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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티 인문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옷 문화사 ㅣ 지식여행자 10
요네하라 마리 지음, 노재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오늘
당신의 빤쮸 색깔은 몬가요?
제가
살포시 웃으면서 여러분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절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누구랑 같이 사러
가기도 애매하고, 혼자 갔다한들, 입어보고(?) 사기에도 애매한 패션의 마침표, 속옷! 오늘은 뻔뻔하게 속옷 이야기를 같이 해볼까 합니다.
누구랑? 바로 요네하라 마리여사랑 함께요^^ 폴란드에
화학과
물리학의 대가인 퀴리부인, 마리여사가 있다면, 일본에는 에세이와 통역계의 대가인 요네하라 마리여사가 있습니다. 작년에
<수컷은 필요없어>를 통해 알게 된 그녀는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러시아통역사이자 작가입니다. 어릴 때,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체코의 소비에트학교를 다녔고, 일본에 다시 돌아와 공산당에 가입하고 도쿄 외국어대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합니다. '일본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러시아인이면서 러시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일본인'으로 알려진 그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개와 고양이를 무척 좋아했고요. '밥을 빨리
먹는다고 참견하는 이는 있어도, 책을 빨리 읽는다고 참견하는 이는 없기에 하루 평균 일곱 권씩 읽었다'는 다독가이며, 세계의 맛있는 음식은 거의
다 먹어보았다는 욕심쟁이미식가였고, 강의와 방송, 작가생활을 하면서 30여권의 책을 낸 에너자이저입니다. 덧붙여서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고종석과 최성일이 팬을 자처할 정도로 매니아층이 두터운 문필가이기도 하지요.
이
책<팬티 인문학>은 잡지 ' 치쿠마'에
연재되던 글을 수정하여 단행본으로 낸 것입니다. 그녀가 악성 난소암으로 죽기 1년전에 출판되었죠. '이 속옷 이야기에 모든 인생을
걸고싶었으나 시간이 많지 않아서 일정 정도 미완'이라며 아쉬워하는 그녀의 에필로그는 가슴이 짠해집니다. 그래서인지 초반의 가볍고 경쾌한 에세이가
후반부로 가다보면 스케일이 커지고 역사와 문화,세계사를 아우르는 대 서사시로 변모합니다. 우선 표지를 한번 보시지요. 저 밑의 어르신은 아마도
레닌아저씨인 것 같은데 팬티를 입으신 모습이 비장하시네요.
볼세비키혁명의
아버지인 레닌이 표지에 나온 것처럼 이 책<팬티 인문학>은 일본과 러시아의 속옷에 얽힌 풍속과 역사를 주로 다룹니다.
그외에도 인류 최초의 아담의
팬티,기독교 예수의 팬티, 팬티를 입지
않고 볼 일보고 휴지도 쓰지않았던 100년전의 러시아, 민족의상을 입을 때에는 속에 아무 것도 입으면 안되는 핀란드와 아일랜드이야기. 영국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그래서 아마 다이애나 비의 장례식 때, 황태자는 물론이고 두 왕자 모두 스커트 속은 그냥 알몸이었을 거라는 야릇한 얘기도
나오나 봅니다. 이렇듯 이 책은 단순히 개인적인 물건으로 치부되었던 속옷을 통해 세계 각국의 시대상과 문화적 특성을 투영하고 이야기로
풀어가지요. 또 <죄와 벌>,
<안네의 일기>등 동서양과 시대를 넘나드는 문학작품에서 인터넷의 속옷커뮤니티의 글까지 요네하라 마리가 찾아낸 방대한 자료에서는 마치
고고학적인 향기와 왕성한 에너지를 전해줍니다. 그녀의 발품과 글품,
그리고 그 치열함과 꼼꼼함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요. 덧붙여 인상적이었던 구절들을 발췌해 봅니다.
서양인은
온천에 들어갈 때에는 수영복을 입지만 사우나에 들어갈 때에는 알몸이다. 일본인은 사우나에서는 수건으로 몸을 감싸지만 서양인은 알몸으로 들어간다.
..결국 동성에게 자신의 알몸을 보여주는 데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알몸을 보여도 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일본과 서양 각각
관습적으로 다른 것이다.
