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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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가 끝난 자리 


두 권으로 된 이 소설을 단숨에 읽게 된 것은 내 몸 위를 거칠게 기어오르던 조바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안개가 무겁게 내려앉은 길로 들어서던 그들이 어서 안개 밖으로 드러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후련해진 표정을, 상처 입은 몸일 지라도 무언가 끝났다는 다행스러움에 안도하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빨리 마주하고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번, 진실은 가장 마주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니, 내 자신에게서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는 말이 옳겠다.
독재자의 숨을 끊은 그들을 문 앞에 두고 서둘러 문을 닫던 사람들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우리 가족을 죽일 셈이야?' 하고 으르렁 거리며 그들을 내쫓고 혹은 칼리에들에게 밀고하던 사람들. 사람들. 사람, 들. 그들은 누구의 초상인가. 총성이 울리는 그 거리에 피해자와 가해자는 누구인가. 생각할 수 있는 힘, 이성 따위는 그 곳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총소리와 멀어질 방법만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를 칼리에들의 눈 밖에 나는 일만이 그 순간, 그들이 판단할 수 있는 희망의 전부였다. 부정하고 싶었던, 인간의 나약함을 확인해 버린 순간, 나는 폭삭 늙어버린 노인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시간에 떠밀려 아무것도 붙잡아보지 못하고 죽음 앞을 서성이게 된, 패배자였다. 그럼에도 이 길에서 돌아설 수 없다는 것이 진저리쳐지도록 슬펐다. 

실제 이야기가 뼈대인 소설인 만큼 그 내용들을 허구로 간과해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은 내게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생생하게 눈앞에 드러나는 과거의 일들을 -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잔혹하게 다룰 수 있는지, 얼마나 잔인하게 버릴 수 있는지, 얼마나 비굴하게 삶을 이어갈 수 있는지,  한 시대가 얼마나 오래 사람들을 붙잡고 조종할 수 있는 지를 하나하나 목도하면서 혼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몇 십 년 혹은 몇 세기를 넘어 발굴된 뼛조각들이 모호했던 과거의 시간을 선명하게 그려내듯, 책은 32년 간 도미니카공화국에서 벌어진 독재의 역사를 내었고 그것은 덮어버린다고 해서 결코 없었던 일이 될 수 없는, 이야기였다.

 

펜 끝에서 살아난 축제의 진실

영원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일컬어 졌던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에야 우리나라에는 그의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권력 구조를 파헤치고 이에 대한 개인적 저항을 묘사한 점을 높이 평가해 바르가스 요사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노벨상 위원회가 밝힌 것처럼 작가의 연보는 그가 도미니카 공화국 사람들의 이야기로부터 이 소설을 탄생시키게 된 일이 결코 우연히 아니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여러 나라를 떠돌면서 뉴스 진행자, 사서, 교수, 잡지 편집위원의 다양한 활동과 집필을 병행했고 문학과 정치, 사회적인 면으로 깊이 있는 시선을 다져왔다. 그가 페루 대통령에 출마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끊임없이 국가의 운행과 권력에 대해 연구해왔음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겠다. 작가가 되는 것은 신이 그를 선택해 주는 소명이며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체제와 세상을 향해 늘 깨어있으면서 작품을 출간하고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칠 진실들을 만날 수 있는 안내자가 된다. 작품을 통해 목숨을 위협받거나 거친 비난에 휩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겁내지 않고 허울 뒤에 숨은 진실을 보다 사실적으로 기록하기에 애쓴다. 동시대의 사람들을 떠나 다음 세대에, 세계 여러 나라에 전해지며 가면을 벗은 역사를 바라보게 한다.

