을 간단히 벗어나 버린다.

그의 소설 안에서 기계들은 인간보다 월등히 아름답고 자연스러우며 위대하다. 그 반면 인간은 자신들의 허상에 총을 쏘는 허깨비같은 존재이며(허깨비 사냥), 어두운 욕망에 자괴감을 느끼는(첼로) 약한 동물이다. 이런 식의 전개는 사실 드문것은 아니다. 그러나 보통의 소설들이 인간의 나약하고 추악한 면을 보여준후 그래도 극복할 희망을 반드시 제시해주는 것에 비해 듀나의 소설은 가차없이 독자의 그러한 기대를 저버린다. 끝은 모호하긴 하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당신들이 기대하는 것은 여기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분명 주목해볼만한 소설이기는 하다. 하지만 역시 나는 이 단편들의 결말이 참 씁쓸하다. 진부하고 관념화된 단어라 해도 기대를 가질 수 있는 희망을 원한다. 소설속에서라도 나는 기대하고 싶은거다, 이 세상에. 낡은 고정관념에 얽매인 인간이라해도 어쩔수 없다. 그게 설령 거짓이라고 해도 보고 싶은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 마법사 9
나루시마 유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이제까지 본 환타지중 가장 수작이다. 스케일은 솔직히 큰 편이라고는 할수 없다. 요새 환타지는 우주를 망라하며 미래를 넘나들잖는가. 소년 마법사는 이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세계를 변혁시키려 하는 것 뿐이다. 적어도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스케일로 승부하는 환타지는 아니다. 그렇다고 그림체가 소름끼칠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물론 내용에 어울리는 분위기의 그림이지만 특출나게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이 작품이 이렇게 사람 마음을 저릿하게 하는 것은, 다른 어떤 환타지보다 점수를 더 주고 싶은 것은- 인간의 심리에 대한 통찰력이 혀를 내두를 정도이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자, 소외된 자, 그 이능력으로 인해 상처입은 자들의 편에 서서, 작가는 진정한 휴머니즘에 대해 묻는다. 인간의 영역이란 무엇인가, 나로 지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결국 나는 살아가도 괜찮은 것일까..

어찌보면 너무나 무거워 잠수해버려야하는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경쾌하게 전개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작가가 그 저편에 희망을 뿌려놓았기 때문이리라. 인간으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끈질긴 소망. 최후까지 짓는 미소.

소년 마법사는 확실히 수작이다. 손이 느린 작가지만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 중단만 하지 말기를. 늘 뒷권이 고픈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