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앓이 - 나에게로 떠나는 마음여행
크리스토프 포레 지음, 김성희.한상철 옮김 / Mid(엠아이디)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크리스토프 포레는 누구? 책 검색을 하다가 찾아낸 책의 저자 이름이 낯설다. 아마존에서 검색을 해도 이 프랑스 저자의 책에 대한 평을 접할 수 없었다. 원제가 <Maintenant Ou Jamais! La Transition Du Milieu De Vie>인 이 책의 번역서 제목은 <마흔앓이>였다. 마흔이란 숫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내 눈을 사로잡았으니 편집자는 내용에 상관없이 일단은 제목 선정에서 성공한 셈이다. 원제는 중년의 전환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사실 책에서도 40대 전후의 전환기를 경험하는 중년을 대상으로 쓴 심리학 책이니 번역서 제목과 그리 동떨어진 건 아니다.

순전히 제목에 대한 호감으로 구입하여 읽기 시작한 책은 첫 페이지부터 빠져들어서는 2-3일만에 다 읽어...버렸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대단히 좋았다. 누가 내게 요즘 읽을 만한 책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이 책을 추천할 것이다. 물론 30대 중반을 넘긴 이들에 한하여. 누구나 그렇듯 멀리 있는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문제의식을 체감하기 어렵다. 따라서 결혼을 하지않은 자녀가 없는 이삼십대 초반의 싱글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어설프게 늙은 척하려는 젊은 작가지망생들에게도 추천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은 책으로 중년의 경험을 취하지 말고 몸으로 겪어나가는 것이 더 유익이다.) 허나 당신이 40대 전후의 중년이라면 이 책은 매.력.적.이다.

이 책을 읽던 중 영화 <언페이스풀>이 떠올랐다. 그다지 좋은 영화는 아니었지만 이 영화 초반에 코니(다이안 레인)가 남편이 출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멍하게 밖을 내다보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슬픔, 무료함, 의미없음, 늙어감.. 이 모든 것을 담은 듯한 표정. 이 한 장면은 장차 있을 그녀의 외도를 의도하며 정당화시켜준다. 그녀의 가정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남편도 성실하고 착하며 자녀도 잘 자란다. 그저, 그녀가 중년에 들어섰을 뿐이다.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이가 컸다. 뭐 하나라도 하려고 치면 엄마의 손길이 필요했던 아이가 어느새 청소년이 되어 부모의 참견을 싫어한다. 아이를 위해 나의 존재 자체를 희생했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아이는 내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좀 있으면 집에서 독립을 할 판이다. 남자는 회사생활도 이제 익숙해졌다. 익숙하다 못해 이젠 무료하다. 매일 하는 일이 똑같다. 의식하지 못했는데 가끔 숨이 막힌다. 창밖을 물끄러미 볼때가 잦아졌다. 그럴 때면 왠지 모를 슬픔, 대상이 없는 원망의 감정들이 밀려온다. 부모는 나를 사랑해주고 도와주던 존재에서 도리어 내가 보호해야할 연약한 존재가 되었다. 이것이 중년의 위기인가.

저자는 중년의 위기는 과장이라고 말하지만 40대를 전후해서 삶의 전환점이 온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청년까지는 부모가 원하는 삶, 국가와 사회, 배우자와 아이들, 주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애썼다면 이제는 다시 나에게 자신의 가치, 욕망에 대해 다시금 집중하게되는 시기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중년에 많은 이들이 명품 옷이나 고급 취미에 몰두하거나 젊어지려고 성형수슬을 반복하거나 연하의 애인을 사귀어서 데이트를 하거나 불륜관계에 빠지거나, 심지어는 술과 도박에 빠지기도 한다. 갑자기 배우자와 이혼을 하거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새로운 분야의 회사로 이직을 하기도한다. 친절했던 사람이 한순간 괴팍해지기도 하고 헌신적이었던 엄마가 딸처럼 옷을 입고 밖에 나가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부부가 서로의 이야기에 무심해지고 각자의 취미생활과 모임활동에 열을 낸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포레는 본서에서 여러 사례들을 보여주면서 중년의 심리상태를 드러낸다. 그리고 융의 심리학에 기대어 그 마음 속의 문제들, 욕망들의 실타래를 풀어낸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많은 중년의 일탈행동들이 본질적이지 않으며 그런 이유로 그런 개별 행동(외도, 술, 성형)으로도 중년의 흔들림은 해소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감기의 본질이 콧물이 아니듯 중년의 흔들림의 본질은 '나자신'의 욕망을 바르게 알고 그것을 해소하는 것이다. (이는 작년에 개인적으로 최고의 책으로 꼽은 <대한민국 부모>에서도 반복적으로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중년의 '내'가 행복해야, 배우자가 행복하고 자녀가 행복하고 나아가 가정과 사회가 행복하다. 하지만 중년의 '나'는 내 맘대로 해서는 안 되는 가정, 사회적 제약들이 너무도 많다.

