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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을 읽는데 시를 읽는 듯하다.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 깊어서 놓칠 게 없다. 어두운 역사의 긴 밤을 이렇게 아프고 아름답게 표현하고 인간에 대한 절망과 희망을 함께 노래할 수 있다는 데 대해 그를 최고의 작가, 이야기꾼이라 칭하고 싶다.
주인공 김해연의 설정도 좋다. 1930년대 일제가 침략 전쟁을 위해 만주에 철도를 건설하게 되는데 그 직원으로 등장하는 김해연은 평온했다. 안정적인 직업에 연애를 하고 민족적인 정체성의 필요성도 없이 그냥 살아가면 되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항일하지 않는 등장인물은 친일이다. 일본인의 하수로 일본에 부역하면서 개인으로서 안락을 도모한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그런게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그렇게 살면 안되는 거라서 김해연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휩쓸리게 된다. 그것은 순전히 사랑 때문이었다. 이십대의 첫사랑은 진짜 끝까지 가보는 사랑이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지 알게 되는 사랑 때문이었다. 처음에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영국더기에서 가장 평화로운 연애를 하고 정희와 결혼하게 될 줄만 알았다. 그러나 김해연의 미래는 예정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때는 전쟁과 이념의 갈등이 극화되는 시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씻지 못할 상처를 지닐 수밖에 없다. 개인의 판단과 선택과 상관없이 역사라는 파도는 사람들을 어디로 끌고가 어떤 계곡에 버려둘지 예측할 수 없다. 이세상 사람이 아닌 정희는 김해연이 살아온 삶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고 그녀에 대해 더욱 알고 싶었던 김해연은 정희가 목을 매었던 나무에 자신을 맡긴다. 자신을 완전하게 내던졌던 그 순간에 그는 다시 태어났다. 이런 장면이 굉장했다고 생각한다. 하나의 삶이 끝나고 새로운 하나가 탄생한다면 그건 완전히 다른 세상이어야 하니까.
두 번째 삶은 여옥이와 함께한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이정희에 대한 의문들, 그리고 박길룡과 민생단의 진실은 밝혀진다. 사상과 이념이 이데올로기화 되어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평등세상은 아랑곳 없이 서로를 의심하며 죽인다. 1932년부터 1936년까지 항일투쟁을 하여 죽은 조직원 수보다 아무런 근거 없는 진술로 죽은 조직원 수가 더 많다고 한다. 김해연 역시 조직원이 되어 민생단으로 의심 받지만 결국에는 살아남는다. 여옥이라는 인물의 생생함은 김해연을 살게 한다. 새로운 사랑은 완전히 다른 희망을 낳았다. 그것은 이정희를 죽게한 첩보원이었던 최도식이 아이들의 아버지로서 살아가도록 죽이지 않는 것, 이정희가 목숨을 걸고 살리고 싶었던 사람은 김해연 자신이었다는 것.
소설의 문장뿐 아니라 캐릭터와 구성이 좋다. 그냥 온통 피를 말리면서 썼다는 생각이 든다. 민생단 의 아픈 역사를 이야기하면서도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김연수의 소설은 한 번만 읽어서는 안 되고 두 번은 읽어야 이해된다. 소설을 공부하듯이 읽어야 한다. 김연수의 소설이 대부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