그는 『염소의 축제』를 완성시키기 위해 도미니카 공화국의 출판사와 연계를 가지며 많은 정보를 수집해 읽었고 마침내 세계가 주목하게 될, 이 소설을 완성시켰다. 이 소설은 트루히요의 독재에 뼈대를 두고 있지만 사실 그 독재 안에 놓여있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제목의 '축제'는 독재자에겐 스스로 활개를 치며 권력을 행사하던 시간들을 가르키는 동시에 암살자들에게는 염소의 암살이 성공하는 일을 가르키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독재자만 사라지면 그 이전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국가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꿈꾸던 이들은 암살이 성공한 뒤에도 여전히 그들 스스로 놓치 못하는 독재자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암살자들은 곧 자신에게 붙여질 수령의 살해에 대한 죄목과 비난으로 날아들 총알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고 독재자가 죽은 지 35년이 지난 후 중년 여성이 된 우라니아의 기억 속에도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작가는 독재자와의 싸움이 아닌, 스스로와의 심리적 싸움으로 패배해 간 인간의 내면을  포착하고 있었다.  

 

아직도 꺼지지 않는 그 날의 불꽃들

소설의 1권에는 세 개의 시선을 주축으로 엉켜져 있다. 중년 여성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우라니아 (1996년). 암살되기 전 하루 동안 어느 날과 다름없이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과 만나며 업무를 해나가는 일흔의 트루히요 (1961년 5월 30일). 그리고 일곱 명의 암살자들이 고속도로 근방에서 독재자를 실은 차가 오기를 기다리며 독재자로부터 휘둘린 자신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가 엇갈려 전개된다. 사실 인물을 주축으로 각각 다른 시간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처음엔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트루히요와 암살자들의 경우는 장마다 야기되는 인물들이 각각 달리 이어졌음으로 점점 익숙해져갔다. 세 개의 시선은 각각 다른 임무로 이 소설에 놓여 있었고 현 시대에서 떠올리는 한 여성의 기억과 독재자의 내면, 그를 아부하는 추종자들, 독재자에게 쏠 총을 들고 지난날을 회상하는 암살자들의 과거 이야기가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이야기는 더욱 극적으로 치달아갔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우라니아의 진실과 독재자가 암살 된 후 혼란에 빠지는 국가에서도 일어났던 잔인한 살인과 술수, 서로를 향한 끝없는 의심들은 한 국가 안에 벌어진 불행의 무게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뒤바꿔놓았을지를 짐작케 한다.

 

  *  우라니아, 그녀의 삶을 뒤바꾼 한 순간에 대한 기억

우라니아는 트루히요가 죽은 그 해로부터 35년이 지나 고국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산토도밍고'라는 본연의 이름을 되찾지 못한, 자신의 유년시절이 있는 도시에 도착했지만 그녀는 집으로 가지 못하고 호텔에 묵는다. 무언가에 대한 불안과 불쾌감에 휩싸여 그녀는 변화한 도시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 결국 옷차림도 갖추지 못한 채 그녀는 즉흥적으로 자신의 집으로 향하고 그곳에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가 간병인의 병수발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떠난 뒤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은, 한 때 지식인으로 트루히요 곁에서 한 팔 행세를 했던 상원의원 카브랄은, 반신불수가 되어 스스로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그 날의 일을 이야기하며, 그 날,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있었는지를 묻지만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녀가 오래 연락하지 않은 친척들을 만나 서서히 밝히는 그 날의 일은 열네 살의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참혹하고 잔인한 일이었다. 어린나이에도 그녀는 아버지가 트루히요의 총애를 잃고 절망할 때 아버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결심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동료 마누엘의 말을 따라 딸을 권력자의 신임을 되찾기 위한 제물로 이용했다. 그것은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보다 더 깊은 절망이었다. 일흔의 트루히요의 몸뚱이에 열 네살의 그녀가 상처입은 기억을 그녀는 자세히 친척들에게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기로 힘든 발걸음을 했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던 그녀는, 실상 이야기를 모두 꺼내놓은 뒤에 찾아온 허무감에 당황한다. 결국 그 시간은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날로 부터 멀어지기 위해 발버둥치며 자신의 지휘를 높이기에 노력했고 또 여성이라면 부러워할만한 성공한 지식인이 되었지만 그녀가 자신을 위로한 방법은 결국 매일매일 도미니카공화국의 역사에 골몰한 일이었다.
 


