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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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하느님께서 7일째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이날은 쉬셨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화자인 양페이가 이승을 떠나 저승에 도착한 제1일부터 아버지를 만나는 제7일까지의 여정이 펼쳐진다. 입담 좋은 이야기꾼답게 양페이의 출생과 성장은 남다른 서사로 놀람과 감동이 있다. 문장도 재미가 있어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7일 동안 자신의 아내와 아버지 주변 이웃들, 떠들석한 죽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사람들, 죽음을 은폐당한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사연을 펼친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양페이 본인과 아버지의 끈끈한 애정이다. 자신에게 온 아이를 정성으로 키운 아버지의 이야기는 세상의 아름다운 빛을 보여주고 자신을 배신한 아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떠나보내는 것은 양페이의 깊은 인간미를 보여준다.

강제 철거하는 공권력으로 부부는 깔려 죽고 아이만 살아남은 이야기, 산아제한 정책으로 폐기된 아이들, 장기밀매하여 애인의 아이폰을 사주거나 결혼을 위해 신장을 한 청년 이야기 등 하나하나는 중국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반영되었다.

그런데 7일 동안의 이야기가 선적으로 쭉 펼쳐져 있어 창세기의 서문으로 시작한 이야기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의문이 있다. 유골함도 매장지도 없어 화장하지 못하는 영혼들이 모이는 곳에서 양페이의 발걸음은 멈춘다. 제7일째다. 가난도 없고 부유함도 없고 고통도 없고 원수도 원망도 없는 평등한 곳에 도달했다. 베스트 작가의 이야기가 산만하게 펼쳐져 있어 이것저것 보여주며 말하고자 하는 바는 많지만 문학적인 완성도, 응집력은 좀 부족하지 않았는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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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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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삶을 사랑하고 사람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있을 때에 가능하다. 촌마을을 다니며 민요를 채록하고 노인과 처녀, 아이들을 만나 진솔하고 무지하고 애잔한 이야기를 나누는 나는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의 젊은이다. 실컷 낮잠을 자고 쓸데없는 음담패설로 희희닥거려도 시간이 남아돈다. 그런 나에게 푸구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고 공감하여 이야기가 계속 흐르도록 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듣는이를 만나야 생생하게 펼쳐진다. 장단이 싱겁거나 질문의 초점이 빗나가면 이야기는 맥이 끊길지도 모른다. 이야기꾼이 자신의 이야기에 심취하여 몰두하도록 조용히 머물러 주어야 한다. 누군가가 살아온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은 그 사람의 속을 풀어주는 것이기도 하고 인생을 소생시켜 준다.

 

 

2.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푸구이, 어쩌면 한심한 인물이다. 도박으로 홀라당 집안을 말아 먹고 어머니와 아내의 인내가 없었다면 어찌 살아있기라도 했을까 싶다. 하지만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거기서부터 묵묵히 농부로서 밭 가는 데 열심을 부리고 처자식의 소중함을 깨달아 아끼며 묵묵히 살았다. 때로는 행운도 따라주어 잃을 뻔한 목숨을 유지했다. 어찌 회한이 없었을까. 무지하게 슬픈 인생사를 가볍게 풀어간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고 오늘도 늙은 소 푸구이와 밭을 간다. 노인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함으로써 남은 삶을 살아갈 힘을 얻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게 위대한 것이라면 추천의 말을 쓴 소설가 '오정희'의 문장에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런데 푸구이의 삶을 가련하게 들어줄 수는 있어도 '잘 살았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정체성도 없이 목적한 바도 없이 세상의 흐름대로 흔들리며 살았던 인물이기에 동정은 하지만 긍정은 못한다. 이제 그는  부모와 아내, 자식 둘에, 사위와 손자의 무덤을 앞에 놓고 있다. 그들을 그리워하며 늙은소와 함께 이름을 부른다. 그리움만 가득하다.

