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
박영숙 지음 / 알마 / 2006년 9월
절판


우리 집엔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일이 따로 있지 않다. 누구나 밥, 청소, 빨래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여긴다. 고단한 부모 노릇을 떠안기 전에 한번 돌아볼 일이다. 따뜻하게 먹이고 재우며 하루하루 자라는 걸 보면서 행복해하는 것, 그래서 자기가 소중한 존재라는 걸 알게 해주고 힘들 대 기댈 언덕이 되어주는 것, 그게 부모가 있어야 할 자리다. 그렇게 세상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얻고 나면 아이들은 뭐든 제 힘으로 배우고 저절로 자란다. -20쪽

몇 해 전 ‘늦게 피어도 아름다운 꽃’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국제유아교육심포지엄에서 성공회대 고병헌 교수는 ‘교육은 뒤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다. 아이들은 눈 앞에 놓고 가르치는 걸 배우는 게 아니라 뒤에서 따라 하며 배운다는 말이다. -33쪽

"교육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훌륭한 교사였던가!"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나크가 『소설처럼』(문학과지성사)에서 한 말이다. 학교 선생님이기도 한 지은이는 ‘책 읽기에 대한 열 가지 권리’를 선언한다.
‘책을 읽지 않을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다시 읽을 권리,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마음대로 상상하며 빠져들 권리(『소설처럼』에서는 ’보봐리즘을 누릴 권리‘라고 옮겼다),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59쪽

아이 적성을 조기에 찾아내 단계에 맞춰 가르치려고 애쓰기에 앞서 어른들이 아이와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배워야 한다. 늘 가까이에서 아이들 세계를 들여다보고 바라보며 섣불리 끼어들지 않으려는 노력도 들여야 한다. -106쪽

사랑을 받아본 아이가 남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이는 그렇게 배운다. 존중받고 배려를 받아본 아이가 남에게도 그렇게 할 줄 안다. -111쪽

아이들은 그렇게 챙겨줄 게 많은 응석쟁이 어른들 대문에 느티나무에서 자기들이 할 몫이 많다고 여긴다. 서로 마음을 살피며 이야기 동무도 되어주고 일거리도 거들면서 동생들에 어른들까지 돌본다. -120쪽

어른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나는 맨 먼저 너그러움을 꼽는다. 아이가 왜 맘이 좋지 않은지, 왜 못마땅한 행동을 하는지 살피면서 어른도 제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들도 어른 마음을 헤아릴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더할 나위없이 값진 진짜 용기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 앞에서 아이들은 놀라울 만큼 너그러워진다. 돌보는 어른이 편안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편안해진다. 어떻게 편안해질 수 있겠느냐고. 아마 그 답은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첫째, 어른 몫을 해야 한다는 지나친 부담을 벗어버리는 것. 둘째, 아이가 어른스럽길 바라는 마음을 접는 것. -122쪽

아이들은 자상하게 챙겨주고 양보하는 사라보다 저희를 제치고 먼저 하겠다고 나서고 이겼다고 좋아라 하고 때로는 아이들을 골탕 먹이기도 하는 아줌마를 더 좋아했다. -132쪽

도널드 위니컷은 『박탈과 비행』(한국심리치료연구소)에서 물건을 훔치거나 거짓말을 하는 반사회적 행동이 ‘잃어버린 환경’을 되찾으려는 반응이라고 했다. 희망을 보여주는 건설적인 충동이라고. -148쪽

‘사람이 사람에게 뭐 그리 해줄 수 있는 게 있겠나.’ 아이들을 만나면서 개달은 거라곤 그것 뿐이다. 그럼 왜 끈을 놓지 못하느냐고? 우리도 알지 못한다. 누가 그 답을 알지도 모르겠다. 그저, 자꾸 귓가에 윙윙대는 한마디 때문이라는 것밖에. ‘비빌 언덕’-151쪽

칭찬이 아이를 키운다면서 자꾸 칭찬할 상황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너무 쉬 칭찬을 하다 보면 도리어 아이들을 옭아 맬 수 있다. 넌 원래 잘할 수 있는 아이라고 용기를 북돋운다는 것이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해도 될까? 실수하지 않을까? 언제라도 돌변한 어른들 표정을 보게 될까봐 겁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4쪽

똑같이 실패를 해도 눈에 띄게 자신감을 잃는 아이와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는 아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실패가 그저 배우고 자라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실패를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니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를 곧 자기가 무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여기면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모험을 할 수 없는 건 말할 나위도 없다. -186쪽

칭찬도 좀 구체적이면 좋겠다. 아이 그림을 보고 무조건 잘 그렸다고만 할 게 아니라 그 그림에 진짜 관심을 가져보자는 말이다. -187쪽

어른들이 아이들 앞에만 서면 잔득 힘이 들어가는 건 왜일까? 그건 아마도 뭔가 해줘야 하고 가르쳐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될 것이다. 아무도 꼭 그래야 한다고 시키지 않았고 아이가 그걸 바라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부담을 떠안고 버거워한다. -201쪽

아이들은 이다음에 뭐가 되기 위한 훈련이라는 핑계로 함부로 다루어져도 괜찮은 존재가 아니다. 무엇이 되고 난 ‘이다음’만이 아니라 숨 쉬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느끼고 배우고 누려야 하는 소중한 내 삶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최고가 되거나 부모보다 나은 삶을 살기에 앞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사랑받으면 좋겠다. -202쪽

몇 해를 지내면서 도서관 약발에 ‘이중생활’이라는 말까지 더해졌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이야기 나눌 때는 느티나무 생각이 옳다고 끄덕이면서도 집으로 돌아가서는 또 다르게 산다는 말이다.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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