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의 책 『우리가 보낸 순간』 을 구매하고, 한 세트인 듯 아주 아담한 노트 한 권을 받았다.

 



"날마다 읽고 쓰는 노트"

 

김연수 작가가 읽은 시, 소설집의 인상깊은 부분과 함께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담긴 따뜻한 문장들이 인상적인 책, 『우리가 보낸 순간』을 아껴읽으며
나는 문득문득 이 노트의 빈 페이지를 바라보았고, 내가 읽은 책, 읽고자 하는 책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 노트를 채우고 난 뒤에 나는 분명, 어떤, 거대한 시간의 앨범을 갖게 되리라는 기대감.
그것도 내가 읽은 책들의 자국과 함께 지나온 시간들을 또렷이 기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지난 해, 읽은 책들을 떠올리며 막막했던 마음을 올 해는 겪지 않으리라 다짐한 것을 지킬 수 있으리라는 설렘과
오랜만에 손글씨로 한 권의 노트를 채우게 될 일이 반갑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책장 곁을 서성였다. 나의 '책'들 곁을. 그것은 내것이면서도 내것 아닌 것들이었다.
다 읽지 못한 책도 있고, 언젠가 읽었으나 책 내용이 가물가물한 책도 있고 여러번 읽어 애틋한 책들도 있었다. 그들은 가만히 내게 등을 보이며 있었다. 내가 어찌하지 않아도 언제나 내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주는 책들. 나는 늘 그들을 한 사람의 인연인 듯 아껴왔었다. 아이 엄마가 된 뒤엔 더욱 책 속의 이야기에 너그러워진 나를 느끼곤 한다. 조금, 성숙해졌다는 것일까. 한 장, 한 장의 페이지에 담긴 이야기들이 내게 주는 마음의 신호를 나는 선명히 받아들인다.

 

한번도 목록을 적어 책을 읽어 본 적 없는 내가 처음으로 이 노트에 반해 독서목록을 만들어 본다.
그래서 책장에서 나와 함께 지내온 책들의 등을 오래 바라보았고, 언젠가 읽으리라 다짐했던 책들을 적어 둔 쪽지를 여기저기서 찾아내었다.
책장에 있지만 미처 읽지 못한 책들과 내게 아직 없는 책이지만 제목이 아름다워 적어 둔 책들, 어느 분의 리뷰를 보고 꼭 읽고자 마음에 담았던 책들, 그리고 꼭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의 제목이 점점 선명하게 머릿속에 차올랐다. 여행 짐을 싸듯 차곡차곡 빈 노트안에 그 제목들을 적어넣었다.
60개, 한 해 동안 이룰 목표를 가진 듯 마음이 뿌듯해진다.
늘 욕심에 적어만 두고 잊어버렸던 책들의 제목을 가지런히 적어넣으며 무언가 마음이 든든해짐을 느꼈다. 
빈 페이지에 담길 내게 인상 깊은 문장들은,
내가 보낸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에서 은희경 작가님의 인터뷰 내용을 보았다.

작가님의 서재는 먼 이국의 공항이라는 말씀, 너무 감명 깊었다. 서재엔 늘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를 두신다는 것, 책을 읽을 땐 한 권의 책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다른 책은 곁에 두지 않는다는 말씀 속엔 늘 긴장속으로 자신을 밀어넣으려는 평범한 한 사람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 글쓰기에 관한 부분의 인터뷰는 글을 쓰고 싶지만 길을 찾지 못하는 나를 깨우는 좋은 지침이 되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지는 마음도 중요하고, 또 '왜' 쓰고 싶은 지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며 심호흡을 해본다. 날마다 읽고 쓰는 노트에 은희경 작가님의 말씀을 천천히 옮겨 적으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면 ‘왜’ 쓰고 싶은지 생각해라


저는 늦게라도 소설을 쓰고 싶어하시는 분한테 ‘진짜 소설을 쓰고 싶어?’라고 얘기하곤 해요. 왜 쓰고 싶은지 스스로한테 질문해야 될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부터 글짓기를 좋아했고, 문학소녀 시절을 보냈고, 국문학과에 갔고, 거기서도 많은 글도 쓰고 했지만, 그때는 왜 소설가가 못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저는 세상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것은 세상에 대해서 질문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예요. 저는 그 때만 해도 정답을 맞히는 기분으로 세상을 살았기 때문에 뭐가 주어졌으면 그걸 맞히려고만 했지, 내 식대로 무엇을 보고, 내 식대로 새로 해석해 보고, 내 방식대로 사물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그런 나만의 시각이나 관점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은 할 얘기가 없죠. 물론 글 솜씨를 가지고 뭔가를 써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그런 것은 남의 흉내이거나 아니면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형태의 허영심의 발로였을 뿐이지, 내가 진정 하고 싶고, 궁금하고, 나의 고통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공유하고 싶다는 간 절함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늦게라도, 혹은 지금이라도 (소설을) 쓰시려고 하는 분들에게 저는 왜 쓰려고 하는지 그것부터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하고 싶고, 그러면 뭘 쓰고 싶은지도 생각이 날 것 같아요.      -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은희경 작가 인터뷰 중

 

 
 
 

이 노트 안에 차곡차곡 적어둔 책들을 하나씩 손에 안고 다감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때, 그 때마다 나는 조금씩 자랄 것임을, 그리하여 나의 꿈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임을 믿는다. 책은 한 번도 나를 아프게 한 적 없이 언제나 나의 가까이에서 힘이 되어주었음으로, 그들은 기꺼이 내 삶의 끝까지 동행해줄 것이다.

2011년, 여전히 꿈을 꾸는 내게 이 노트는 올 한해의 내가 담길, 중요한 한 권의 책이 되지 않을까.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해, 게으름피우지 않고 달리고 픈 마음이 든다.
내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위해서.

  

 

 

우리가 보낸 순간 세트 - 전2권 

김연수 저 / 마음산책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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