 

 

3. 작가의 의도

 

" 사람은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가지,

그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1993년 소설이 발표될 당시 작가는 30대 초반이었다. 글의 서문을 보니 작가의 패기가 넘친다.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세상을 동정의 눈으로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꽤 인상적이다. 중국의 복잡했던 현대를 관통하는 푸구이의 삶에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담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따지고 보면 현대사의 사건들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며 비판적 시각을 녹여 담았지만 고발하거나 폭로하지 않고 초연하게 보여준다. 이야기가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고 문체가 개성적이며 유쾌하다. 이야기에 빨려든다는 걸 실감할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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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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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단명할 작가라는 비수 같은 말에도 개의치 말고 캐릭터에 집중하여 살려내고 느리더라도 규칙적으로 소설을 쓰다보면 소설가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소설 쓰는 사람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소설을 한 번이라도 써 본 사람에게는 실용서이며  소설쓰기 안내서라 할 수 있다. 소설을 쓰기 위한 자세와 쓸 때의 구성 방법, 완성 후의 고찰, 소설 쓰기의 기초에서 소설 존재의 이유와 미래까지를 총망라한 글이다. 글이란 게 다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김연수의 글은 처음에는 글이 좀 산만하다 싶다가 한 번 더 읽으면 이 말을 하기 위해 이렇게 둘러왔는가 싶다가 또 읽다 보면 글 구성의 촘촘함과 핍진함에 깜짝 놀란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닿는 감동의 파고가 꽤 높다.

소설작법을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쓸 수 있는가 . 그가 그토록 문장에 천착했다는데 그런 것의 결실이 여기에 있는가 싶다. 하나에 몰두하여 하나의 밀알이 되고 밀알이 싹을 틔워 독자들을 끌어들이고 그 중에 소설가의 꿈을 꾸는 사람은 그의 격려와 이끎으로 새로운 길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뛰다가 힘들면 걷고 그렇게 반복하다가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사실, 이 평범한 사실을 이야기한다. 글을 쓰다 보면 소설가가 되어 있고 비판이나 조롱으로 힘들지라도 또 쓰다보면 자신만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고 용기를 내 보라고 한다.

늘 스스로에게 이야기한다. 정신줄 놓지 말고 똑똑하게 살아야 헛되지 않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아무런 목적 없이 불혹되는 것 말고 미혹되어 새롭게 살아 보는, 자신을 어딘가에 던져 넣는 훈련도 필요하다. 스스로를 거기서 단련시킨다면 그렇게 돌고돌다가 어떤 식으로든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작가의 말처럼 캐릭터 중심의 삶을 살아내어 자신의 의지를 불태우는 기쁨,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우리가 소망하는 일들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노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는 온종일 계속해서 소설에 대해 생각한다. 끈질기게 노력해야 한다. 그의 소설처럼 까다로울 정도의 적확성이 나타날 때까지 소설을 생각한다. 소설가의 삶의 태도는 우리가 좋아하는 다른 것에도 해당한다. 이 글은 소설가의 일을 통해 살아가는 일을 설명한다. 무언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소통하고자 한다면 가끔씩 밀어닥치는 절망에 쉽게 무릎 꿇지 않을 것.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 읽고 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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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철학수업 -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5
이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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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으로 태어나 살면서 개인의 '행복'을 꿈꾼다. 그런데 그 행복이라는 것이  혼자서 가능한 게 아니다. 행복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어야 하고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행복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데서 온다. 그 긍정은 자유로운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진경의 글은 '자유'에 대해서 조근조근 감동적으로 서술한다. 자신의 깊은 좌절의 경험에서 끌어올린 통찰을 담았다.

 

자유는 지금 자신이 밟은 그  땅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의 지금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원하는 삶을 살되, 자신의 의지나 신념도 때로는 내려놓고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는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행복'을 노래하면서도 '행복'의 모양이 어떤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작가는 그러한 나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쉽게 순종하고 굴복하고 좌절하고 머물고 돌아가고 합리화하고 부러워하며 망설이는 나에게 노예로 살지 말라고 한다. 목숨 걸지 않아도 되니 한 번만 용기를 내 보라고 한다. 지금 여기서 다시 시작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자신을 신뢰하고 긍정하며 벽을 타고 물을 넘어 새로운 사람으로서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며 응원하고 있다.