우라니아, 넌 정말 얼음이니? 단지 남자들에게만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게 아니다. 너의 시선과 행동과 제스처, 그리고 말투는 위험을 예고하는 사람들에게만 그렇다. 그들의 마음이나 본능 속에서 너를 유혹하거나 구애하려는 의도가 엿보일 때만 그렇다. 그런 사람들에게 너는 얼음이다. 고양한 냄새를 내뿜어 적을 내쫓는 스컹크처럼, 너는 네 주변으로 냉기를 발산하며, 그런 사람들에게 북극의 냉기를 느끼게 한다. 너는 그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으며, 그 덕분에 너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건 바로 공부와 일, 그리고 독립적인 생활이다. "행복하게 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다.   -p.279 (1권)
 

사실  우라니아는 실재하는 인물이 아닌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다. 우라니아는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데 바로 과거의 시간을 현재로 자연스럽게 끌고 온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무지한 국가에서 남성의 권력 앞에 성적 노리개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여성들의 삶을 대변한다. 힘없고 가난한 국가의 남성들은 개인의 발전보다 자신의 성적 욕구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그것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려 한다. 거리의 여성을 조롱하며 쾌락과 성취감을 느낀다. 트루히요 또한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에는 자신을 따르는 추종자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굳히기 위해 그들의 처나 어린 자녀들을 성적으로 탐닉해 왔다.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여기며 독재자에게 자신의 어린자녀를 바치고 아부했던 추종자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과연 누가 더 악랄한 자인가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우라니아는 그 날의 상처가 아직도 자신 안에 아물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꾸리는 평범한 삶을 되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 안에 터지는 뜨거운 축제의 불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엔 너무나 약했고 어린 존재였다. 
한 소녀에서 중년 여성이 된 후에도 더 거대해지고 선명해진 과거의 시간들과 독재를 펼치며 자신의 혈기왕성함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트루히요의 모습을 맞물려 만나면서 한 시대 안에 이루어진 비극이 누군가에겐 자부심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치욕이었다는 사실을 눈이 시리게 바라봐야 했다.  

 

  * 엇갈린 축배의 잔

일흔의 트루히요는 늙은 노인에 지나지 않았다. 전립선을 앓고 있는 그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나온 소변이 바지를 적시게 될까 자주 아랫도리를 살폈다. 미국 해병대에서 몸에 익힌 훈련과 규율대로 여전히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최소한의 잠만 자도 회복되는 대단한 체력을 과시'하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수도를 재건하고 경제적으로나 타국으로부터의 안보 문제 등에 큰 힘을 발휘하며 거침없이 사람들을 지휘 조종했던 트루히요는 지금까지 자신이 저지른 치정과 살인, 술수 들이 나라를 위해 결코 피할 수 없었던 일이라 당당히 정당화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의 가족과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이 자신이 늙고 병든 노인에 지나지 않은 사실을 알고 덤벼들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조니 아베스 대령, 주정뱅이 입헌의원 치리노스, 미국 해병대에서 만나 그를 계속 지지해주고 있는 사이먼 지틀맨, 그에게 쾌락을 선사하던 마누엘, 대통령으로 앉혀둔 발라게르 박사. 그의 주변인들은 끊임없이 그를 '조국의 아버지' '자선가' '수령님'으로 떠받들고 도미니카공화국의 하느님이라고까지 지칭했다. 그들은 좀 더 수령의 발밑 가까이로 가기 위해 다투었고, 서로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부었다. 그들은 꼭두각시였고, 그의 권력 앞에 벌벌 떨었다.