한 1년, 5년, 나아가 10년은 참고 살 수 있다. 하지만 10년을 넘어서면서 이 삶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막연한 확신이 들 때, 사람들은 무너지게 된다. 더이상 참아낼 자신이 없는 것이다. 타자들이 규정한 페르조나를 뒤집어쓰고 꼭두각시처럼, 노예처럼, 그렇게 늙어갈 수는 없다... 그것이 중년을 맞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절규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프랑스 중년보다 한국 중년들이 더 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청년들은 점점더 취업도 혼기도 늦어지고 있다. 회사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기도 전에 늙는다. 퇴직은 점점더 빨라지고 있다. 청년의 혼란, 어려움을 갓 벗어나면 중년의 흔들림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그런 의미로 이 책은 우리나라 중년들에게는 더더욱 의미있는 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포레의 제안은 의외로 간단하다. 풍선의 압력이 높아지면 어느 순간 펑 하고 터진다. 풍선이 터져버리기 전에 미리미리 바람을 빼서 압력을 낮춰야 한다. 나에 대해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들을 천천히 그리고 많이 생각하면서 그것들을 해나가야, 말년에 일탈행동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다. 당신의 현재는 건강한가. 그렇지 않다면 포레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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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사랑학 수업 -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마리 루티 지음, 권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착한 아들, 착한 동생, 모범 학생이었다. 학교 친구들과도 항상 원만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서로 상처를 주고 받은 관계는 없었다. 몇몇 절친과 간혹 절교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며칠만 지나면 이내 다시 밥도 같이 먹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함께 놀기를 반복했다.

 

짝사랑. 풋사랑, 첫사랑..
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그저 착실하고 매사에 타인을 불편하게 만든 적이 없는 나였지만,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시작된 내 초반의 연애 경력은 사실 그다지 좋지 못했다. 감정의 숨김, 혹은 과잉, 상대를 조종하고자 하는 욕망, 익숙치 못한 '밀당' 등, 잠시동안의 로맨틱한 몇몇 기억을 빼면 힘들고 고통스럽고 창피해서 숨고 싶을 정도로 심경이 복잡하다. 지금도 가끔 과거를 돌이켜보면 몇몇 사건들이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린다.

 

일년 넘게 상대를 괴롭히며 서로를 힘들게 만들었던 기억. 때로는 영원히 사랑한다고 말했다가, 불과 며칠 후엔 다시는 너를 보지 않겠다고 맹세한 메시지를 보내고, 하루는 네가 어떻든 상관없다고 말했다가 또다른 하루는 나만 소중히 여겨달라고 고집을 피우던, 까만 밤을 하얗게 새워가며 상대를, 나자신을 괴롭히던 내 초창기 연애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지워버리고 싶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는 그렇게, 거친 감정의 주고받음을 통해 어느정도 내 안에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야수성'을 길들여갔고 어느 시기부터는 정상인이 되었다. 정상적인 연애를 하게 된 것이다. 정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고 그리고 말과 행동의 어긋남이 줄어들게 되는 과정 속에서, 솔직히 나는 내가 남들보다 조금더 늦게 사랑에 대해 이해하고 곱씹게 되지 않았나 돌아본다. 한편으로는 그 규정짓기도 민망한 '사랑의 시작들'은 상대방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내게 참 쓰고도 깊은 약이 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결혼을 하고도 어언 8년이 지난 지금. 마리 루티의 <사랑학 수업>을 읽으니 새삼 내가 점잖게 - 마치 과거의 '행패'를 저지르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폼잡고 - 있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난다. 마리 루티가 언급한 안 좋은 남성의 케이스 중 어느 대목에서는 내 과거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또는 내가 이 수업을 들었다면 불필요한 감정의 속임, 혹은 과잉 없이 있는 모습 그대로 좀더 빨리 정상적인 연애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그녀의 가르침을 '몸소 체험을 해야' 그것(연애)이 제대로 내 안에서 소화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어쨌거나 젊은 시절의 힘들었던 연애의 기억들이 결국 나를 이전보다 조금은 더 멀쩡한 인간이 되게 해준 게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든다. 무엇보다 그녀의 '사랑학 수업'은 문화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행하는 남성과 여성의 정형화된 연애의 룰 자체를 허문다는 점에서 배울 부분이 많다. 특히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로 열심히 연애 공부를 하는 싱글들에게 과감히 그 책을 이제 덮고 마리 루티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제안하고 싶다.

