댈러웨이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최애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이나 경제학과 같은 수준 높은 인문서가 아니라 버지니아울프의 '소설'을 읽는다. 이 소설을 읽으며 소설, 특히 우리가 명명한 '고전'을 읽는 행위가 노동 행위라는 생각을 했다. 노동은 생활의 유지를 위해 특정한 대상에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행하는 활동을 가리키는데 '델러웨이 부인'을 읽으면서 독자는 적정량의 노동을 경험해야만 소설 읽기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잠깐 한눈을 팔거나 지루한 끝에 몇 장을 넘기면 런던의 거리에 갑자기 등장한 낯선 인물들에게 어색한 인사를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다. 찬찬히 인내심으로 읽다 보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독한 내면을 마주할 수 있다. 이것이 노동을 통해 마침내 얻게 되는 결과물이다.

 

그녀 -델러웨이부인 -가 걷는다. 웨스터민스터에서 빅토리아 거리, 피카딜리를 지나 본드 스트리트에 있는 꽃집을 향해 경쾌한 발걸음을 뗀다. 걷는다는 행위는 살아있는 즐거움을 만끽한다는것이고, 삶을 향해 힘차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는 표현이다. 때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이고 스페인 독감의 유행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은 1920년대 초반이다. 클라리사 델레웨이 역시 스페인 독감을 앓았고 그 후유증으로 몸은 연약해지고 얼굴은 창백하다. 그럼에도 살아남았기에 지금 이 순간, 여기, 자신의 시선 안에 머무는 사람들이 모두 소중하다. 길을 걸으며 아는 사람을 만나고 모르는  사람을 스치고 사물과도 관계한다. 그런 사람들과  사물들은 서로의 일부로서 거기에 존재한다. 영국의 최고위층인 여왕 또는 수상의 행차와 일상은 런던의 빈민층부터 귀족 계급층까지 고르게 관심을 받는다. 런던의 사람들은 이런 뭔가를 공유하며 함께 존재한다. 하지만 델러웨이 부인이 무조건 삶을 긍정하지는 못한다. 그 모든 다가오는 것들의 연결은 아주 약하고 모두들 각자 자신만의 생활과 생각으로 하루를 꾸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문득 불어오는 바람 따라 뻥 뚫린 가슴에 차오르는 공허함. 클라리사는 오찬에 초대 받지 못했고 아름다운 과거는 지나가 버렸다. 젊은 시절 함께했던 피터월시와 샐리시튼도 기억 속에서만 아름다울 뿐, 새롭게 만난 지금은 어색하기만하다. 서로에게 가닿지 못하고 흩어진다. 마치 빅벤의 종소리가 런던 전역에 울려 퍼지며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여운만 남기고 사라지듯이. 

 

시간은 흐른다. 런던의 시계 빅벤이 30분마다 소리를 내어 분명한 시각을 알려준다. 그리고 바깥으로 흐르는 시간은 인물들의 시간을 과거로 이끈다.

 

또 다른 인물 샙티머스 워렌 스미스는 전쟁의 상흔으로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있다. 부모와 함께하던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온 그는 수많은 스미스 씨들에게 묻혀서 익명의 존재가 되었다. 런던에서 부동산을 하는 브루어 씨에게 능력을 인정 받아 도시에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전쟁이라는 예기치 못한 역사의 강물은 그의 인생을 바꿔 버렸다. 전선에서 가장 가까웠고 서로 의지했던 동료의 죽음은 삶에 대한 비관이 아니라  더할 수 없는 삶의 무의미와 무감각한 상태로 그를 내던졌다. 그는 이 삶을 견딜 수 없다. 의사들의 진단과 충고조차 가식으로 느껴진다.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한 셉티머스는 자신의 창문에서 떨어져 삶을 마감한다. 소설은 인물들의 시선을 교차하고 내면을 비추면서 불붙은 폭탄을 돌리듯이 바쁘게 이런저런 인물들의 나레이션 - 내면 들여다 보기 -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마치 클라리사 델러웨이 부인이 삶을 향해 걸어가고 셉티머스가 죽음을 향해 목숨을 던지듯이 밝음과 어둠을 교차한다. 생과 사의 그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파도처럼 밀려갔다 밀물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우리의 하루, 우리의 일생처럼 말이다.

 

클라리사의 파티는 성사되었고 예전의 친구들은 클라리사의 집에서 담소를 나눈다. 그들의 대화가 아름답지만은 않았으나 삶을 향해 꽃을 바치고 파티를 여는 클라리사의 모습은 여주인답게 여유롭고 온화하다. 파티는 끝나가고 사람들은 떠나고 방은 차츰 비어간다. 그렇게 다들  자기만의 방을 찾아 각각 사라진다.

그는 생각했다. 자기 자신을 만들어 내고, 여자를 만들어 내고, 짜릿한 재미도, 그보다 더한 것도 만들어 내는 거지. 이상한 일이지만, 사실이 그런 걸. 이 모든 건 아무와도 나눌 수가 없어. - P75

이런 세상에 자식을 낳을 수는 없었다. 고통을 영속시킬 수도 없고 이 탐욕스러운 짐승들, 지속적인 감정이라고는 없고 변덕과 허영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짐승들의 자손을 늘릴 수도 없다. - P120

부모가 손에 쥐어 준 이 인생이라는 것을 끝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 평온하게 지니고 가야 한다는 것에 덮쳐 오는 무력감.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도 끔찍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 P241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분홍하트 2021-01-31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버니지아 울프 오랜만에 만나네요^^
‘기억 속에서만 아름다울 뿐 새로 만난 지금은 어색하기만 하다‘라는 말이 와 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