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
하야시 노리코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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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노리코가 쓴 『조선으로 간 일본인 아내』는 포토 다큐멘터리다. 사실의 기록. 그러니까 저자가 ‘일본인 아내’라 명명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쓴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일본인 아내들을 몰랐다. 2000년대 초반 영화를 통해 재일조선인들의 존재를 발견했던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일본인 아내들을 발견한 셈이다.

“1959년 12월부터 1984년 7월까지 일본에 사는 한반도 출신 사람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이주하는 귀국사업이 진행됐다. 주최는 북한과 일본적십자사. 이 사업으로 일본에서 바다를 건넌 재일조선인과 그 가족은 약 9만 3,000명이다. 그중 일본인 아내와 그 자녀 등 일본 국적 소지자는 약 6,800명, 일본 국적 일본인 아내는 약 1,830명으로 알려졌다.”(37쪽)

9만 3,000명! 이 많은 사람이 북한으로 향했다니! 2천 명 가까운 일본 여성들이 남편을 따라 고향 땅을 떠났다니! 믿기지 않았다. 남한에서 태어나 50년 가까이 이 땅에서 사는 나로서는 솔직히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시 일본에서 겪어야 했던 재일조선인의 차별이나 가난의 정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일 텐데, 일본과 북한의 관계 역시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당시 양국은 교류가 활발해 보였다. 그랬으니 일본인 아내들이 남편을 따라 이국땅으로 향한 것 아니겠는가. 실제로 일본인 아내들은 고향을 자주 왕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고 저자에게 말했다.

그런데. 60년 동안 한 번도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현재 북한에 사는 일본인 아내들은 여든이 훌쩍 넘은 고령. 한국전쟁으로 생긴 이산가족들이 상봉하듯 고향방문단사업이란 이름으로 당국의 허가를 받은 이들만 그것도 겨우 한두 차례 고향에 다녀왔다고 했다. 60년 동안 겨우 한두 차례라니!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런 과거 이야기 하는 건 정말 싫어요…….” 인터뷰 과정에서 일본인 아내 미츠코 씨가 저자에게 한 말이다. 타키코라는 여성 역시 같은 말을 했다. 침묵이 흐르는 순간, 타키코 씨 딸은 어머니를 대신해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이 이렇게 엄마에게 옛일을 묻잖아요. 그러면 약간 신경에 자극을 받으세요. 옛일을 기억하면 마음이 아프니까요.”

이 책에는 잔류 일본인도 나온다. 경성에서 태어난 일본인 여성 루리코 씨. 그녀는 철도원이었던 아버지가 회령으로 전근하여 북에 잔류하게 된 일본인 고아인데, 그곳에 남게 된 사연은 일본인 아내들의 경우보다 더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하다 가족과 떨어지거나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의 이미지와 겹쳐져 이 책에 소개된 인물 중 가장 안타까운 경우였다. 잔류 일본인들의 존재 역시 이 책을 통해 인지하게 되었는데, 그 수 역시 상상을 초월했다.

“후생노동성 추정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뒤 한반도 북위 38도선 위쪽에 남아 추위와 굶주림, 전염병 등으로 사망한 일본인은 약 3만 5,000명. 그 가운데 민간인은 2만 5,000명이 넘는다.”(195쪽) 민간인 중 한 명이 루리코 씨였던 것이다.

저자의 인터뷰가 특별한 점. 북에 다녀온 후 그녀는 일본인 아내들의 고향을 방문한다. 가족을 만나거나 이웃을 만나는데 일본인 아내들을 대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본인 아내들, 그러니까 인터뷰이를 대하는 저자의 태도 역시 특별해 보였다. 여성적, 아니 인간적 연대감이고 해야 할까. 다큐멘터리 작가의 사명감이나 사적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선 따뜻함이 느껴졌다. 한편, 기록자의 객관성은 인용한 논문이나 자료의 통계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에는 일본인 아내들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담은 사진이 함께 실려 있는데, 흑백으로 찍은 결혼식 사진 액자를 들고 있는 일본인 아내의 모습이 두 컷 실려 있다. 젊은 시절과 노년, 그 간극이 극명해서일까. 왠지 뭉클했다.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무엇을 사진은 담고 있었다. 일본인 아내들의 젊은 시절 사진들은 하나 같이 뭉클했다. 흑백 사진이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돌아갈 수 없는 순간. 돌아갈 수 없는 그곳이 거기 있기 때문일지도.

일본인 아내들에 대해서 더 듣고 싶었다.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나 취재 과정에 대한 에피소드 등. 저자에게 궁금한 것도 많았다. 이런 독자들을 위해 저자는 에필로그에 책을 서둘러 출간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들 모두 노령이라는 것. 취재를 충분히 하지 못했는데 사망하기도 해서 아직 취재 중임에도 책을 출간했다는 것. 잘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생존해 있을 때 세상에 알리는 게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존재가 사라지면 관심도 사라질 테니까.

개성, 평양, 함흥, 회령, 신의주 같은 곳을 방문한 기록도 흥미로웠다. 우리 땅임에도 아직은 밟을 수 없는 땅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런 이야기들을 꾸려 책으로 소개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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