 어쩌면 이후에 들어선 정부들이 너무나 엉망이어서 많은 도미니카 사람들은 트루히요를 그리워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사람들은 권력 남용과 살인, 부패와 비밀 염탐, 격리와 두려움을 잊어버렸다. 공포는 이미 신화가 되어 있었다. (중략)
"사람들은 살해되고 고문당했으며 실종되었어요. 심지어 체제와 가장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도 그런 일을 당했지요. 가령 그의 멋쟁이 아들 람피스는 헤아릴 수 없이 권력을 남용했어요. 그가 날 찝쩍거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빠가 얼마나 벌벌 떨었는지 기억나요?"  -p. 168~169(1권)

누구도 그의 꼭두각시이지 않은 자는 없었다. 그의 단독적 행동과 폭력, 학살 등의 역사를 초인적인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는 절대적인 존재였고 벗어날 수 없는 하늘이었다. 그가 죽은 후에도 트루히요라는 독재자가 서른두 해 동안 사람들 안에 새겨놓은 육체적 정신적 기억들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사람들을 조종했다. 그는 더 이상 젊고 패기 있던 독재자가 아니라 자신의 바지 위에 흘린 소변을 숨기기 위해 물을 쏟아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여성과의 잠자리가 맘처럼 되지 않아 등을 보이고 우는 발정 난 늙은 염소에 지나지 않았다. 잔인함과 허영, 탐욕으로 가득 찬 자신의 행동을 국가를 위한 희생이었다고 신화화시키던 권력자의 최후는 결국 그가 만든 국가 안에서 그가 베푼 자선으로 살고 있는 이들이 쏜 총알에 숨을 거두었다. 그는 끝까지 엇나가는 아들이 못미덥고 허영뿐인 아내와 형제들이 늘 약점이었던 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 부당한 현실에 겨눈 일곱 개의 총, 비극의 총성

사람들은 쿠데타를 일으킨 트루히요가 경제발전과 국가보호라는 보기 좋은 가면으로 선동을 시작하자 자신들의 삶을 바꿔줄 권력자에 대해 두터운 믿음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그가 자국 보호를 위해 울렸다는 수 천, 수만의 총성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공포감에 휩싸여 더욱 그를 추종하기에 이른다. 연약한 이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독재를 반대하는 운동세력이 생겨나고 그를 암살하기 위한 비밀조직이 권력자들의 이름을 엎고 꾸려진다. 그들은 대부분 젊고 패기 있는 이들이었고 모두 독재자와 관련된 상처를 갖고 있었다. 독재자의 사상에 부당한 희생자가 되거나 누군가는 죄를 뒤집어쓰고 사살되기도 했다. 트루히요의 차가 고속도로 위를 지나가 어서 그의 머리에 총알을 날리길 바라는 암살자들의 심리적 상처에 대한 이야기들은 트루히요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빼앗고 이용하기에 능란한 사람이었는지를 나타낸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힘없이 권력 앞에 내어주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자신을 증오했고 또 그 만큼 꼭 트루히요를 죽이고 말겠다는 분노에 치달아 있었다.


"넌 마치 우리 모두가 트루히요 신봉자가 아니었던 것처럼 말하고 있어, 살바도르." 안토니오 델라 마사가 성을 내며 말했다. "토니는 푸에르토플라타의 주지사 아니었어? 아마디토는 경호원 아니야? 난 20년 전부터 레스타우라시온에 있는 염소의 제재소를 관리하고 있지 않아? 네가 일하는 건설회사도 트루히요 소유 아니야?"  -p. 137(1권)

