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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저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밤은 독특한 시간이다.
하루를 정리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말은 너무 뻔하기만 말일 터이다. 밤은 에리처럼 자기 자신에게 깊이 침전할 수 있는 시간이면서, 마리처럼 충분히 방황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밤이라는 시간은 일상생활이라는 틀을 깨주어 우리는 술에 취하듯 밤에 취한다. 우리는 낮에 할 수 없는 말을 밤에는 할 수 있고, 낮에 할 수 없는 일을 밤에는 할 수 있다. 그리고 낮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밤에 만나곤 한다. 그 말과 일, 그 사람들이 즐겁고 설레는 것이 될 수 있고, 더럽고 암울하고 피하고 싶은 일일 수 있다. 이러한 양면성 때문에 밤은 더욱 매혹적이다.
밤에 충분히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움직였던 마리는 새벽녘이 되는 시간 집으로 돌아와 에리 곁에 드러누워 달콤한 잠을 청한다. 결국 밤이 아무리 매혹적이어도 잠과 꿈과 다가올 새벽을 포기해선 안되는 것일터이다.
이 소설은 하나의 이야기를 전하려기 보다는 밤의 다양한 장면과 의미들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덧. 카메라 앵글이 장면을 포착하듯이 시점을 이동시키는 것과 시점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특이했다. 이러한 시점이 소설에 어떤 효과를 내는지 이야기하는 건 내 분야가 아니므로 패스. 그러나 문학에 조예가 깊은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싶긴 하다.
덧2. 이 책에 남겨진 다른 사람들의 메모는 하루키가 갈수록 상징에 집착하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고 하는데, 원래 하루키는 상징과 환상과 상상을 즐겨 사용하던 작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나도 이해할 수 없는 몇몇 상징과 비유가 있긴 하다.
덧3. 지나친 칭찬은 지나친 꾸중처럼 한 아이의 자아를 완전히 파괴해버린다. 그다지 많은 칭찬을 받으면서 자라지 못한 나는 종종 그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곤 했었는데, 오히려 이러한 나의 성장과정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