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였나. TV에서 베를린필의 공연을 방송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이먼 래틀이라거나 클라우디오 아바도, 제임스 레바인 같은 세계적인 지휘자들을 잡지에서만 보는 게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TV를 통해 본 그 날 공연은 야외에서 진행되었고, 초저녁에 시작된 콘서트는 어두워져 청중들이 촛불을 켜고 있을 정도로 낭만이 가득했다.
그런 분위기의 공연은 처음이었다. 그 날 지휘는 세이지 오자와였고 베를린 필이 왜 훌륭한 오케스트라인지 오자와는 왜 마에스트로로 칭송을 받는지 새삼 확인한 공연이었다. 몇 번의 앵콜에서 청중은 휘파람을 불어댔고 그 휘파람마저 지휘로 오케스트라와 교감을 시킨 오자와와 베를린필의 공연은 나를 클래식의 세계로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많은 클래식 음반들도 들었고, 오페라와 교향곡 연주회도 실제로 가보았지만 정작 내 기억에 TV로 본 그날 밤의 공연만큼 나에게 강력한 경험은 그 이후로 없었던 것 같다. 그 공연이 매해 열리는 베를린필의 발트뷔네 여름 콘서트임은 나이가 한창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많은 공연들이 그 콘서트보다 훌륭했겠지만, 내게는 클래식 입문을 하게 만든 장본인격인 이 공연에 특별히 더 애정이 가는 건 사실이다.
시간이 흘러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저가형 DVD 바람에 실려 발트뷔네 콘서트도 저렴하게 발매가 되었다. 협연한 솔리스트와 가수들 그리고 지휘자들이 화려하기 그지 없다. 시간이 오래 흘러서 조금은 촌스럽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시 봐도 그 때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개인적으로는 클래식을 즐긴다면 반드시 구입을 권하고 싶다. 단점이라면 유명한 곡들을 주로 레파토리로 삼는다는 것. 그리고 선물용으로는 케이스가 좀 허접해 보인다는 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