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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몇 달 전에 주로 소설을 읽고 온라인으로 그 감상을 서로 나누는 어느 독서모임에 가입했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하 <키스...>)과 철학 에세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그 모임에서 선정한 그 달의 도서였다.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을 유발하는 신선함이 느껴지는 책들이었다.

주문한 책을 받아 들었을 때의 첫 느낌 역시 제목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신선함이었다. 두 책은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 있는데, 표지 디자인과 판형이 기존의 다른 소설책이나 에세이집과는 상당히 달랐다. 책장 넘기기가 용이한 제책 방식에 간지용 색실 부착까지 일단 '외모'는 상당히 맘에 들었다. 첫 만남에서 이 책은 말하자면 좀더 만나보고 싶은 '상대'로서 충분한 평점을 얻은 셈이다.

각설하고, <키스...>는 상당히 낯선 느낌을 주는 소설이었다. 전기(傳記)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 그렇고, 주인공이 실제 인물인 점 또한 그랬다. 이 소설은 주인공 이사벨에 관한 이야기 중간중간 전기작가들의 주인공에 대한 태도나 글쓰기, 혹은 그들의 글을 인요한 부분은 전기작가들이 참고해도 좋을 만큼 실용서의 분위기도 갖고 있다. 게다가 설문, 도표, 사진 등은 소설에서는 보기 드문 요소들이라 소설이라가보다는 한 남자가 연애를 하면서 쓴 일기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읽는 동안 종종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은밀학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던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사벨은 전기의 주인공으로서, 소설의 주인공으로서도 너무 평범해 보인다. 오히려 그 점이 나에게 어떤 공감을 주었던 것 같다. 부모형제와의 관계, 친구들과의 관계, 어린시절, 직장생활, 생활태도 등 이사벨의 면면들이 나와 무척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동생이나 엄마에게 애정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염증을 느끼는 점, '그러면 좀 어때' 하다가도 짜증나는 상황이 닥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돌변하는 태도, 소설 속 주인공(히스클리프)에 대한 짝사랑 등 우리들이 자라면서 혹은 성인이 된 후에도 흔히 보이는 태도와 생각들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30대 여성이 이사벨인 것이다. 이런 이사벨에 대한 공감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이사벨에게 전폭적인 공감을 느낀 반면 화자인 그는 남성이기 때문에 이사벨의 태도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발생하는 것 같다. 따라서 남성 독자의 느낌은 또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이사벨이라는 한 여성에 대한 보고서인 동시에 만남에서 이별(이별하게 될 것으로 봤다)에 이른 남녀간의 연애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키스...>는 작은 에피소드들로부터 어떻게 여성의 특징을 읽어 낼 수 있으며, 어떻게 남녀의 차이를 읽어 낼 수 있는지를 알려주었다는 점에서 나에게는 매우 신선한 소설이었다. 또한 사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로부터 한편의 소설 혹은 '인문학적 보고서'를 만들어 내는 저자의 능력 또한 특별하게 다가왔다. 외모가 전부일 수는 없지만 이번 경우 '수려한' 용모만큼 내실 있는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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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 푸른역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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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이 기습적으로 덮치면 모든 일이 심드렁해지면서 책읽기도 무력감에 빠지게 된다. 찬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살랑거리고 해가 짧아진 탓인지, 여름 끝자락에 봤던 몇 편의 영화 탓인지 요며칠 마음이 산란하여 뭔가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마음을 달래 보려고 서가를 흩어 봐도 딱히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었다.

가끔 들르는 헌책방 홈페이지에서 일전에 확인해 두었던 책이라면 도움이 될까 싶어 며칠 전 퇴근길에 오랜만에 헌책방에 들렀다. 다행이도 찾는 이가 없었는지 아직 거기 있었다. 그렇게 내게 들어 온 책이 정민의 <미쳐야 미친다>였다. 제목이 자칫 선정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를 통해 '미치기(及)' 위한 '미치기(狂)'를 권하고 있는 책이다.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 강진 유배지에서 만난 정약용과 제자 황상, 아름다운 실내악 연주를 함께 즐겼던 홍대용과 그 벗들 등 저자 정민은 이 책에서 '벽(癖)에 들린'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백이전(伯夷傳)>을 무려 1억1만3천 번이나 읽었다는 김득신이었다.

1억1만3천 번. 헤아리기도, 믿기도 힘든 수치이지만 김득신이 남긴 <독수기(讀數記)>의 기록이니 결코 과장일 수 없다. 당시 '1억은 10만을 가리키니, 실제 그가 읽은 횟수는 11만3천 번'이라 했지만 그렇더라도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수치이다. 게다가 <독수기>에는 이에 버금가는 기록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읽은 횟수를 그렇게 정확히 알고 있었던걸까? 사뭇 궁금했다. 바를 정(正) 자를 썼을까? 아무래도 그렇게 큰 수를 正 자로 기록했다면 그걸 세느라 한 세월 보냈을 것이다. 알고 보니 산문(算文)이라고도 하는 읽은 횟수를 확인하는데 사용했던 서산(書算)이라는 도구가 있었다. 위 아래로 구분해 여러 개의 홈이 보이는데, "아래쪽 열 개의 홈은 한 번 읽을 때마다 하나씩 젖히고, 열 개가 다 젖혀지면 위쪽의 하나를 젖혀 열 번을 표시했다"고 한다.

"부족해도 끊임 없이 노력하면 어느 순간 길이 열린다. 단순무식한 노력 앞에는 배겨날 장사가 없다. 되풀이해서 읽고 또 읽는 동안 내용이 골수에 박히고 정신이 자라, 안목과 식견이 툭 터지게 된다. 한 번 터진 식견은 다시 막히는 법이 없다. 한 번 떠진 눈은 다시 감을 수가 없다."

김득신의 이야기에 덧붙인 정민의 해설이다. 김득신은 본디부터 명민했던 인물은 아니고,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떨어지는 둔재였다고 한다. 부족한 사람 눈에 그가 유난히 돋보였을 만하다.

무엇엔가 '미쳤기(狂)' 때문에 어디엔가 '미칠(及)' 수 있었던 옛 사람들의 생활과 태도에 관한 <미쳐야 미친다>를 읽으면서 서서히 우울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우울했던 건 '미치지(狂)' 않고 성급하게 '미치(及)'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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