 

그녀는 책의 말미에서 사랑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10가지의 조언이라는 리스트를 아래와 같이 제시했지만 이 조언보다 더 깊이 있는 통찰들이 그녀가 드는 사례와 일화들에 즐비하다는 점을 나는 꼭 강조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개인적으로 그녀의 사랑학 수업보다 나는 초반에 쓰여진 정혜윤씨의 추천사가 더 좋았다. 솔직히 추천사를 읽고 가슴이 뭉클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멋진 글로 이 책을 더욱 빛내준 그녀에게도 감사를 전한다.

 

<사랑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10가지 조언>
1. 너무 애쓰지 마세요. 연애가 잘못되는 것은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2. 너무 조심스러워하지 마세요. 용기 내어 다가가지 않으면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3.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분석하지 마세요. 머리로 고민하기보다 마음의 울림을 믿으세요.
4. 자신의 강인함에 대해 미안해하지 마세요. 약해보여야 애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5. 자신의 약점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랑은 기댈 어깨를 얻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6. 나를 원하지 않는 상대를 쫓아다니지 마세요. 가슴만 아플 뿐입니다.
7. 문제가 없는 남자는 그만 찾으세요.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고 나에게도 있으니까요.
8. 사랑하는 사람을 조종하지 마세요. 당신이 조종당한다면 싫듯이 상대도 마찬가지입니다.
9. 지나간 잘못을 일일이 후회하지 마세요. 사랑에서 올바른 선택만 할 수는 없습니다.
10. 상실은 완전한 상실로만 생각지 마세요. 잃어버린 경험이 당신을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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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모 -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
이승욱.신희경.김은산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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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부모>를 의미심장하게 읽었다. 자녀 교육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한국사회의 왜곡된 가정문제가 모두 얽혀있다는 느낌. 공저자들이 말한대로 문제의 자녀에게는 문제의 부모가 아닌 문제의 부부가 있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중년의 부부들은 위기에 처한다. 소통의 문제가 생기고 자녀교육이라는 프로젝트 안에서 왜곡된 욕망을 투영한다. 아내는 여성에 대한 불평등을 경험하다가 출산후 사회생활을 접고 현실적인 선택, 즉 자녀의 매니저이자 자녀를 애정과 투자의 대상으로 규정짓는다.

남편은 40대에 혼신의 힘을 다해 직장생활을 하지만 언제 낙오될지 몰라 집안일, 가사노동은 고사하고 특히 자녀교육에서 배제되다가 아이가 반항을 하게되는 중고교 시절 군기반장으로 투입된다. 이때에는 자녀와 교감이 없는 채로 엄마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적 폭력을 행사하므로 자녀는 급속도로 아빠와 멀어진다.

이 부부는 각자 자신의 욕망이 배제된 삶을 강요받으며 혹은 자신의 욕망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며 40대를 자녀교육이라는 대국민 사업에 전념하다가 자주 좌초한다. 대부분 아이의 일탈이 원인이 되며 때때로 배우자의 외도로 가정은 허물어진다.

#2.
내가 돌아볼 때 내 아내의 최대 장점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아내는 매순간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항상 돌아보고 그 원하는 바에 우선순위를 두고 그 다음에야 주변과 조율과정을 거치려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사실 오랜 자기 검열과 성찰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아내는 가끔 나의 분노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이해하는 나의 분노는 결국 욕망의 좌절에 다름 아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부모의 기대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자 부단히 애썼다. 뭐랄까, 내가 바르게 성장해야 우리 가정의 행복이 보장된다는 느낌. 나는 내가 어느 정도는 왜곡된 교육의 피해자라고 평가한다.

