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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에는 세 사람, 남편과 두 아이의 숨소리가 고요하고 따뜻하게 공기를우고 있다. 나는 아이의 장난감과 빨래 건조대, 옷장들로 정신없는 부엌방에 쪼그려 앉아 책과 노트북을 펼친다. 새벽 1시, 유일한 나의 시간. 무탈하게 하루를 지 시간의 끝에 이 책을 펼칠 수 있어 기쁘고 감사하다. 아주 오랜만에 나를 위해 산 책. 『시옷의 세계다정한 작가님의 사인을 갖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누군가의 편지를 기다리듯, 낯선 이의 체온을 갖고 싶.었.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땐, 시의 옷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상상도 했었는데 예상이 아주 틀리지는 않아 더없이 기뻤다. 내 마음이 아직은 열려있구나, 싶어서.

문장들을 천천히 읽어내려간다. 마음 속으로 조용히 낭독한다. 행복하다.

 

며칠 째 떠나는 가을의 등을 떠미는 싸늘한 비가 쓸쓸하고 외롭게 내렸다. 아무와도 눈 마주치지도 못한 채 주룩주룩 흩어졌다.

그녀의 책, 그녀의 문장 위로 나를 포개면서, 일상과 감정을 포개면서, 고요한 정적 속에 이는 또 다른 시간의 물결을 느낀다. 좀처럼 아름다운 줄 몰랐던 시간도 떠나고 돌아보면 그리운 자리, 아련한 여운 같은 것임을 느낀다. 상처가 아문 자리를 더듬어 찾다가 상처를 받은 고통의 순간이 아닌, 그 상처를 견뎌내고 회복한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며...

나의 이야기가 그녀의 이야기와, 그녀가 좋아한 시 구절과 사이좋게 어울리는 모습을, 본다.

그러다 문득 손글씨를 꾹꾹 눌러 지나간 시간의 이름을 써보고, 다정히 불러도 본다. 사랑했으나 사랑으로 끝나지 않았던 이름도, 그림자처럼 바라본다. 부른다. 끊임없이 넘겨지는 삶의 페이지에 새로운 문장들이 쓰여지고 지워진다. 나를 웃고 울게 만드는, 그곳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 시인이 있다. 그래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번 선물은 시옷의 낱말들이다. 사람이, 무엇보다 사람의 사랑이, 사랑의 상처가, 실은 그 선물이, 그리하여 사람의 삶이, 삶의 서글픔이, 그 서글픔이 종내는 한 줄의 시가 된다. 세상을 바꾸려는 손길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려는 시선이 되는. 그런 시에다 옷을 입히듯 나의 이야기를 입혀보았다. 나의 이야기가 내가 좋아하는 시 구절과 사이좋게 사귀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 사귐, 이책을 건내며 중에서

 

나에게 일어났던 일이라고 해서, 이건 매우 시시한 사건에 불과하며 당연한 과정 그 사례들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런 일은 나에게도 너무 많이 일어났던 것임을 기억해냈다. 나에게 일어났던 작은 혜택들이 실은 은총이었으며, 그건 내가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기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중 하나일 뿐이라 여겼던 건 교만임을 아주 뒤늦게 알았다. 나에게 일어난 우연한 일들과 나를 여태껏 지탱해주었던 자잘한 행운들은, 내 믿음의 결과물이었다.

- 사소한 신비 중에서

 

그러고 보면, 지금의 나는 소원이 없다는 생각. 무언갈 희망하지 않고 꿈꾸지 않고 사는 삶의 지루함을 알면서도, 정작 나는 소원을 갖고 있지 않다.

어떤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도착하길 기다려야 할까.

음......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까... ....... 내일은 눈이 올까, 비가 올까. 늘 고민만 많은 꿈꾸기는 어려운... 나는... 어른일까 어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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