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한 다스 지식여행자 1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연달아서 마리여사를 만났습니다. 마리여사의 책들중에는 <팬티 인문학>처럼 속옷을 소재로 한 경우에서 보듯이, 통역과 음식, 책, 반려동물등등 하나의 컨셉으로 화려한 만찬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 <마녀의 한 다스>는 그런 의미에서 소재를 정해보자면 '서로 다른 문화가 부딛혔을때 겪는 웃지못할 이야기' 정도로 함축할 수 있겠네요, 이 책은 국제 정의와 집단 이기주의, 선입관과 이질적인 문화관습에 대한 키워드가 전체적인 고갱이를 이룹니다. 이 책을 통해 나라마다 다양한 문화적 특징을 배울 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저는 상식을 뛰어넘고 편협한 경험주의, 다른 문화나 역사적 배경에 대해 빈곤한 상상력을 지니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 충분히 이해하게 된 듯합니다. 그외에도 '누드 해변에서 발기되는 남자는 없다는 현상처럼 계율이나 법령으로 공급이 금지될 경우 욕망은 오히려 커지게 되더라는 '희소가치'의 법칙과 가까울수록 멀리 보고, 멀수록 가까와지는 '거리두기' 법칙이 얼마나 지혜로운 것인지 인상에 남더군요. 약점을 강점으로, 비극을 희극으로 만들 수 있는 이런 사고의 낙차를 제대로 꿰뚫어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슬기가 아닐까요? 유머를 써먹고 싶을 때도 그렇고, 정치 삼권분립에서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니까요. 사소한 데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그녀에게 혀를 내두릅니다. 

 


 

세상에는 두 부류가 있다고 하죠. 질문하는 사람과 추측하는 사람.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인 요네하라 마리여사는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다문화에 익숙한 환경에 있어서 그런지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비위가 그다지 약하지 않습니다. (언어감각과 아울러 굉장히 부러운 부분이죠.) 무엇보다도 그녀는 속상하면 징징거리는 인간적인 모습과 현실사회에 대해 어깨동무를 하고서 꿋꿋하게 비판을 하는 자유로운 영혼입니다. '세계의 깡패국가 미국'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겐 잔혹한 일본 파시즘' '신문은 친구를 사귀어선 안 된다' 등의 짧은 글들에서 마녀(?)의 진면목을 실감할 수 있다고나 할까요?  근데, 잠깐! 비핵화 문제를 거론할 때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네마네로 난리지만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미군의 핵무기가 배치되어있다'고 쓰셨더군요. 진짜일까요? 저는 91년이후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또 아쉬웠던 부분은 그 문화에서는 이미 퍼져 있는 일반'유머'를 수집해서 곳곳에 배치하고 있는데 이 책이 유머집이 아닌 마당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 않더라구요. 그녀의 유머는 영하 59도에서 추위조차 능가하는 강렬한 욕구, 배설욕에 대한 성토가 오히려 더 리얼하고 재미있습니다.또 하나는 목차를 보면 소제목들이 로마의 중국인, 교토의 베트남인, 마닐라의 스위스인, 모스크바의 미국인,우주의 일본인등으로 뽑아냈는데 그게 이상하게 전체 소재와 일맥요연해 보이면서도, 메세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집중력을 잃게 만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살짝 비틀어보면서 비판하고 심지어 약간의 거리를 둠으로써 때로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그 재주는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재미있었던  몇몇 부분들을 발췌해 봅니다.

 

#1

“저요, 오르가즘에 도달했을 때, 본능적으로 아, 아이가 생겼으면, 하고 생각한답니다.”

이 무방비할 정도의 솔직함, 세상사람 눈치 보지 않는 말투, 구김살 없는 정신과 자신감이여, 더불어 여자의 몸과 마음의 신비에 대한 이야기까지 정말이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

“장하다!”

‘아아, 역시 선생님도 나처럼 A씨의 대담함과 솔직함, 여자의 신비한 에너지에 감탄하셨구나.’ 이렇게 이해하고 은근히 기뻤다. 그런데 도쿠나가 선생은 “그 얼굴을 상대로 오르가즘에 이를 때까지 용을 쓰다니, 어떤 남자인지 진짜 장하다!” 하고 말을 이었다. 취기가 확 달아날 것 같은 충격. 이런 것을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이라 하지 않을까. 같은 말에 대해 이리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니. 천동설과 지동설만큼이나 다르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가까우면서도 다른 문화요, 다른 우주다.

 

#2.

"아이 당신, 손가락을 넣을 땐 반지는 빼라고 했잖아요."

"어, 이거 시계인데."

 

#3.

영어나 프랑스어에서 여성을 나타내는 말은 미혼, 기혼에 따라 나뉘지만 , 남성을 나타낼 때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일본어에는 그런 관습이 없지만, 옛날에는 남편 있는 여성의 치아를 검게 칠하는 풍습이 있었으니 언어로 기호화하지 않아도 괜찮았던 것일까.

 

#4.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영화소개 TV프로그램을 잠깐 보게 되었습니다. 미국 알래스카에서 있었던 고래살리는 미국 환경론자들의 실화가 곧 개봉한다네요. 요네하라 마리여사가 비판할 때마다 등장하던 '고래'만 살리자 하고 '죽어가는 인간'은 나몰라라 하는 어떤 집단, 고래를 먹는 건 야만이요, 돌고래를 죽이는 건 잔혹하다고 매도하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 직접 눈앞에 나오니 일순간 당황했죠. 생태주의에 관심이 많은 저이지만 어떤 것이 이율배반적인 태도일까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화두네요. 미하일 바흐친의 말로 서평을 줄이겠습니다.  '이문화가 교차하는 순간에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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