(프라하에서
일본에 돌아왔을 때) 친구 사이가 되면 함께 화장실에 따라가 준다고 하는 풍습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혼자서 가면, 일 보러 화장실에 간다는게
다 들통이 나 버리지만, 여러 명이 가면, 누가 볼 일을 보고, 누가 따라가는 건지 주위 사람들은 알아 차릴 수가 없다. 웃긴 점은, 일부러
화장실까지 따라가는 동성에게, 볼 일을 보고 있을 때 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극단적으로 창피하게 여겨서, 볼 일을 보는 동안 계속해서 물을
내린다는 점이다. 이 미궁과도 같은 복잡한 일본인 여성들의 수치심에는, 놀라움을 넘어 오히려 감격하고 말았다. 이런 경향은 그 뒤, 더욱
강해지고 확산 돼, 지금은 물을 아끼기 위해서 물 내리는 소리가 나는 장치가 상품화 되었다. 이 제품은 절대로 수출은 불가능
하겠지.
우리나라 여성과 일본
여성의 부끄러움이 닮아있다니 신기했습니다. (물내리는 벨소리 기계는
결국 우리나라에서 수입했어요, 마리여사님~) 속옷과 연결되는
수치심과 체면에 대한 부분이 특히 저에게는 흥미로웠는데 '누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알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며,'부끄럽기 때문에 감추는
것이 아니라 감추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생긴다'는 요네하라 마리여사의 통찰력은 예리합니다. 또, 코스모폴리탄으로 보였던 그녀가 '팬티'라는
기성제품이
글로벌 스탠더드가
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때문에 일본 전통의 ‘훈도시’ 문화를 파헤치는대요. 일본의 남성 속옷이던 훈도시는 마치 처녀가 남자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해야 할 경우 입술만은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지듯, 일본 남성에게는 그런 존재였다네요. 아, 훈도시는 아시다시피 스모선수들이
중요부위만 가린 그 끈이예요. 일본 남성들은 겉옷은 양복을 입더라도 속옷은 훈도시를 해야 남자라는 인식이 많았대요. 웃음이 나오지만
새누리당처럼 훈도시당이 생길 정도였다는 군요. 하지만 결국 그녀는 치열한 연구끝에 '훈도시가 내셔널한 가치이기는 커녕 팬티보다 더 광대한 지역에
퍼져 있는 글로벌한 것”이더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그
외에도 팬티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살짝 속옷이 보이는 상황에 대처하는 이야기와 애인과의 첫날밤에 입는 속옷이야기,
'남자는 바지, 여자는
스커트'라는 고정관념이 팽배했을 무렵에는 잔다르크가 화형당했을 때, 여자가 바지를 입었다는 죄목도 추가했었다는 이야기도 나오더군요. 조르주
상드가 남장을 했을 때에는 마치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처럼 사회전체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 일본에서 여성의 속옷은 치마처럼 밑이
트여있었다는 이야기등등..그리고 여기에서 여성팬티와 뗄레야 뗼 수 없는
생리대 이야기가 펼쳐지죠. 일본이나 러시아나 심지어 중국과 북한에도 제품형태로 만들어진 생리대는 없어서 직접 솜이나 천으로 만들어서 썼다네요.
지금도 전세계의 20%만이 화학섬유의 1회용 생리대를 쓸 수 있는데, 이게 편하긴 하지만 여성의 몸에는 별로 좋지는 않잖아요.캄보디아의
고아원에서는 버려진 모기장으로 생리대를 만들어서 쓴다던데..(얼마전에 제가 쓴 관련 글 http://mypurple.blog.me/70129307737)
하여간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남성들이 훈도시만 걸치고 동네를 돌아다니고 여성들은 아예 치마처럼 밑동이 없는 속옷을 입고 다닐 때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속옷을 입었는지 궁금해져서 찾아보았어요.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남녀가 모두 큰반바지같은 속옷을 입었네요.'속곳'이라 불리는데 아래처럼요.문화적으로 굉장히 앞서갔던 거 같네요.
하여간
이 책<팬티 인문학>은 '사회와 개인,집단과 개인,개인과 개인 사이를 분리하는
최후의 물리적 장벽'인 속옷을 가지고 별의 별 질문과 호기심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저의 40년 속옷 콜렉션을 다시한번 더듬어보면서
다양한 문화에 대한 그녀의
열려있는 시선과 다정다감한 문체, 통통튀는 재치를 음미해보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 처음에 돌발적이고 음흉한 제 질문에 부끄러우신 분들은
답변 안하셔도 되요. 당신의 팬티 색깔은 그냥 자비로운 제가 나름대로 추측만 할께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오늘 제 팬티 색깔은.........음... 레이스가 달린 표범무늬 프린트예요. 어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