굉장히 흥분되는 독서의 과정을 선물로 받았다. 선물을 받고 보니 웃음이 난다. 웃자 웃자 한 번 더 웃자구나. 매혹을 주는 책은 신체의 감각을 바꿀 것이다. 통째로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구절구절들을 새겨놓고 싶다. 작가의 진정성이 담뿍 담긴 좋은 책이다. 삶에 대한 냉철한 애정이 가득하다.

 

책의 구성이 4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머리말과 들어가며 부분에 이미 내용을 총정리 되어있다. 책의 마직막 장을 읽고 다시 맨 앞 장을 펼치니 한 권이 완벽하고 촘촘히 쓰여졌구나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지금의 자기 자리에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지침을 알려 주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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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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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읽는데 시를 읽는 듯하다.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 깊어서 놓칠 게 없다. 어두운 역사의 긴 밤을 이렇게 아프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인간에 대한 절망과 희망을 함께 노래할 수 있다는 데 대해 그를 최고의 작가, 이야기꾼이라 칭하고 싶다.

주인공 김해연의 설정도 좋다. 1930년대 일제가 침략 전쟁을 위해 만주에 철도를 건설하게 되는데 그 직원으로 등장하는 김해연은 평온했다. 안정적인 직업에 연애를 하고 민족적인 정체성의 필요성도 없이 그냥 살아가면 되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항일하지 않는 등장인물은 친일이다. 일본인의 하수로 일본에 부역하면서 개인으로서 안락을 도모한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그런게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그렇게 살면 안되는 거라서 김해연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휩쓸리게 된다. 그것은 순전히 사랑 때문이었다. 이십대의 첫사랑은 진짜 끝까지 가보는 사랑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지 알게 되는 사랑 때문이었다. 처음에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영국더기에서 가장 평화로운 연애를 하고 정희와 결혼하게 될 줄만 알았다. 그러나 김해연의 미래는 예정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때는 전쟁과 이념의 갈등이 극화되는 시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씻지 못할 상처를 지닐 수밖에 없다. 개인의 판단과 선택과 상관없이 역사라는 파도는 사람들을 어디로 끌고가 어떤 계곡에 버려둘지 예측할 수 없다. 이세상 사람이 아닌 정희는 김해연이 살아온 삶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녀에 대해 더욱 알고 싶었던 김해연은 정희가 목을 매었던 나무에 자신을 맡긴다. 자신을 완전하게 내던졌던 그 순간에 그는 다시 태어났다. 이런 장면이 굉장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삶이 끝나고 새로운 하나가 탄생한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세상이어야 하니까.

두 번째 삶은 여옥이와 함께한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이정희에 대한 의문들,  그리고 박길룡과 민생단의 진실은 밝혀진다.  사상과 이념이 이데올로기화 되어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평등세상은 아랑곳 없이 서로를 의심하며 죽인다. 1932년부터 1936년까지 항일투쟁을 하여 죽은 조직원 수보다 아무런 근거 없는 진술로 죽은 조직원 수가 더 많다고 한다. 김해연 역시 조직원이 되어 민생단으로 의심 받지만 결국에는 살아남는다. 여옥이라는 인물의 생생함은 김해연을 살게 한다. 새로운 사랑은 완전히 다른 희망을 낳았다. 그것은 이정희를 죽게한 첩보원이었던 최도식이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살아가도록 죽이지 않는 것, 이정희가 목숨을 걸고 살리고 싶었던 사람은 김해연 자신이었다는 것.

소설의 문장뿐 아니라 캐릭터와 구성이 좋다. 그냥 온통 피를 말리면서 썼다는 생각이 든다. 민생단 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김연수의 소설은 한 번만 읽어서는 안 되고 두 번은 읽어야 이해된다. 소설을 공부하듯이 읽어야 한다. 김연수의 소설이 대부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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