  그들은 지난 시간동안 그들 각자가 트루히요의 잔인함과 비도덕성을 묵인하면서 그의 자선을 받아들이며 살았고, 그를 위해 일했다는 것을 치욕스러워하고 있었다. 이 날 그들이 성공하게 될 암살은 그들 안에서 죄를 사하는 일이 될지도 몰랐다. 많은 권력자들이 연계된 만큼 자신들의 총알이 트루히요에게만 박힌다면 모든 일은 잘 마무리 될 것이라 믿고 기도 했다. 연계된 권력자들은 모두 트루히요 가까이에서 그의 일을 했던 이들이며 오늘도 그와 산책을 할 때 한마디의 은총이라도 더 입고자 애썼을 이들이었다. 자신의 가족과 이웃이 한 인간의 권력에 이용되고 후엔 가차 없이 버려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누구도 트루히요에게 분노를 나타내지 못했다. 그의 위로를 받아들였고 그가 건네는 말을 믿으려 애썼다.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를 등지고 나오면서도 온몸을 흔드는, 부끄러운 안도감을 느꼈다. 깨어있는 정신은 그를 기억하는 육신의 움직임을 끝까지 제어하지 못했다.

소설의 2권에는 트루히요의 암살이 이루어진 뒤 동요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를 추종하던 이들과 시민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면서 국가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발라게르와 트루히요 가족 간의 기싸움. 거리를 매운 칼리에들이 기습적으로 방문해 관련되었다고 의심되는 자들 마저 모두 잡아가면서 사람들은 모두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고, 암살자들은 모두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가 결국 수용소에서 가장 잔인한 마지막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람세스 앞에서 전기고문을 당하고, 악마처럼 그들을 학대하고 살해하는 모습은 계속 읽어내려가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암살이 성공한 뒤 그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건 독재자가 죽은 후 계획된 모든 일을 하나씩 처리해 나가기로 했던 푸포 로만 장군이 권력의 두려움에 스스로를 묶은 까닭이었다. 그는 권력의 기싸움에서 이미 이성을 잃었고 결국 람세스에게 제일 먼저 붙잡혀 가장 잔인하게 고문당하고 총살당하게 된다. 

이 모든 일로부터 자신을 지켜낸 건, 발라게르 박사 한 사람 뿐이었다. 그는 흥분하지 않고 이 국가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하나씩 처리해 가며 미국과 손을 잡고 국가에 평화와 안정을 되찾아 갔다. 그는 도미니카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트루히요 가족들을 모두 해외로 추방했다. 독재자의 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여 온 조니 아베스 대령도 끝내는 가족과 몰살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독재자를 추종했던 이들은 다시 그들 앞에 나타난 대통령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발라게르 박사는 암살로 반란 혐의로 붙잡힌 모든 이들을 사면했다. 그리고 암살자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임베르트와 아미아마를 조국에 위대한 공헌을 한 자로 인정해 주었다.
소설은 한 국가 안에 닥친 시련 앞에서 각 계층들이 어떻게 대처하는 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은 그 독재시대의 단면에 들어찬 다양한 계층의 표정과 이야기를 세밀하게 담아내었고 그것은 국가가 바른 길로 가기 위해 가장 힘을 가져야 하는 것이 바로 우라니아와 암살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말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언제나 정치에서 가장 아랫 계층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의 오류를 말이다.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세계지도를 펼쳐본다. 우리나라와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먹먹한 나라.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가벼운 한 장의 종이 위에 조용히 숨을 쉬며 존재하는 나라. 힘없고 자본없는 작은 국가들이 그렇듯 하나의 국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의 순간을 지나왔을까. 

아메리카 카리브해 이스파니올라섬의 동반부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 도미니카 공화국. 프랑스, 에스파냐로부터  점령과 독립을 반복하고, 이웃한 아이티 공화국으로부터도 수차례 점령을 당해야 했던 나라. 미국에도 점령당했다가 독립한 후 아직까지도 경제 등의 많은 부분을 의존해야 하는 연약한 국가. 

축제가 끝난 자리에는 아직도 그 축제를 끝내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다. 두려움과 아쉬움, 안타까움이 뒤섞인 과거를 되새김질하면서 사람들은 무엇을, 위로받고 싶었던 것일까.
 