<대한민국 부모>를 읽으면서 나는 나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나의 꽤 많은 활동들이 사실상 외부를 향해 있다. 초자아의 준엄한 명령이 나의 일상을 지배한다. 회사에서도 팀장님과 후배 사원들과 소통과 협력에 애써야 한다, 아내가 힘드니 내가 육아를 분담해야 한다, 부모님이 내가 크는 동안 애를 많이 쓰셨으니 내가 항상 그것을 갚아야 한다...

더 나아가 글쓰기나 나의 어떤 논리들에서도 그것은 투영된다. 약자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니 그것을 위한 글쓰기에 노력해야 한다거나 여성이 피해자이니 내가 남성이지만 여성을 대변하도록 애쓰자거나 제3세계 사람들을 위해 공정무역 제품을 쓰려는 노력까지..

#3.
투박하게 정리하자면 나의 존재감은 초자아적인 어떤 규범을 충실히 지키고 그것을 칭찬받는 일에 전적으로 기대어 있다. 네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우리가 좋아졌어, 네 덕에 내가 행복해... 이런 말들을 은연 중에 바라는 마음이 있는 셈이다. 그것 또한 욕망이라면 욕망이라고 하겠다.

<대한민국 부모>에 나오는 남편들 중에는 죽도록 일하고 가정에서 외면당하는 이들이 있다. 약육강식의 직장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오면 아내는 니가 집에서 도대체 하는 게 뭐냐, 모르면 가만히나 있어라 요즘 애들 교육이 쉬운 줄 아냐 라고 망발을 듣는다. 예전에는 공부만 잘하면 칭찬받던 `아들`에서 지금은 살벌하게 애쓰지만 원망에 비난받는 `남편, 아빠`가 된 자신을 본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외부를 향해 분투하는 에너지들은 모두 어떤 의미에서는 `인정`과 `칭찬`, `존경`과 관련되어 있고 이것들이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외부로 향하지 않는 내 욕망은 무엇인가. 틈틈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고 IT 제품들을 지르는 것으로 해소되지 않는 좀더 본질적인 내 안의 욕망은 무엇일까.

대체로 부모는 `자신의 욕망`이 없기 때문에 가정이 왜곡된다. 40대에도 설레는 어떤 존재적인 욕망없이 칭찬 없는 의무들에 눌려서, 그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너무 허접한 대안들을 선택하는 건 아닐까. 자신들의 욕망이 없는 부모들이 자신 수준의 복제품을 만드는 일에 골몰하다가 자신과는 다른 존재인 자녀들을 망치고 스스로도 자멸하는 건 아닐까.

결국 나의 건강한 욕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소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가정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닐까. 김두식 교수님의 책 제목을 조금 카피하자면 ˝욕망해'야' 괜찮아˝라고 할 수 있겠다. 요즘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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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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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서 직장인 두명을 조명한 적이 있다. 약간 각색을 더한다면 내용은 이러하다. 한 사람은 회사에서 항상 웃는 얼굴이다. 팀원들이 무슨 부탁을 해도 항상 매사에 적극적이며 일이 주어지면 주도적으로 한다. 회식 때도 노래방에서 기똥차게 뽑아낼 수 있는 몇 곡의 노래가 있는데 이는 아마 혼자 연습을 많이 한 것 같다. 사적인 대화에서도 주식부터 예술까지 상당히 많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조금 대화가 겉도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담배피는 10분 내외에 그와의 대화는 은근 감칠맛이 난다.

 

다른 한 직원은 그와는 다르다. 아침에도 무표정한 모습으로 출근을 해서는 상사가 지시하는 일 하나하나를 왜 자기가 그 일을 해야하는지를 따진다. 팀원들의 부탁을 다 거절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별 이유없이 자기 시간을 타인에게 내주는 걸 꺼려한다. 퇴근 후에 갑작스런 회식이 잡히면 그는 선약이 있다고 자리를 피한다. 사람들은 그를 개인주의적이라고 뒤에서 수군거리기도 하는데 아마 그는 취미생활로 일주일에 한두번씩 악기 레슨을 받는 것 같다.

