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걸음 내딛다 보름달문고 33
은이정 글, 안희건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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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얼마나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있을까?......

한 소녀가 그런 물음을 남기고 사라졌다.

 

책을 읽으면서 먼 어느 날 내게 불쑥 찾아 왔던 몇 개의 사랑을 떠올려보았다. 초등학교 시절, 학년이 바뀔 때마다 달라지던 좋아한 남자아이. 중학교 때 항상 같은 버스를 탔던 다른 교복의 고등학생 오빠, 내게 좋은 문장을 선물해주신 국어선생님. 얼굴이 발그레해지면서 입가로 따뜻한 미소가 다녀간다.

책 속 주인공 희영은 이제 막 그런 기억을 쌓기 위해 걸음을 떼는 소녀였다. 수줍음 많고 말수가 없어 친구들과 활달히 지내지 못하지만 낭만을 좋아하고 이제 사랑을 배우려는 가슴 따뜻한 소녀.

하지만 그런 희영의 시선 속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는 뻑뻑하고 부자연스럽기만 하다.

말없이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는 아빠와 안방 속의 엄마, (그 관계는 분명 사랑으로 채워졌을 텐데) 함께 놀러간 바닷가에서도 아빠와 엄마 사이는 수북이 모래가 쌓인 듯 서걱거린다. 또,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재준과 있었던 창피한 일은 희영을 두고두고 가슴 아프게 한다. 일기장 속 중학생 엄마는 너무나 당차고 씩씩하지만 지금 곁에 엄마는 너무나 피곤하고 지친 얼굴이다. 사랑은 어쩌면 나를 그리고 누군가를 피곤하고 지치게 하는 그런 것이라는 의심마저 든다. 희영은 이렇게 겪는 몇 개의 사건들을 통해 점점 사랑을 얻고 사랑하는 법을 알아간다. 사춘기가 찾아올 때면 겪게 되는 마음 속 불안한 몇 개의 일들. 가족과 나와 그리고 짝사랑. 어른이 되기 위해 겪는 성장통, 사춘기. 여린 꽃 같았던 희영은 조금 당차게 그 시간을 견뎌내려고 한다.

누구나 겪게 되는 그 일을 어떻게 만나고 헤어지느냐가 불안했던 몇 개의 일들을 추억으로 혹은 악몽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주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 이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먼저 눈치 채고, 내가 먼저 그 마음을 만져 줄 수 있다면 그에겐 악몽보다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에게, 그 마음을 차마 어쩌지 못하는 부모에게, 사랑이 상처인 것 같은 사람에게, 반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줄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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