이 거대한 서사의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아직도 놓을 수 없는 장면들에 휩싸여 있다.
사람들은 모두 피해자였으며 가해자이기도 했다. 그곳엔 선한 자는 없고 나약한 자들만이 있었다. 비단 그곳뿐이겠는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도,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약한 자들을 염탐하고 약점을 공격해 그들의 자유와 내일마저도 자신의 실속을 위해 이용하려는 권력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더욱 잔인하고 더욱 화려한 모습으로 말이다. 한 번도 자신의 목소리를 가져본 적 없는 평범한 이들에게, 오늘이 전부인 사람들에게 그들은 안개를 뚫고 오는 빛처럼 그들 사이로 파고든다. 희망처럼, 권력자의 힘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기대감에 차올라 자신의 목에 걸린 단단한 줄을 느끼지 못한다. 어울려 사는 삶이란 무엇일까. 개인과 개인은 어쩜 이렇게 먼 거리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권력은, 계층은 무엇일까. 그렇게라도 가족을 위해 지키려 했던 삶. 책을 읽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웠고 그들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이어지길 바란 삶에 대해 막연한 거리가 느껴졌다.

이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의 종교 등으로 인해 개인의 삶을 탄압하는 나라들이 존재함을 일깨워주고 그들이 더 이상 악습을 번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고일 것이다. 독재자가 등장하는 소설의 어떤 독재도 좋은 결말로 치닫진 못했다. 또 독재자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만든 허상이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개인은 너무나 약한 존재라는 사실에도, 가슴이 아팠다.  도미니카 공화국과 같은 현실에 놓인다면, 그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누구도 섣불리 옳고 그름을 가려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가장  안전한 다수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 그들처럼 움직이고 그들처럼 행동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비겁하게 느껴질지라도 누구도 이들을 조롱하고 비난할 순 없다. 그들이 곧 나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엔 우라니아가 '마호가니의 집'에서 트루히요로 인해 겪은 잔인한 일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이곳을 떠나기를 결심하며 호텔로 돌아오는 부분에서 끝난다. 하지만 처음, 호텔 곁을 서성이던 그녀와는 조금 다른 모습인 듯 했다. 더 이상 가족과 연락을 끊지 않을 것이며 조카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다짐하고 있었다. 자신을 추행하는 남성에게 당당히 말하는 모습도 조금은 그녀가 단단해졌다는 느낌을 주었고, 무언가에 조금은 홀가분해 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시대가 담긴 책을 읽다보면, 특히 역사와 얽힌 글을 읽다보면 더욱 감정이 격해지는 걸 피할 수 없다. 그 시절, 그 자리에 내가 없었음을 안도하면서 느끼는 무력감도 감당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떤 희망도 주워 담지 못한 채 이 책을 덮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시 우라니아의 마지막을 대면하면서 느낀다. 무언가에 대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 만이 입술을 뗄 수 있다는 것을. 희망은 책 밖에 남은 자들의 몫이며, 그것은 독자 각자의 마음에 피어오르는 무언가에 대한 '투지' 일 것이다. 이젠 역사소설을 보면서  느꼈던 안타까운 감정들과 대면할 용기가 생긴다. 개인은 약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모이면 분명 변화는 일어나며 그것은 기적이 될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믿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여전히 어느 쪽으로도 향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연약한 존재일 뿐임을 확인했고, 인간이 가진 딜레마를 오래 벗어버리지 못할 것임을 느꼈다. 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나와 한 개인과 어느 나라의 사람들에게 향하는 무수한 감정들에 혼란을 겪었고 그로 인해 조금은 성숙해진 느낌이 든다. 가슴 한쪽이, 오래 기억하며 답을 달아가야 할 무언가로 묵직해진 기분이다.

축제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나 또한 이 책을 영원히 마음속에서 덮지 못할 것 같다. 아직 그 무엇도, 끝나지 않았으므로. 그저 책의 힘을 믿으며, 이 소설을 통해 세계에 다시 달궈진 독재의 비극이 어느 나라, 누군가에게, 마음속에서 꺼지지 않는 축제의 불꽃을 꺼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어느 날, 내가 조금은 떳떳한 마음이 되어 이 책을 덮을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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