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밤이다." 신지가 말했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깊은 산속이라도 이렇게 무겁지 않지. 마치 꿈틀거리는 것 같아." "짓뭉개질 것 같아." ..."이런 자연 속에서는 인간 따윈 밋밋한 알몸으로 겁에 질려 있는 힘없는 존재란 생각이 절로 들지. 표범이나 원숭이, 이름 모를 식물들과 이상한 벌레들이 오히려 생기발랄하게 보이고 말이야. 전혀 상대가 안 되는 것 같아." ...나는 이야기하면서 남미의 문학을 생각했다...문장은 물론 그 전체의 분위기에 당돌하고 야만적인 생명력이 스며 있고, 아름다움과 생명에 관해서는 살인적인 힘마저 인정하고 있는 듯 보였다...무엇이든 인간의 이성으로 저울질하지 않는 그 힘을 남자든 여자든 대지에서 한껏 빨아들려, 치열한 생명의 꽃을 피우고 있다. 이 무수한 기척을 뒤죽박죽 품은 짙은 어둠, 정글에서 날아오는 숨이 탁 막힐 듯 비릿한 공기, 아마도 존재하리라,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무시무시한 색채의 정령들이. -157~159쪽
엄격한 자연과 정치적인 역학 관계에서 초래된 피비린내 나는 비극으로 점철된 땅에서는, 짙푸른 하늘에 콘도르가 날고 생명의 지독한 냄새가 충만한 이 공간에서는, 흐름에 자신을 맡기든지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강렬한 하나의 힘을 가지려 애쓰든지 둘 중의 하나밖에 없으리라.-161쪽
살다가 느끼는 쓸쓸함이란 그 곰 인형의 뒷모습 같은 것이어서 남이 보면 가슴이 메는 듯해도, 곰 인형은 설레는 기분으로 창밖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았을 뿐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아름다움에 환희를 느꼈을지도 모르고. 아마도 그날 아침 가장 외로웠던 것은 곰인형에 얼굴을 묻고 잠들었던 내 마음이리라. 부모의 부모가 죽고, 언젠가는 부모도 죽고 자신도 죽는 그런 인생의 진실이, 영원히 지속되는 어린애만의 꿈의 세계에 살며시 그 살을 맞대어 왔고, 그 기척에 한없는 무엇을 느꼈던 것이리라-168쪽
몸도 얼굴도 햇볕에 타 뜨거운데 에어컨 덕분에 표면만 싸늘하고, 운전사는 쉴 새 없이 마테 차를 마셔대고, 스페인 말로 다른 자동차에 욕설을 퍼붓고, 신지는 잠에 빠져 있고, 그리고 나는 으스스할 정도로 짙푸른 정글로 기우는 새빨간 저녁 해를 보고 있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빨강과 분홍 빛깔, 구름에 반사되어 아찔한 광경을 펼치는 세계. 절대 지치는 일 없이, 세계는 매일 전개된다. 이 광경을 몇 번밖에 볼 수 없는 내 생명의 허망함을 저주했다. 그 정도로, 숨을 삼킬만큼 아름다었다. 이 광경을 매일 볼 수 있다면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공포도 조금은 희석될 것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176쪽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인상적이었던 음료는 서브마리노. 뜨거운 우유에 곁들여 나오는 좀 독특한 초콜릿을 녹여 마시는, 핫 초콜릿 같은 것인데 묘한 맛이 납니다. - 작가의 말 중에서-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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