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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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저 불꽃을 볼 수 없다 해서 아쉽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나의 불꽃은 더 찬란하고 빛나기 때문이다. -p.15


 강릉으로 여행을 왔다. 바다가 보이는 숙소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보고 싶은 책을 들고 창가에 앉았다. 피융 파바바바바방! 어둠이 덮인 바닷가에서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한다. 허공으로 쏘아진 불꽃이 한순간 강렬한 빛과 소리로 부서진다. 사람들의 와, 하는 소리. 행인의 시선이 그곳에 모였다 흩어진다. 모자로 보이는 일행은 노부인을 바다 앞에 세워두고 멀찍이 뛰어와 사진을 찍는다. 어서 보여주고 싶은 뒷모습으로 모래 위를 뒤뚱거리며 뛰어가는 모습이 아이 같다.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하나의 담요를 덮은 두 사람이 거기 있고. 또 고개를 들면 혼자 걷는 이가 있고. 다시 고개를 들면 아무도 없다. 순간 그 장면들이 불꽃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책에서도 그런 불꽃을 보았다. 작가의 이야기, 작가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가 그들에게 건넨 말과 그렇게 나에게로 온 문장들.


 그녀가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누구보다 밝고 진지한 눈으로 삶을 바라보고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털썩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 무방비한 슬픔의 해제가 그녀의 무기였다. 오히려 그녀를 단단하게 만드는 유연함. 그녀의 춤을 닮았다.


 마음을 고쳐먹고 고객들을 대하자 일이 즐거워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고된 삶을 견뎌내게 할 의지다. 살아갈 힘을 주는 사람이다. -P.37


 항상 시간은 모자라고 조급함과 조바심에 몸이 달았다. 늘 종종거리며 지내는데 남는 것은 없는 하루. 허무하고 무력했다. 자주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쫓느라 애썼다. 애써 가진 것들을 내팽개쳐 두고 나에게 없는 것들을 찾아 헤매며 시간을 소진했다. 나는 이 삶에 무얼 기대하며 사는 걸까. 나에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당신에겐 큰일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그 무시무시한 모호함들로 삶은 점점 어렵기만 하고. 나이를 먹을수록 함부로 단정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마주한다. 그 앞에서 우왕좌왕하며 우스꽝스러운 몸짓에 울다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장애인 시위에 대해 아들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고, 샌드위치도 꿈이 될 수 있다는 것과(「당신의 꿈은 샌드위치」) 선한 마음도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정지된 도시」)에 대해 생각했다. 서슴없이 감정을 드러내고 상처를 주다 부둥켜안는 모녀를 보면서는 늘 조심하기만 했던 엄마와 나의 관계도 생각나고. 나도 부모님이 오지 않은 졸업식에서 내가 그들에게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싶었던 적이 있다. 나는 두려웠다. 두려워서 표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의 서운함보다 부모가 된 마음으로 작가님을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서운하고 속상하고 그리웠을지. 내가 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딸에서 엄마로, 다시 내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문장 사이에 그녀가 뛰어넘은 가늠할 수 없는 고통과 시련들을 가늠하며 글로 뛰어넘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곧 잃어버릴 세상이어서 모든 게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p.123


 하루하루를 태워 만들어내는 불꽃들. 불꽃은 타올라 소진한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다. 그래서 위험하지 않고 아름답다. 우리는 그러한 소멸을 꽃이라 부른다. 그녀의 꽃을 통해 내 삶의 꽃을 본다. 내 주변의 꽃을 본다. 저마다 스스로를 태우며 다른 색깔로 함께하기에 알록달록 무늬가 되는 그 우연이 슬프면서도 아름답다.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무엇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있기에 충분히 가치가 있다. 나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알면서도 서로에게, 스스로에게 여전히 해주기 어려운 말. 모질게 지적하고 평가하고 비판하는 세상이 무심코 던지는 말들 앞에 우산을 들고 설 수 있는 힘.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있는 건 딱 그만큼의 힘인지도 모른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내 것을 지키며 버텨낼 수 있는 힘. 그 우산 아래 누군가를 들여놓을 수 있는 힘. 어떠한 원망도 미움도 붙잡지 않고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나로 설 수 있는 것. 그것을 위해 매일을 버틴다. 지랄맞은 나날이 나를 키운다고 생각하면서. 지랄맞은 나날을 시원하게 태워 불꽃으로 완성시키는 기쁨을 떠올리면서. 그것은 소멸이 아니라 영원이다.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들리지 않아도 듣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걸을 수 없어도 뛰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비록 제한적인 감각이라 해도 나는 들을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으며 낯선 바람을 느낄 수도 있다.

 -p.50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궁금하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가 많이 들려왔으면 좋겠다. 장애가 있지만 음악중심 무대에 서고, 드라마에 나오고, 여행지에서도 만날 수 있고. 그들의 삶이 우리와 가까워져 아무 경계 없이 이름을 부르고 함께 하는 일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길 바란다. 이것이 나의 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나조차도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모른다는 말이 부끄럽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견뎌야 하는 편견과 이 사회가 배려하지 않는 부분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도 늘 걸어 다니던 길이 휠체어로는 다니기 어려운 길이라는 걸 아버지의 휠체어를 밀며 알게 되었으니까. 세상은 불편한 사람을 배려하고 양보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세상은 어디 그런가. 공평하다고 하면서 기회는 한정되어 있고 필요한 도움은 스스로 구해야 하며 그마저도 돈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그녀의 글에도 나와 있지만 식은땀이 흐른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작은 부분인지, 알지 못해 볼 수 없는 것은 얼마나 많은지. 그 앞에 넙죽 엎드려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하루하루가 쌓여 이르게 될 그녀의 축제를 응원한다. 내 안에 터지는 폭죽과 그 소멸을, 기쁘게 끌어안는 용기를 알게 한 그녀의 문장 앞에 이 글을 꽃다발처럼 내려놓고 싶다. 당신이 애써 살아내고 있는 지랄맞은 하루하루를 나도 웃으며 건너볼 마음이 생겼다고. 알게 되어 반갑고 고맙다고. 오늘 하루는 조금 더 행복하길 바란다고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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