 

이 두사람의 스트레스 지수를 검사했다. 결과가 어땠을까. 매사에 긍정의 힘이 넘쳐나고 적극적인 직원은 심각한 우울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판명났다. 스트레스 지수도 높았고 자살 위험성도 적지 않았다. 반대로 매일 얼굴을 찌푸리며 까칠하기 그지없는 다른 직원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사내의 팀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병철의 '피로 사회'는 이런 현대 직장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문제를 신선하게 접근한다. 과거 모더니즘 시대는 규율과 법칙, 원리, 강제를 통한 관리체제가 개인을 구속하고 일하게 만들고 압박을 주었다면 현대는 그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 진단한다. 바로 긍정의 힘, "예스 유 캔"의 마법이 그것이다. 진위를 따지던 시대, 서구사회의 문화가 진리이던 시기를 지나 문화적 다양성, 서로의 기호가 진리를 상대화하는 시대의 사회 구성원들은 타인, 타문화, 타업무와 같은 기타 자극에 대해 보다 유연한 접근을 요구받는다. 일단 다 긍정하고, 모두를 정보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흡수하고 자신의 능력으로 만들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고로 어떤 조직에서의 이질성과 타자성은 축소되고 대기업에서 그렇게 부르짖는 소통과 협력, 그리고 무한한 자기 긍정과 자신의 능력의 과잉을 고양할 것을 요청받는다. 긍정의 힘이나 자기개발, 다양한 분야를 어우르는 통섭적 접근, TRIZ, 어학, 시간관리, 멀티테스킹, 하다못해 두통이나 심한 피로가 몰려와도 약물(포도당 링겔, 피로회복제, 두통약)을 먹어가며 자신을 혹사시킨다. 이렇게해서 자기과잉을 성취하는 자가 글로벌 시대에 진정한 승자이자 마지막에 웃는 자이다.

 

하지만 실상 대부분의 현대인은 자기 긍정의 최면에 빠져 이전 세대와는 다른 병리현상을 경험한다. 면역, 자기방어의 벽을 허물고 무방비상태로 쏟아지는 정보, 대인관계, 처리할 일들의 늪에서 허우적댄다. 한병철의 진단대로 현대인이 겪는 심리적 문제, 즉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은 전염성 질병이 아니라 경색성 질병이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라는 것이다. 결국 긍정의 시대, 시장 자유주의 경제 속에서 한 개인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학대하며 자책하며 썩어져간다.

 

이러한 과잉 input 속에서 한 개인은 깊은 사색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멍 때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창의력을 권장받지만 그것은 한 영역 안의 정보를 다른 영역에 카피하거나 적용하는 영역을 넘나드는 모방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현대인은 방만한 일들을 처리하지만 산만하고 불안하며 그 마음의 중심을 잡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따져보고 걸을 시간이 없는 탓에 등떠밀려 앞으로 전진한다. 결국한참 잘 달려가는 능력자는 어찌보면 쉽게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격이다.

 

저자가 결론이나 대안을 명시적으로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의도는 명확하다. 긍정의 힘을 기반으로한 성과사회는 결코 규율사회보다 진보한 패러다임이 아니다. 종국에는 개인 스스로를 (내적 암시를 통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로 만드는 악순환을 조장할 뿐이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이나 치밀한 시간관리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을 때 유토피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신병리적 고통 속에 빠질 뿐이다. 따라서 충분한 사색과 여유, 적당한 내적 면역체계의 복구, 나아가 '탈진의 피로'가 아닌 '무위의 피로'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나또한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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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크레마touch-대한민국 킨들kindle 케이스 - 파우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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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재 국내에 판매하는 케이스는 크게 2종이다. 파우치형과 케이스형이 있는데 케이스형은 5가지 색깔을 중 택할 수 있고 손잡이가 있는 장점이 있다.

파우치형은 색상이 한가지이며 가격이 비싸다. 허나 나는 파우치형을 추천하고 싶다. 킨들 터치를 써보니 전자책 단말기의 최대 장점은 크기가 작고 슬림하며 가볍다는 것이다. 결국 어떤 종류의 커버도 없이 책을 보는 것이 최적이다.

 

헌데 케이스형은 기본적으로 단말기에 장착해야 한다. 파우치는 이동시에 담아뒀다가 책을 볼 때는 기기만 꺼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용도와 기호에 맞게 선택을 바라지만 한번쯤 고려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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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2013-04-04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동의합니다. 케이스씌운채로 읽으려면 무겁기만하고 별로 좋지도 않죠. 그리고 파우치형태의 케이스 전면은 좀 딱딱하게 메탈이나 아크릴소재로 만들어서 액정을 보호해줬으면 더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