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깨칠 뻔하였다
김영민 지음 / 늘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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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그의 이국적인 아득한 세계로 걸었다. 그가 천착했던 깊이만큼 길은 복잡했고 나는 마치 미로에 갇혀 버린 듯했다. 한 세상을 날아오르는 도약 없이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싶었으나 몸을 멈추고 호흡을 고르며 끄을어 보니 미로는 흐물거려 사라지고 아득한 곳이 펼쳐지는 듯했다. 이 아득한 곳을 여섯 번 돌면, 이 글을 여섯 번 펼쳐 읽으면 차마, 깨칠 뻔하였다. 책의 제목으로 사용된 '차마'는 '애틋하고 안타까워서 감히'라는 뜻으로 사용되어 주로 부정문과 의문문에서 쓰인다. 그가 말하길 '부사'는 주어의 복심(腹心) 이라는데 차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그의 복심은 무엇이었을까. 천년(千年)을 격(隔)하였지만 문득 알 것 같은, 어쩌면---단 번에 알아 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금세('금새'라고 표기된 부분이 거슬렸지만)말이다.


'천 권의 책을 쓸 수 있으되 쓰지 않기로 했다'라는 서문은 그의 다른 책 <공부론> 서문을 아포리즘화 한 것으로 생각된다. 알되 묵히고 당기되 쏘지 않으며 의도와 실천 사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간다는 그의 자세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상상한다. 그리고 몸을 변화시킨다. 행지(行知) - 수행을 통해 진정한 앎에 도달한다. 또 좋아하고 미워하는 사사로운 인정(人情)에 얽매이지 않음으로 더 큰 신뢰를 구축하고 세상의 모든 선생들로부터 배우며 알면서 모른 체할 수 있는 깜냥을 키운다. 그를 '철학자'라는 세 글자로만 소개해 놓았기에 잠깐 정보의 불친절함을 투덜대기도 하였으나 글을 접하고 나니 그것으로 충분했음을 깨닫는다. 


닷푼의 영혼이지만 무거운 책임감으로 삶을 짊어질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살았다고 할 수 있고, 장도(長途)를 기약하며 높이 오른 먼 길에서 타인을 신뢰하는 태도로 일관할 수 있어야 가치가 있으며, 사람 속에서 절망하지만 끝내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되고, 끝내 몇몇의 사람을 남기고서야 글은 마무리 된다. 글을 통해 얻게 되는 단독자적 경험, 상달(上達) 속에 허용된 무심의 순간에 잠깐 정지하였다면 충일하다.


그의 시적인 문장은 죽음을 떠올리게 하여 삶을 비추고, 깨달음을 주는 산문은 삶을 더욱 공고하게 하며 그의 탁월한 시선은 글 읽는 맛을 살린다. 적확한 단어의 선택에 눈이 동그래지고 신선한 문장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의 글 운용은 질투가 날 정도로 견고하다. 그가 소개한 신상병의 아득한 눈빛을 마주한 느낌이다. 독자 파란여우님의 '한국의 독자는 김영민 선생 책을 읽은 독자와 읽지 않은 독자로 갈린다'라는 소개 문장을 보니 이제 나는 그의 책을 읽은 독자가 되는가 싶어 내심 뿌듯하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리웠던 이를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2018년 여름날 세상과 이별한 그 이름 노. 회. 찬. - 당신만의 염치(廉恥)로 지금도 안녕하시길 나 역시 바란다.


아, 그의 아득한 문장 속으로 걸어가 깨칠 뻔한다면, 그 누구라도, 당신도, 그리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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