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능성이다 - 기적의 트럼펫 소년 패트릭 헨리의 열정 행진곡
패트릭 헨리 휴스 외 지음, 이수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나는 매일 꿈꾸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좀더 특별하기를. 나를 행복하게 할 무언가가 짠, 하고 나타나 주기를. 그렇게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20대 후반이 되었고, 한 사람의 아내이며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은 건 어떤 힘으로부터의 끌림이었을까, 생각해보면 그것은 한 문장도 되지 않는 짧은 단어, 혹은 숫자로부터의 시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열정’, ‘120cm’에 숨겨진 기적 같은 이야기. 이 책을 스치듯 처음 대면했을 때 제목만으로 어느 유명인사의 성공담일 것이라 추측하며 가볍게 넘겨버린 일이 있었다. 그렇게 이 책을 놓쳐버렸다면 나는 내게 이루어진 수많은 꿈을 보지 못하고, 그 축복들에 일일이 감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시작함과 동시에 나는 부옇게 흐려진 안경을 닦고 이제 막 하늘을 본 것처럼 가슴이 벅차올랐었다. 책을 덮으면서 이 책이 나를 찾아 온 것 또한 커다란 축복처럼 느껴졌다.

 패트릭 헨리 휴즈. 나는 어떤 매체에서도 그를 만나본 적 없으며,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내게 작용한 그의 ‘힘’으로 나는 이 책을 만났고, 그의 이름을 가슴에 새겼으며, 그를 응원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나보다 5살이 어린 그를, 일상생활을 하는데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하는 그를, 하지만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그를 이렇게 만나게 된 건 분명 내게도 ‘가능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늘 갖고 있던 패배의식과 불만으로 눌려있던 가능성이 드디어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그와 나를 대면시켰다.     

 그와 나를 비교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나는 두 발로 설 수 있고, 식탁 위의 포크를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아 찾아 쥘 수 있고, 비가 오는 날 거실 한 켠에서 휠체어의 바퀴가 마르길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까. 그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모른 채 삶이 준 레몬들에 분노하고 실망하면서 나는 매번 내일을 맞이했다. 어떤 순간에 ‘집중’하는 힘도 없고 무언가를 바꾸려는 노력도 없이 시간에 채찍질 당한다고만 생각했다.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보내고 저녁이 되면 내게 근접했던 불행과 손해들을 가슴에 켜켜이 쌓은 채 잠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행복을 마음에 담기에 얼마나 인색했는지 모른다.
 삶은 내게 레몬보다는 더 많은 달디 단 과일을 주었던 게 분명한데도 말이다.

 사고는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녁 10시경, 부모님은 함께 식당 일을 마치고 차를 몰아 집으로 오는 길이셨다. 집에 근접한 도로에서 좌회전을 위해 차선을 변경하고 있을 때 덤프트럭이 중앙선을 넘었다. 아버지는 트럭을 피하기 위해 핸들을 오른쪽으로 세게 틀었고, 그 속도에 부친 봉고차는 인도를 넘어 달리다 전봇대를 들이받고 멈춰 섰다. 모두가 운전자가 사망했을 거라 판단했고, 중환자실이 부족했던 병원 때문에 부모는 각자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 시간, 나는 늦은 퇴근길로 버스 뒷 자석에 앉아 머리를 유리창에 기댄 채 모자란 잠을 자려던 참이었다. 핸드폰의 낯선 번호, 그리고 누구의 보호자 되시냐는 말. 나는 누구든 망치로 내 머리를 내리쳐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내게 수화기 너머에서 전달된 구급대원의 말을 다시 해주었으면 싶었다. 내가 부모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을 그때까지 한 번도 인식해본 적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팔과 다리, 손가락에 골절을 입었지만 한 번의 수술과 치료로 빠르게 회복해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얼굴과 양팔, 양다리, 머리까지 전신 골절을 입었고, 의식까지 없던 상태였다.
 사건을 수습하기도 전에 아버지의 빚들이 나를 압박해왔다. 집을 담보로 쓴 빚은 당장 우리에게서 집을 빼앗을 것처럼 으르렁댔다. 스물다섯의 나를 사람들은 무시하고 깔보았다. 사람이 그토록 무섭고 죽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내게 떨어진 레몬들은 내 통장을 모두 갉아먹었고, 내 자존심을 갉아먹었다. 나는 그 시간을 견디며 강해졌다. 삶에 대해 ‘악’을 쓰며 이겨보겠다는 억지마음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 마음이 행복했을 리 없다. 여전히 불행했고, 사람이 싫었고,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으로 인해 혼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 시간을 지나와 다시 떠올려 보는 지금, 그 때의 나는 혼자이지만은 않았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외숙모, 이모, 고모께서 어려운 형편에도 조금씩 돈을 모아 급한사정을 도와주셨다. 그리고 내가 1년이나마 직장생활을 하며 고스란히 모아놓은 돈이 있었고, 보험과 아버지가 의식을 찾고 조금씩 쾌차해 가고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내가 간절히 모든 것을 원래의 자리로 돌이키려 노력했던 만큼 크고 작은 문제들은 천천히 제 자리를 찾아갔다. 아버진 지금도 병원 생활을 하고 계신다. 여전히 불편한 몸이시지만 사고가 일어나기 전 바쁘게 보내던 시간들로 어색했던 나와 아버지 사이에 마주보고 웃는 일이 잦아졌다. 아버지는 어서 스스로 걸어 집으로 돌아가길 꿈꾸신다. 스스로 걷는 일은 어렵겠지만 아버지는 지팡이에 의지해 곧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고가 있었던 그때만큼 간절하게, 매일 닥쳐오는 각각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 순간에 몰입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울고불고 하면서도, 내게 이런 시련을 준 모든 것들이 원망스럽기만 하면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그래야 우리 가족이 지켜질 수 있었으니까. 그래야 살 수 있었으니까. 당장의 것들을 인정하고 해결하려 노력하자 시간은 흐를수록 내 편에 서서 움직여 주었다. 삶이 내게 조금씩 틈을 주고 또다른 희망을 꿈꾸게 했다.

 그즈음 지금의 남편을 만나 힘들었던 시간을 함께 견뎠고, 내 전부인 ‘아들’을 얻었다. 헨리의 아버지가 그랬듯 이제 15개월이 된 나의 아들은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나를 성장시켰다. 아들이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이, 하루를 잘 보내고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는 일이, 함께 잠드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알게 했다. 내 마음에서 버려야 할 욕심과 간직해야 할 꿈을 구분할 수 있게 했고,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오늘을 얼마나 값지게 살아야 하는지도 깨닫게 했다. 처음엔 육아에 빼앗기는 시간이 아까워 억울한 마음도 들었고, 아이가 때쓰거나 우는 일에 화내며 엄하게 굴기도 했다. 그 행동에 스스로 실망하며 자책도 했다. 지금도 끝없는 집안일을 하다보면 그런 마음이 들지만 헨리의 부모님을 통해 좀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아이가 내 곁으로 온 것만으로도 무엇과 비할 수 없는 큰 ‘축복’이라는 것을.  

 이젠 좀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내게 이뤄진 많은 꿈들을, 그 특별함을. 누군가는 갖지 못한 ‘축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그 뒤로 나는 내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적어도 준비자세를 취할 마음가짐은 갖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진 ‘소명’과 내가 할 수 있는 ‘한계’에까지 부딪혀 볼 용기도 얻었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볼 수 없어 그 힘을 모르게 되는 ‘마음’. 패트릭 헨리가 스스로의 가능성을 키우고 천천히 자신의 꿈에 다가가게 된 건 스스로를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특별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들 보다 덜 가진 무엇에 절망하지 않고 남들과는 다르게 자신에게만 주어진 축복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 패트릭 헨리는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을 다해 희망을 길어 올렸고, 그 희망을 가득 담아 꿈을 이뤘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다. 패트릭 헨리와 가족이 노력으로 일궈낸 그들의 당연한 결과물인 것이다.
 처음엔 부모의 마음으로 읽었지만 어느새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린 한 사람으로 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 속에 여전히 있는, 떠올리기 싫었던 아픈 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 곁에 함께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운 ‘힘’과 ‘축복’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가능성’으로 만드는 힘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걸 누구에게든 전하고 싶다. 내 손에 꼭 쥐고 있으면서 마지막까지 그 힘을 쓰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패트릭 헨리의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저마다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둔 ‘가능성’을 깨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가 자신의 삶에 보여준 진심과 삶이 그에게 내어준 ‘축복’은 누구의 힘을 빌려서가 아닌 그가 스스로 만든 것이었고, 지금처럼 꿈꾸며 희망하고 노력하는 이상 그에게 기적 같은 일들은 계속 될 것이다. 축복은 희망을 꿈꾸고 오늘을 감사하는 마음의 꼬리를 물고 온다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가 갖지 못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곧 가까운 시간 안에 멋진 일들이 눈앞에 펼쳐질 것이라 기대한다.   

  패트릭 헨리가 끝없는 희망의 연주를 시작한 것처럼.   

  나에겐, 나의 아이가 몸을 뒤집고 기고 걷고 환하게 미소 지으며 ‘엄마’라고 나를 부른 것처럼. 너무 커서 내 몫이 아닌 듯했던 그 축복들이 불과 아이를 키운 15개월 안에서 모두 일어난 것처럼.  

 부족한 내가 쏟은 작은 마음과 사랑으로 내가 얻은 것은 너무 많다는 걸 알았다. 가진 것에 감사하고 더욱 나누며 나의 가족과 스스로에게 더욱 멋진 내가 되고 싶다. 그리고 꼭, 나의 아이가 자신의 ‘가능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엄마의 몫을 다할 것이다. 그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 
 

 내일이 기다려진다. 

 



큰일을 이루기 위해 힘을 달라고 기도했더니
겸손을 배우라고 연약함을 주셨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건강을 구했는데
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병을 주셨다.
 

행복해 지고 싶어 부유함을 구했는데
지혜로와 지라고 가난함을 주셨다.
세상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성공을 구했더니
뽐내지 말라고 실패를 주셨다.

삶을 누릴 수 있게
모든 걸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삶! 그 자체를 선물로 주셨다.

구한 것 하나 주시지 않았지만
내 소원을 들어 주셨다.
 

하나님 뜻을 따르지 못하는 삶이었지만
내 맘속에 진작에 표현 못한 기도는 다 들어 주셨다.
나는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 성프란체스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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